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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15. 2021

불행해서 행복하다

여자친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봐바. 또 웃자랐어!! 힝...


선인장이 웃자랐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그런다고 해서 물 주는 주기를 늘렸다. 또 햇빛이 부족해도 그런다고 해서 LED를 사서 위에 설치했다.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해서 새 흙으로 분갈이도 해줄 계획이다. 그런데도 계속 웃자라고 있는 거다. 왜 자꾸 이럴까.


*웃자람 : 선인장이 이상하게 자란다. 종류에 따라서 웃자라는 형태는 다양하다. 만세선인장의 경우 꿀밤 맞은 것처럼 뾰족하게 혹이 나온다. 로제트, 레티지아는 줄기만 길어진다. 처음에는 이뻤던 선인장이 어느순간 볼품없어진다면, 웃자란 거다.



속상해하는 여자친구를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런 사소한 불행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여자친구가 속상해 할때마다 이렇게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남자친구가 이제는 익숙한지, 여자친구는 어이없어하지도 않는다. 계속 속상한 상태다.


작은 불행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는 건 행복이다. 큰 불행이 하나만 있어도 작은 불행은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작은 불행은 평온한 가운데에서만 눈에 띈다. 일단, 실업의 위험이 없고 큰 병도 없다. 물론 아직까지 그렇다는 거다. 워낙 일을 대충 하고, 본능대로 살기 때문에, 언제 실업과 질병의 위험이 닥쳐도 이상하지 않지만, 지금은 일단 안전하다. 그래서 작은 불행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선인장은 왜 자꾸 웃자랄까. 잘라 버려야 하나. 잘라서 말린 후 다시 흙 위에 올려놓으면, 다시 뿌리가 나면서 자란다고 한다. 햇빛도 이제 충분한데 도대체 왜! 답답해 미치겠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은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_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


텀블벅은 작은 불행인가 큰 불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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