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May 26. 2019

유성우처럼 지나간다

_윤대녕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주인공이 방황하며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이상한 조합으로 무리를 지어서, 유성우를 보러 간다. 그중 하나는 썸을 타던 여성이다. 여성이 고백을 했지만 그는 거절한다.


“저, 이제부터 당신과 토요일 저녁마다 만나고 싶은데요. 봄여름가올겨울의 모든 주말마다 말예요.”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리 하여 그는 제미니12호 속에 그녀와 단둘이 앉아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광막한 우주공간에서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대꾸를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운씨 말을 듣고 방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
“저에겐 이미 마음이란 게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우주복을 입고 하늘에 떠 있었나봅니다. 도로 지구로 내려 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질 않는군요.”
그녀는 일순 흔들리는 표정으로 있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 소리로 되물었다.
“어째서 그런 건데요?”
“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몽땅 백지수표로 끊어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병신, 바보”
“……”
 _윤대녕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다른 하나는 그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났지만 다시 돌아온 여성이다.


머지않아 그녀는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화랑의 주인이 돼 있을 것이다. 상류사회에서 그것도 문화자본 집권자로서 가난한 예술가들 위에 군림해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꿈꾸는 궁극적인 생의 목표였다. 그녀는 그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화랑 일을 도와주었으면 한다는 말도 했다. 독일에 있을 때는 유학 온 무슨 구두회사 사장의 아들과 동거 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그는 굳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_윤대녕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주인공은 여성들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저울질하지 않는다. 고통에도 쾌락에도 온몸을 내맡긴다. 마치 유성우 같이 계속 지나갈 뿐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들이닥친다. 다시는 안 올 것 같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막상 오고나니 생각보다 별 거 아니다. 그렇게 유성우처럼 지나간다.




작가가 직접 이야기하는 해설은 언제나 흥미롭다. 경향신문에 저자의 해설이 실렸는데, 내 감상과는 많이 달랐다. 자아 찾기, 아버지 찾기의 일환으로 주인공은 방랑을 하고 여성을 만나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작자인 내 입을 빌려 감히 말하는데, 그때 아비 찾아 떠돌 때 밤마다 지고 누웠던 차디찬 땅바닥에서 올려다본 세개의 주막 별자리들이 그래도 그의 반생에서 가장 추억되노라고 숨어 전하고 있다.
 _경향신문 「[내 소설속의 사랑](2)윤대녕‘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기사


★★★★★ 머리 아프다. 그래도 여러번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도 일본처럼 행복해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