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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l 03. 2022

릴레이소설

_수박와구와구 「커넥티드북페어릴레이북」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릴레이소설에 참여했다. 소설을 쓴 거다. 항상 일기 같은 잡글만 쓰고, 소설은 엄두도 못했는데, 릴레이소설은 쓴다고 해서 과감히 시도했다.


#커넥티드북페어

#커넥티드북페어릴레이북

#릴레이소설


릴레이소설이란 무엇인가


여러명의 참여자가 순서를 정해서 소설을 쓰는 거다. 그런데 집필 기간이 매우 짧다. 릴레이소설의 특징 첫번째는 조급함이다. 오랜기간 준비해서 차곡차곡 쌓는게 아니라 며칠안에 짧은 소설 하나를 뚝딱 써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어설픈 측면도 있다. 여러명의 작가가 차례대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수 없다.


두번째 특징은 연결성이다. 첫번째 주자는 자유롭게 쓴다. 큰 틀의 세계관이 여기서 결정된다. 현대사회가 배경이 될지, 공상과학 속의 미래가 될지 오로지 첫번째 작가의 기분에 달려있다. 그러면 다음 주자는 글을 이어서 써야 한다. 첫번째 작품에서 좀비가 나오면, 두번째 작품에서는 좀비가 죽든 살든 서사가 이어져야 한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올수도 있지만 결국엔 처음에 나온 주인공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첫번째 작가의 의도가 계속해서 전달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세번째 특징이 나온다. 급발진이다. 어찌보면 이 특징 때문에 연결성이나 개연성이 훼손되기도 한다. 이게 없으면 릴레이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필수적이다. 작가가 마음 먹으면 뭐든 바꿔버릴 수 있다. 좀비소설로 시작해서 소설이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다섯번째 즈음 되는 작가가 마음 먹으면 치료제 개발해서 좀비 세상 끝나고 다시 인간 사회의 재건이 주제로 등장할 수 있다. 치료제를 맞지 않은 작가가 나온다면 갑자기 꿈이었다거나 상상이었다는 식으로 소설을 끝내버릴 수도 있다.


계기는 커넥티드북페어였다. 참여자 중에서 10팀을 뽑아서 글을 쓴다고 했는데, 별 생각없는 지원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처음 써보는 소설이라 너무 어려웠고 또 재미있었다. 에세이도 자유롭지만, 소설은 그 이상이어서 어떤 작품을 만들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결국엔 평소 에세이 쓰던 느낌으로 막 써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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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지구는 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서 화성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시기다. 특이한 건 좀비 바이러스가 파괴적이지 않다는 거다. 아픈 사람이 좀비 바이러스에 걸려서 병이 나아버리는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질병은 없어진다. 인간 주인공과 동시에 좀비 주인공도 등장한다. 두 등장인물로 인해서 글은 스릴러가 될수도 있고 로맨스가 될 수도 있다. 주인공은 일기를 쓴다.


2


두번째 작가는 일기 쓰는 인간 주인공을 받아서 계속 이어간다. 좀비는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그린이라고 불리는데, 두 주인공은 그린의 피를 가지고 이런저런 실험을 한다. 다음 작가들이 아마 그린의 피를 가지고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도록 준비한 장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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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사진이 등장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써서 그런지 비쥬얼에 신경쓴게 돋보인다. 이렇게 작가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는게 릴레이소설의 맛이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블루노트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다. 바이러스를 박멸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을 한다. 여기서 바이러스는 그린이니까 결국 그린을 없애자는 거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의 손이 파래진다고 언급하며 복선을 첨가했다. 이제 구도가 조금더 선명해졌다. 사람과 그린(좀비) 뿐만 아니라 그린을 제거하려는 세력(블루)도 있고 주인공이 블루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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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내가 썼다. 갑자기 장르는 여자친구 관찰기가 되어버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입장에서 그린을 관찰한다. 재미있는 형태면서 의미도 있으면 좋으니까,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을 설명하고 싶었다. 원래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꿈은 거창하다.


여자친구는 매일 광합성을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죽이지 않는다. 그린 옆에 서있는 인간은 상대적으로 폭력적이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잔인하게 동물과 식물을 이리저리 비벼서 먹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는 동물과 식물에 축적된 에너지가 필요하고, 또 마침 맛있다. 맛있게 태어난 생명이 운명 같은 게 아닐까.


그리고 상황 하나를 더 넣었다. 연구소에서 그린을 연구한다는 핑계로 그린을 착취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그래서 인간과 그린(여자친구)는 전주로 탈출해서 숨어지내는 거다. 상황은 더 극적으로 바뀐만큼 인간에 대한 묘사도 더 자극적이 되었다.


인간은 동물이다. 하루종일 빛을 받아도 산소 대신에 욕망만 뿜어낸다. 이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동물을 잡고 식물을 뜯고 그린에 주사 바늘을 꽂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심각한 척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첫 소설을 쓴 입장에서는 마냥 뿌듯하다.


그리고 몇가지 떡밥을 더 던졌다. 다음 작가들이 이 떡밥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두근두근 마음을 졸이며 썼다. 하나는 그린 주인공의 죽음. 처음에 인간 주인공과 그린 주인공이 같이 연구를 했다고 시작했는데, 그중 그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린과 인간이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 특이하지만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무책임하게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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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충격적이게도 만화다. 동글동글 아이 같은 감성의 귀여운 만화가 느닷없이 등장한다. 그린이 되어버린 인물이 잔디밭에 누워서 광합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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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던져놓은 떡밥을 제대로 활용한다. 시작부터 스릴러다. 그린 주인공은 죽었고 인간 주인공은 살인 혐의를 쓰고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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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명의 작가가 참여해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백신으로 바이러스만 치료하고 싶었는데 그린 바이러스가 없어지니 주인공 그린은 죽어버리게 된 거였는데, 알고보니 더 나쁜놈이 있고, 알고보니 화성이 지구보다 더 살기 안좋은 환경이었고, 알고보니 메타버스 세상에 지상낙원이 있었고, 알고보니 이게 다 어쩌구저쩌구였다.. 라는 식으로 마무리가 된다.


참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와 완성된 작품을 다시 마주한 후에 독자의 입장에서 볼때의 느낌이 천지 차이다. 글을 쓸 때는 정말 세상 작가, 작가라는 사명을 받고 태어나 이 작품만은 내가 갈고 닦아서 대작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펑펑 발산되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실망스럽다. 비전문가가 촉박한 시간에 짜내는데 게다가 서로 소통을 해서 만든 것도 아니니 어설픈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 던져놓은 떡밥이 전부 그럴듯하게 마무리 된것 도 아니고 예상가능한 범주에서 그리 벗어나지도 못했고, 의미, 재미, 예술성 모두 참가에 의의를 두는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은 큰 기대를 가지고 보며 안 된다. 그래서 독립출판페어에 어울린다. 독립출판은 누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만큼 기성작품에 비해 질적 완성도는 떨어질 수 있지만 중구난방 예측불가 개성이 팍팍 넘치는 장점이 있다. 이책의 장점도 일맥상통한다. 참여 작가들을 안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다. 아 이 작가님이 이렇게 썼구나... 게다가 독자에게는, 내가 다음에 참여하게 되면 나는 이렇게 써보고 싶다.. 하는 의지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소설 재미있다. 나 소설에 재능 있는듯. (낙관적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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