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Jun 03. 2021

자유 끝, 사치 시작

_한병철 「심리정치」

한병철 책은 다 비슷하다며 비판받지만, 그 유사함 속에서도 비교적 재미있는 게 있고 재미없는 게 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는 재미없는 편, 「심리정치」는 재미있는 편이다. 그간 여러 책에서 주장했던 바를 잘 모아서 정리했다. 첫 문장부터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이다.




중요한 개념만 간단히 요약한다.


자유


자유는 원래 강제의 반대다. 그래서 강압이 없다면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무런 강요 없이 살지만, 자유롭지 않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야근하고 공부하고 자기계발한다. 이건 강제보다 더 심하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에서 멈추는 게 없다.


우리는 자유 자체가 강제를 생성하는 특수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다. 할 수 있음의 자유는 심지어 명령과 금지를 만들어내는 해야 함의 규율보다 더 큰 강제를 낳는다. 해야 함에는 제한이 있지만, 할 수 있음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


과거의 권력은 명령과 금지로 통제했다. 오늘날의 권력, 스마트 권력은 유혹한다. 입 닥치고 시키는 일이나 하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다 터놓고 말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면 그걸 해낼 수 있다고, 격려한다. 스마트 권력은 저항을 부르지 않는다. 지배자가 보이지 않고, 지배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변이체인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를 경영자로 만든다. 공산주의 혁명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타자에 착취당하는 노동 계급을 철폐한다. 오늘날은 모두가 자기 자신의 기업에 고용되어 스스로를 착취하는 노동자다. 모두가 주인인 동시에 노예다. 계급투쟁 역시 자기 자신과의 내적 투쟁으로 탈바꿈한다.


힐링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책을 읽고 세미나를 듣고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본다. 그렇게 도달한 최적화는 더 사용하기 좋은 노동자를 만든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더 잘 돌아가도록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나사가 된다. 휴식도 재생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능을 강화하기 위해 거치는 공정이다.


자아를 최적화하라는 신자유주의의 명령은 시스템 내에서 완벽하게 기능하라는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효율성과 성과의 제고를 위해 심리적 억압, 약점, 실수 같은 것은 치료를 통해 제거되어야 한다.


게임화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보상때문이다. 시간을 들여서 열심히 클릭하면, 몇분안에 승리든 레벨업이든 나름의 뿌듯함을 얻는다. 신자유주의는 노동도 게임화한다. 신속한 보상시스템을 구축해서 노동자의 열정을 생산한다.


그래서 모든 노동자 정당의 강령은 노동 해방을 내세울 뿐 노동에서의 해방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과 자본은 동전의 양면이다.


빅데이터


데이터의 시대가 되었다.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이론이 없어도 모든 게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데이터는 그냥 수치일뿐, 서사가 아니다. 무엇을 살지, 얼마나 살지 예측할 수는 있어도 왜 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냥 데이터일뿐이다. 모든 걸 예측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상관관계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한다. 빅데이터에는 개념도 없고 정신도 없다. 빅데이터가 약속하는 절대지는 절대무지와 다름이 없다.


사치


사치스럽다고 하면 소비 행태가 우선 떠오른다. 소비 자본주의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치는 소비 습관이 아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얻고 쓸모없는 행위를 하고 필연성 바깥에서 사는 게 사치다. 예를 들면 책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는 거다. 사치는 때때로 금욕과 맞닿아 있다.


사치는 오히려 필요와 필연성에서 자유로운 삶의 형식이다. 자유는 일탈, 즉 필연성에서의 이탈에서 시작된다.



한병철의 책은 먼저 독일어로 쓰여지고 번역된다. 역자는 마지막에 후기를 적는다. 번역체가 아니라 아무래도 더 자연스럽고, 한국의 상황에 맞게 쓰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간다. 역자가 책마다 달라서, 개성 넘치는 후기를 읽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후기도 「심리정치」에 있다. 우리 지금 느끼고 있는 자유가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한다. 「피로사회」도 번역한 김태환 교수다. 철학과 교수도 아니고 독문과 교수인데, 어떻게 이렇게 철학적 글을 잘 쓸까.


★★★★★ 장래희망은 사치부리며 사는 거다. 자유 끝, 사치 시작.



사랑하는 작가3 : 한병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