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들이 예능에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관행이 되었다. '무릎팍도사'는 사업가 안철수를 단번에 대선주자로 만들만큼 위력을 보이기도 했다. 18대 대선에도 박근혜와 문재인이 '힐링캠프'에 나왔다. 박근혜는 노래를 부르고, 문재인은 격파를 했다. 노래가 이겼다. 19대 대선에서는 결과가 정해진 선거라 그런지 굳이 예능에 출연하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토크쇼에 나오는데, 요즘엔 '집사부일체'가 그 역할을 맡았다. 평소에는 한번도 본 적 없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대선 후보가 나온다고 해서 굳이 찾아봤다.
예능에 출연하면 친근한 이미지가 생긴다. '아내의 맛'에는 나경원과 박영선이 나와서 혜택을 보았다. 재미가 목적인 것도 아니고, 샅샅이 파해치는 목적도 아니고, 오로지 출연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보니, 어설픈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 정말 이게 유권자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우려가 들지만, 그래도 판단을 하고 투표를 하려면, 봐야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게 연예인의 영혼없는 리액션 모음이라 할지라도.
※ 주의 : 정치인 얼굴을 문득 그리고 싶어서 썼습니다. 이 글은 온통 정치 이야기니 일부 독자들에게는 아주 혐오스러운 내용일 수 있습니다. 이 다음 글은 다시 책입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먼저 윤석열 편을 보았다.
방송 전체가 친근한 형 이미지를 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격파 대신, 노래를 불렀다. 보좌관과 방송국에서는 고생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윤석열 본인은 시종일관 권위적이었다. 연예인 진행자들을 만나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데, 그는 당연히 반말이다. 말을 편하게 할까요? 묻지 않는다. 항상 누군가를 감옥으로 처넣는 검사 역할을 하며 살아왔으니까. 좋게 포장한다면, 내가 임마 좋은 형이야 임마. 이런 태도였다.
이재명에 비하면 시청자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요즘 사람들은 꼰대 싫어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재명의 공손한 태도가 옳고 윤석열의 권위적인 태도가 나쁜 건 아니다. 상명하복 문화에서 만들어진 검찰형 인간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뽑으면 된다. 내 스타일은 아니다.
윤석열이 요리를 했다. 비웃었다. 촬영하다고 하니 별 걸 다 하는군, 하고 평가절하했다. 김치찌개는 고기도 넣고 달달 볶아서 진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양념을 물에 씻어 버리고, 맑은 김치탕을 끓인다고 했다. 나는 이미 여기서 마음이 상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계란말이. 윤석열은 자연스럽게 스텐팬을 꺼냈다. 응? 스테인리스 팬? 나는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과거에 스테인리스 팬에 도전했었다. 하지만 코팅 팬과 달라, 자칫 방심하면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다. 타버리면 물에 불려서 씻고, 또 타버리면 물에 불려서 씻는데, 그만 질려버렸다. 지금도 스테인리스 팬을 보면 짜증이 올라온다.
스텐 팬을 산 이유가 있다. 일단 아름답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방에도 스테인리스 주방기구를 놓아야 한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기스가 나고 바꿔줘야 하는 코팅 팬에 비해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에도 이롭다. 코팅 팬은 PFOA(과불화옥탄산)으로 만드는데, 이게 2군 발암물질이다. 고온에서 요리하면 (요리는 원래 고온으로 한다) 유해물질이 나와서 몸에 안 좋다. PFOA FREE 마크가 적힌 코팅 팬도 나온다.
유일한 단점은 사용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게 치명적이다. 예열도 필요하고 오일 코팅도 필요하다. 미리 충분히 달궈지지 않았다면 눌어붙는다. 팬에 올리는 재료가 차가워도 눌어붙는다. 미친듯이 눌어붙는다. 예열한 후에 물을 조금 부으면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가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 요리를 시작하면 된다. 불이 너무 새면 또 탄다. 그 전에 불을 끄거나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윤석열이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굴리고 굴려서 두툼하게 만든 계란말이를 도마에 올렸다. 용의자 자르듯이 빵칼로 스윽스윽 자르는데, 그 잘려나간 단면의 아름다움.
이런 예능이 유권자에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나, 했던 비판은 철회한다. 나는 이번에 윤석열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