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윤대녕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저, 이제부터 당신과 토요일 저녁마다 만나고 싶은데요. 봄여름가올겨울의 모든 주말마다 말예요.”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리 하여 그는 제미니12호 속에 그녀와 단둘이 앉아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광막한 우주공간에서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대꾸를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운씨 말을 듣고 방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
“저에겐 이미 마음이란 게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우주복을 입고 하늘에 떠 있었나봅니다. 도로 지구로 내려 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질 않는군요.”
그녀는 일순 흔들리는 표정으로 있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 소리로 되물었다.
“어째서 그런 건데요?”
“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몽땅 백지수표로 끊어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병신, 바보”
“……”
_윤대녕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머지않아 그녀는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화랑의 주인이 돼 있을 것이다. 상류사회에서 그것도 문화자본 집권자로서 가난한 예술가들 위에 군림해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꿈꾸는 궁극적인 생의 목표였다. 그녀는 그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화랑 일을 도와주었으면 한다는 말도 했다. 독일에 있을 때는 유학 온 무슨 구두회사 사장의 아들과 동거 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그는 굳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_윤대녕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이제 와서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작자인 내 입을 빌려 감히 말하는데, 그때 아비 찾아 떠돌 때 밤마다 지고 누웠던 차디찬 땅바닥에서 올려다본 세개의 주막 별자리들이 그래도 그의 반생에서 가장 추억되노라고 숨어 전하고 있다.
_경향신문 「[내 소설속의 사랑](2)윤대녕‘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