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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n 25. 2022

통밀과 무화과와 통밀무화과

설탕은 혐오의 대상이다. 저탄고지는 트랜드다. 심지어 #설탕세 까지 논의되고 있다. 설탕이 들어간 식품에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비만세 와 비슷하다.


#설탕 혐오는 사실 비만 혐오다. 성인병을 두려워하고 살 찌는 걸 증오하는 거다. 미국이 비만율 40%인 걸 생각하면, 한국은 사실 걱정할 게 없다. 한국의 비만율은 5%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설탕을 좀 섭취해보려고 한다.


나는 쿠키를 좋아한다. 쿠키는 크게 나누면 부드러운 쿠키와 딱딱한 쿠키로 분류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부드러운 쿠키다. 쿠키는 많지만 부드러운 쿠키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쿠키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기 전에는 주로 카페에서 쿠키를 먹었다. 커피 마실때 같이 먹을 주전부리가 없나 찾다가 주문하게 되는 거다.


그러다 처음 쿠키에 맛들이게 된 계기는 양화였다. 합정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산책을 하기위해 종종 찾는 공원이 있다. 절두산이다. 자를 절. 머리 두. 이름부터 후덜덜한 병인박해의 아픈 유적지는 이제 공원이 되었다. 절두산 올라가는 길목에 카페 양화가 있다.


#카페양화

@yanghwa_coffeebar


트렌디한건지 요상한건지 헷갈리는 아방가르드 카페다. 여기에서 커피나 피클맥주를 마시는데, 무엇보다 쿠키가 부들부들 쫄깃쫄깃 맛있다. 항상 적은 수만 놓아서, 마지막 하나를 먹을 때도 많고, 이미 바닥 나서 못 먹을 때도 많다. 쿠키가 다 떨어져서 못 먹게 되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여기서 알게 되었다. 나는 쿠키를 좋아하는구나.


#온초점

@onchojjum


온초점도 분위기가 이쁘다. 책 읽기도 좋고, 노트북 하기도 좋아서 종종 간다. 녹차라떼에 샷을 추가해서 마시는데, 쿠키를 가끔 곁들인다. 가끔만 곁들이는 이유는 메뉴가 매일 다른데 쿠키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케이크나 브라우니, 스콘이 있을 때가 가장 많고, 가끔 쿠키가 나온다. 하지만 쿠키가 제일 맛있다.


쿠키는 정해진 레시피대로 따라하면 초보자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실온의 버터에 먼저 설탕을 넣고 섞다가 이어서 소금간 한 계란을 넣는다. 박력분을 체에 쳐서 넣는다. 반죽을 자르듯이 주걱으로 섞는다. 냉장고에서 숙성하고 밀대로 밀어고 틀로 찍어서 모양을 만든다. 오븐에 구우면 완성이다. 만드는 건 쉽다. 부드럽고 맛있는 쿠키 만드는 게 어려운 거지.


이 두 카페는 시작일뿐이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쿠키를 찾아다닌다.


쿠키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 걸 확인하고 나는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쿠키가 맛집을 찾아서 사먹어 보기 시작한 거다. 생각보다 쿠키 전문점의 쿠키라고 다 맛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작은 가게가 더 맛있기도 했다. 이건 내가 부드러운 쿠키를 좋아하기 따문이다. 쿠키는 대부분 딱딱하다. 코엑스에도 유명한 곳이 있고 합정과 홍대에도 있다. 가서 먹어보았다. 코엑스는 완전 딱딱. 홍대 쪽은 괜찮았다. 그러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


#쑥국당

@ssook_kook_dang

#궁필라테스

@goongpilates


일주일에 두번 필라테스를 하는데, 그 근처에 쿠키 가게가 있다. 아마, 필라테스 했으니까 이제 쿠키 먹어야지, 하는 사람들이 쑥국당에 오고, 쿠키 먹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필라테스를 해야겠군, 하는 사람들이 궁필라테스로 가는 듯 하다. 냉전시대의 남과 북처럼, 적대적 공생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암튼 둘 다 필요하다. 둘 중 하나라도 없어지면 큰일 난다.


