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짜증
연예인의 역할1
우리가 톱니바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연예인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있다. 연예인의 역할은,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히 영화 한 작품에서 어떤 역할로 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의 모습까지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가 일이다.
주로 즐겁고 멋있게 사는 것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는 유재석, 김연아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 혹은 저런 사람이 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억소리 나는 회당 출연료나 세금만 수십억 내야하는 CF 출연료를 들으면 일순간 허탈해지고 질투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연예인의 역할2
어떤 연예인은 잘 나가다가 몰락하기도 한다. 사고를 치고 입국금지를 당하거나 구속당해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것도 연예인 역할의 변주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욕하지만, 손가락질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빅뱅의 멤버 승리(성매매 알선)는 그 몰락의 낙차만큼 사람들에게 후련함, 시원함을 안겨주고 있다. 정준영(성관계 영상 불법 촬영)이 사실 인간적으로는 더 나쁘지만. 사람들은 승리를 더 신나게 욕한다. 높이 떠있던 사람이 떨어지는 장면을 씹고뜯고맛보고즐긴다. 어떻게 보면, 승리와 정준영은 나름의 방식으로 연예인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분노와 짜증
승리와 정준영에 대한 분노가 정당한 분노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연예인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아무 의미 없는 짜증이다.
반면 분노는 현재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분노는 짜증과 구별된다. 오늘의 사회를 특징짓는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간다. 사람들은 불가피한 일에 대해서도 짜증을 내곤 한다.
_한병철 「피로사회」
배우 김유정은 한 무대인사 자리에서, 짝다리를 짚었다. 그의 사소한 잘못은 인성 문제로 번져서 '건방지다', '싸가지 없다'는 댓글이 수 없이 달리기도 했다. 짝다리를 짚은 일로, 희대의 싸가지녀가 된 것이다. 각종 포털에서 탈탈 털리다가 결국 사과문을 올렸다.
우리는 쉬지 않고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에 가슴 아파하고,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못한 채 직장 상사의 사생활 침해와 부당한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우리 자신을 안쓰럽게 여긴다. 거의 모든 노동이 감정노동의 성격을 지니게 된 세태에 대해 분노하고, 남에게 굽실거리지 않고도 존엄을 챙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연예인이 나에게 감정노동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격분하는 것은 왜일까?
_이승한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어리고 이쁘고 만만한 김유정에게는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모아 발산하면서, 귀찮고 피곤하다며 방송 중에 들어누워버리는 아저씨 이경규에게는, 재미있다며 찬사를 보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유정도 버럭개그를 미리 배우는 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