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법률 조언을 받아야 한다면 고소를 당했거나 고소를 하려면,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누가 잘 하고 누가 어느 분야 전문가인지, 비법조인인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주변에 물어보는 수밖에. 아는 변호사 없어? 힘이 있는 사람은 전문가를 잘 찾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인맥이 곧 능력인 시절에 걸맞는 접근법이다.
어디가 아파서 병원을 찾을 때도 주로 물어봤다. 심장병은 어디가 좋더라, 허리는 어디가 좋더라. 아픈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소식을 얻기가 수월하다. 지금은 병원도 어플에서 검색한다. 굿닥이라는 어플을 보면, 의사가 어디 전문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사람들 평은 어떤지 전부 다 볼 수 있다. 악플이라도 달리면 의사도 스트레스 받을 거다. 수소문해서 정보를 찾지 않고 뭐든 검색을 하는 우리에게 매우 쓸모있는 어플이다.
맛집도 검색하고, 학원강사도 검색한다. 심지어 입사할 회사도 검색해보면 현재 다니는 직원의 솔직한 익명후기를 볼 수 있다. 너무 적나라해서 민망할 정도다. 로톡도 비슷하다. 송사는 일상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수소문할 수 없다. 지인 중에 변호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검색해봐야 한다. 누구나 쉽게 검색해서 변호사와 상담할 수 있다. 상담료나 수임료는 오프라인 사무소를 찾는 것보다 저렴하다. 이걸 그럴듯한 말로 표현하면, 정보 격차 해소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못하게 하는 걸까. 그 이유가 재미있다. 변호사에게 경쟁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수년간 피말리는 경쟁을 하며 사법고시를 보고 로스쿨을 준비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이상 싫은 걸까.
변호사 수가 턱 없이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법조인은 그 존재 자체가 갑이다. 변호사 자격증을 받은 순간부터 쭈욱 갑으로 살아오고 있는 거다. 갑이 평점을 받고 갑이 광고를 하고 갑이 고객관리를 해야한다? 다른 건 몰라도 고객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을 거다. 친절은 을의 태도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을에게 친절을 요구한다. 스스로 갑이라고 인식하면 대놓고 소리지르고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 을의 뺨을 때릴 수도 있다. 갑질을 웃는 얼굴로 받아내며, 을은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한다.
갑의 태도는 독점에서 나온다. 즉 경쟁을 하지 않아야 오만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갑의 견고함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당연히 갑은 저항한다. 무의미한 저항이다. 빠르던 느리던 기술의 발전은 되돌릴 수 없다.경쟁도 싫고 평가도 싫고 친절도 싫다. 이해는 된다. 나도 싫으니까. 하지만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세상인가. 변호사가 보는 세상은 그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