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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Nov 19. 2021

역시 국문과 출신

 _이성혁 「2분30초안에음료가나가지않으면생기는일」

제목이 별로였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너어무 길었다. 그냥 긴 제목이 요즘 유행이니까, 길게 한건가... 하고 추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고른 건 결국 내용 때문이다. 내용을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니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좋은 제목이다.


저자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만든다. 주문이 들어오면 일단 디스플레이에 시간이 초록색으로 표시된다. 2분이 넘어가면 노란색으로 바뀌고 2분30초가 되면 빨간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책 제목이 2분30초안에 음료가 나가지않으면 생기는 일인 거였다. 저자는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고 한다. 게다가 마침 하는 일 때문에 요즘은 2분30초에 초조해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2분30초가 넘으면 어떻게 될까. 디스플레이가 빨갛게 되고, 마음은 초조해진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은 없다. p.19
 _이성혁 「2분30초안에음료가나가지않으면생기는일」



독립출판은 자본에서 독립했다는 뜻이지만, 일정한 지식적인 기반이나 문학적 기초에서도 독립적이다. 기성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면, 적어도 어느 정도 수준은 담보하는데, 독립출판은 그게 없는 거다. 대신, 작가 스스로를 그대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러다 보니, 객관적으로는 형편없는 작품도 많다. 그렇다고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아마추어 느낌 그대로를 즐기는 게 독립출판이다.


그 와중에 문학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을 만났다. 읽다보니 저자가 국문과 출신이라는 게 밝혀진다. 아하. 그럼 그렇지. 글이 좋다 싶더니 역시 국문과였다. 사람들이 내 전공을 듣고 '아 그래서 많이 아는구나' 할 때마다, 나는 변명하느라 내 모든 전공지식을 활용한다. 대학 때 나는 놀기만 했고 공부는 거의 안 했다. 전공 수업에서 기억나는 건 사람 이름 정도... 전공이라고 잘 한다는 건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국문과 출신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년이면 나이가 배스킨라빈스인데 무슨 맛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인생을 선택하는 것도 맛보기 숟가락이 있었으면 좋겠다. p.44
 _이성혁 「2분30초안에음료가나가지않으면생기는일」


책보부상에서 그를 만났다. 바리스타를 하며 경찰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아 그러면 합격하신 건가요? 라고 묻고 말았다.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쓴 회고록인 줄 알았다. 기성 출판물은 보통 그렇지 않나? 착각했다. 경찰 성공기가 아니라 경찰 도전기입니다, 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뿔싸.


다들 첫 번째 시험은 올림픽 정신이라고 했다. 참가에 의의를 두는 거라고. 그래서인지 나는 다음 시험에는 합격할 것 같다고 김칫국을 마셨다. 동치미처럼 내 목구멍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더 열심히 달렸더니 첫 번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p.12
 _이성혁 「2분30초안에음료가나가지않으면생기는일」


독립출판물을 짧은 웹드라마로 만들어주는 유튜브가 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영상으로 나오니, 아 연출자는 이걸 이렇게 해석했네? 하며 따져보는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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