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자기 긍정을 목적지로 출발했지만, 도착해보니 자기 혐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름 이해한 바대로 내용을 재구성해서 내 언어로 풀어낸 것임을 밝힌다. 원글은 훨씬 더 두서없고 재미없다.
※주의.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입니다. 고혈압이라면 읽지 말고 넘겨주세요.
과거, 전통적 사회에서 여성은 오로지 남성에게 사랑받는 여성으로만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었다. 직업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내와 어머니만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매력적인 이성으로 느껴지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더욱이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몇몇 최상류층 여성들을 빼놓고는 절대 접근할 수 없었던 사회적 권력을, 시대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소수의 여성들은 그 권력자 남성의 '여자'가 됨으로써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그리고 현대 사회에 와서, 여성은 이제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이성에게 선택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마법의 성으로 날아갈 수 있다.
그런데 왜.
스스로의 삶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현대 여성들이, 자크 라캉의 말마따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_자크 라캉 「욕망 이론」
그 이유는 거칠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노동이다.
외모가 채용의 조건이 된다. 심지어 외모를 업무 능력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여전히 관행의 형태로 여성들의 외모를 직업적 자질로 요구하는 기업들의 태도는 여성들에게 취업과 외모 관리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여성들은 이렇게 '기업의 눈'에 맞는 인력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자신의 입장을 '몸매 관리'의 필요성으로 설명한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채용 단계를 지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여성 노동자의 업무에 '이쁜 여성으로 보이기'가 포함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업무를 나누고, 보상도 다르게 해서, 결국 차별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대체로 이러한 성별 직종 분리는 자연스럽게 임금, 승진 등에서의 차이로 연결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위계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그리고 이상하게도, 일을 하면 할수록 내공과 커리어가 쌓이는 것과 반대로, 여성의 외모가 중요시되는 직업은,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다.
우리나라 항공사 여승무원의 외모 중심 고용에 관한 한 연구는 남성 고객의 보는 즐거움 자체가 여승무원이 행하는 서비스 노동으로 통합됨으로써 여성들의 노동조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이 외모를 중심으로 고용되고, 외모 관리가 여성이 행하는 서비스 노동을 구성하는 것은 같은 직종 내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업무를 차별적으로 분리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여승무원이 행하는 노동의 숙련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음으로써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고용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 동료, 상사, 고객들로부터 '여자'로 '성애화'되어 끊임없이 '성희롱'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다른 하나는 시선이다. 저자는 푸코의 생체권력이라는 개념을 인용한다.
권력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작동하는 것이며, 그러한 작동 지점에서 자아와 주체성의 보편적인 형태는 주로 신체적 '억압'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선의 권력 작용에 의해 개인적인 자기 검열과 규범에 의한 '자기 교정'을 통해서 형성되는 순응적 육체가 된다.
_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억압적인 권력자가 강제로 성형수술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서 다이어트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으로 하여금 외모를 관리하게 만드는 힘은 강제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회의 기준에 의한 평가를 지닌 시선들 속에 놓아 있다. 이 힘은 여성들이 일상의 삶에서 마주치는 시선 속에 녹아들어가 여성의 '자아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이 시선이 사실 남성의 시선이고 사회의 시선이라는 사실은 은폐된다.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외모 가꾸기, 다이어트는 산업을 만나면서 극대화 된다. 모든 다이어트는 한계와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이어트 산업은 이조차 활용해서 성장하는 계기로 만든다. 그리고 이른바 전문가들이 여기에 권위를 부여한다.
기존 다이어트 방법의 한계가 드러나면 그것은 곧바로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의 출현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또다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다이어트 산업은 이런 식으로 무한한 확대 재생산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만족감과 자신감을 얻는다. 이 자신감은 다이어트에 국한되지 않고 삶 전체에 대한 자신감으로 확장된다.
결국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의 성공과 그것의 결과인 '날씬한 몸매'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는 통제력, 자기 절제력이라는 미덕을 소유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또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 결정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받는다. ... 이때의 자기만족은 말 그대로 자신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는 자신의 의지력을 향한 믿음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이러한 자기만족은, 주위 사람들의 달라진 대우를 통해서 다시 한번 강화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서 몸과 욕망의 조절이 차지하는 정도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몸과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미국에서 행한 한 조사는 다이어트의 궁극적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어려운 다이어트와 힘든 운동 끝에 체중을 줄인 사람들 중 90퍼센트 이상이 5년 안에 다시 원래의 체중으로 되돌아가며 줄어든 체중을 유지하는 데 거의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이 조사는 특히 여성들의 경우 줄어든 체중이 원래 상태로 늘자 다이어트를 평균 14차례나 되풀이했다고 밝혔다. 즉 체중 감소 그 자체보다는 체중의 유지가 더욱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의학에서 이제 거의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다이어트는 너무나 힘든 일이며, 그것에 자기 정체성을 부여하면 결국 심리적 박탈감을 수시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다이어트를 반복하면 젊은 나이에도 신진대사율이 떨어져서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다이어트를 자꾸 시도하면 할수록 살이 더 잘 찌는 체질이 되는 것이다. 또한 오랜 다이어트가 여성들에게 안겨주는 심리적 박탈감은 쉽게 과식과 폭식을 유발해 더욱더 몸무게가 증가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안타깝다.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 시작한 다이어트일 테지만, 오히려 자기 혐오와 실망으로 끝나기 쉬운 것이다.
보통 다이어트는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몸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들의 바람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다이어트 경험은 그러한 긍정의 기쁨보다는 오히려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더욱 혐오하고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불신하면서 자기 비하에 빠지는 고통을 안겨준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은,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사회적 시선의 문제, 노동이 성별화 되어버린 구조의 문제인데, 이를 바꿀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대안의 어려움을 알지만, 그래도 저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작 치료해야 할 것은 여성들에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이렇게 높여놓은 이 사회이지 그러한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그에 순응한 여성들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따라서 여성들이 외모 때문에 겪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자아 존중감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육체에 대한 강박을 안겨주는 이 사회의 권력에 끊임없이 딴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저항 없는 치유는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경제적 불평등이든, 성적 불평등이든, 정치적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민주화 세대가 짱돌을 들었던 것처럼, 페미니스트들은 프로불편러가 되어야 한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_우석훈 「88만원 세대」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이 프로그램들은 여성들 각자가 지닌 몸의 다양성을 축복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몸을 존재의 일부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며 아무런 죄의식 없이 먹고 마시고 움직이면서 당당하게 공간을 차지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럼으로써 우리가 상실했던 진정한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는 힘주기의 장이 될 것이다.
_한서설아 「다이어트의 성정치」
쉽지 않은 문제다. 저자의 바람은 그래서 더욱 가슴 벅차다.
★★★★★ 궁금했던 주제에 속쉬원하게 대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