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미리 여행을 준비한다. 여행의 기준을 어디서부터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설렘을 여행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이미 여행은 시작된 셈이다. 여행지를 검색하고 조사한다. 가볼만한 장소나 유적지가 있는지, 맛집, 카페 등을 미리 체크한다. 조사한 결과는 작은 책자가 된다. 집에 프린터가 있는 이유다. 얼기설기 만들었지만, 귀여운 표지까지 있는 어엿한 책이다. 이 작은 책을 들고 다니며 여행한다. 뒷부분에는 메모할 수 있도록 몇장 여유를 두기 때문에, 여기에 일기도 쓴다.
연애하면서 처음 아내의 자취방을 방문했을 때는,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프린터가 의아했다. 프린터가 왜 필요하지? 같이 여행을 가면서 의문은 바로 해결되었다.
나는 무계획이다. 어쩌다 여행을 떠난다 하더라도 계획을 짜지는 않는다. 되는대로 걷고, 식당에 들어가고, 저렴한 숙소에 묵는다. 대체로 만족한다.
이런 둘이 만나서 여행을 하면, 누가 이끌고 누가 따라다닐지는 뻔하다. 아내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하고, 나는 손을 잡고 따라간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도 가끔 변하는 구석이 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속초 여행 소식을 듣고, 나는 설렜다. 여행 장소도 숙소도 코스도 전부 아내가 결정한 후 통보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팟캐스트를 들었다. 속초와 관련한 팟캐스트가 많았다. 속초의 유명한 서점, 떡볶이, 순대국, 냉면, 카페까지 확인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가보고 싶은 장소도 하나둘 생겼다.
속초 여행 전날 짐을 싸면서 물었다. 우리 근데 어디어디 가는거야? 나는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보통 이렇게 여행 직전에 일정을 묻는다. 그러면 미리 짜놓은 일정을 쭈욱 읊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아내는 당당하게 말했다. 몰라. 그냥 숙소에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가고 싶은데가 있어? 나는 미리 확인한 장소, 맛있다는 먹거리를 조잘조잘 늘어놨다.
우리가 이렇게 변했나?
무계획의 삶을 살았던 나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계획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항상 철저하게 계획했던 아내는 일단 떠나고 되는대로 지내보자며 무계획 여행을 선포했다. 선포한 이상, 그대로 실행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