나도 필라테스를 마치고 나면 당당하게 쑥국당에 간다. 테이블 한두개 두면 꽉 찰 것같은 작은 상점에 쿠키를 깔아놓고 그날 만든거 다 팔면 문 닫는다. 몇년 전부터 이런 식의 가게들이 여기저기 생기는 것 같다. 늦게 가면 살 수 있는 쿠키가 몇개 안 남아있다. 나는 여기서 꾸덕치즈를 제일 좋아하고, 꾸덕쑥, 돼지바도 필수구매품. 한번에 여러개 사놓고 일주일 냠냠 먹는다.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한다. 저번달에 없던 메뉴가 어느 순간 생긴다. 얼마전에는 군고구마가 생겼던데 아직 못 먹어봤다.


그렇게 몇달을 먹었다. 쑥국당에 들린 만큼 필라테스에 들렸고, 당수치는 오르락내리락 했다. 나는 평생 쑥국당만 먹어야지~ 하는 안일한 태도로 살았다. 통밀무화과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사실 쑥국당을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웠고 신났고 열심히 먹었는데, 오늘은 다른 쿠키 때문에 매우 흥분한 상태라 비교적 차분한 논조로 서술하는 걸 이해바란다. 꾸덕쿠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쑥국당 엄청 추천한다.)


#통밀무화과


통밀무화과를 만난 후 나는 마치 새해를 맞아 금연을 결심한 사람처럼 금단증상에 휩싸였다. 일요일에 우연히 먹었는데, 여기 사장님은 어디 딴살림이라도 차렸는지 월화수를 다 쉬었다. 젠장. 통밀무화과를 미리 사놓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화요일과 수요일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가보았지만 역시나 닫힌 문 앞에서 쓸쓸히 돌아왔다.


#통밀


통밀무화과는 말 그대로 통밀로 만들어진 쿠키다. 시판하는 과자 오리온 다이제와 비슷한 느낌이다. 너무 달지도 않고 고소하다. 잠시 통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밀빵이 몸에 안 좋다고 하며 통밀빵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통밀빵은 몸에 좋은 대신에 맛은 떨어진다. 그러면 쿠키도 통밀쿠키는 밀쿠키보다 맛이 떨어진다... 는 개뿔. 통밀로 만들었는데 미친듯이 맛있다. 이제 새하얀 밀로 만든 쿠키는 먹을 이유가 없어졌다. 지금까지 맛없는 통밀빵 만든 사람들은 다 구속시켜야 한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데 왜 통밀로 만들지 않고 새하얀 밀로 쿠키를? 밀의 존재가치마저 부정해버리는 맛이다.


#무화과


통밀 사이사이에 무화과가 박혀있다. 무화과는 그냥 과일째로 먹으면 맛이 안 산다. 요리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처음 무화과에 빠졌던 계기는 청담동에 있는 미엘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근처 핫한 레스토랑을 찾아갔는데, 여기에 무화과 피자가 있었다. 약간 바삭한데 부드럽고, 씹히는 맛이 있는데 그냥 꿀떡꿀떡 넘어가는 이게 뭐지?! 그게 무화과였다.


#미엘


무화과는 뽕나무의 일종이라는데, 과연 한방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음 역시 청담동이야, 하며 뽕의 기운에 취했다. 그게 여기 통밀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거다. 청담동을 통째로 씹어먹는 맛이다.


가운데는 노오란 크림이 올려져있다. 크림치즈인지 뭔지 모르겠다. 통밀무화과는 전체적으로 너무 달지 않고 담백한데, 가운데 부분이 달달해서, 이게 또 사람 미치게 만든다. 가운데 부분을 먹으면서 꽃기린 @purple_and_book 님과 논쟁이 붙었다. 바삭한 바깥 부분을 먼저 먹고 나서 가운데 크림부분을 먹을거냐, 아니면 바삭한 겉부분과 가운데 크림 부분을 같이 먹을거냐 하는 논쟁은 이재명이냐 윤석열이냐 하는 논쟁만큼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꽃기린님은 '따로 먹어도 너무 맛있다'파, 나는 '가운데와 바깥을 적절히 섞어먹어야 더 맛있다'파다. 어찌되었건 하나가 당선되었다.


월화수 오매불망 기다리다 겨우 목요일이 되어서 다시 가게에 찾아갔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을까. 이미 통밀무화과는 다 팔렸단다. 젠장. 통밀무화과에 빠진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여기도 매일 만든 걸 다 팔아버리고 문을 닫는다.


진짜 비추다. 한번 먹으면 자꾸 생각나서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통밀무화과 비추.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정말 딴살림을 차린다고 한다. 현재 공사중인데, 이사갈 곳도 #구디 근처다. 멀리 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 설레게 만들고 떠나버리는 오브베이크 진짜 비추!


#오브베이크

@aubeb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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