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Dec 17. 2022

마음난리

#마음난리

#서하늘


한국의 다자이 오사무가 나타났다. 김봉철도 어둡지만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우울이다.


책 앞에 자기연민에세이라고 써있다. 문제는 이게 진짜 라는 거다. 정말로 저자는 스스로가 불쌍해서 종종 운다고 한다.


저자의 성격이나 사상은 쉽게 공감이 갔다. 나랑 비슷하다. 하지만 나랑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불행했던 유년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가족이 회사에 연락해서 돈을 요구한 이야기, 이름을 바꾸고 핸드폰 번호를 바꿔도 끈질기게 연락해서 돈을 요구하는 상황을 들려준다.


상황은 처참하다. 저자도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 서사 위주의 빠른 전개와 과장하지 않는 담담한 어투 때문일 거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편안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늘 화가 나 있다.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불쾌한 일들에 싸늘하게 칼을 갈며 산다. 16p
나는 내가 불쌍해서 운다. 가난하고 외로운 내가 불쌍하다. 잘 해보려고 하는데도 영 안 풀리는 내가 안쓰럽다. 이 책이 '자기연민 에세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이유다. 18p
이성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면서 겉으로는 무심한 척한다.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밥은 잘 먹는다. 무의미와 허무에 빠져 오랫동안 허우적대고 있다. 늪 속에서 치는 발버둥은 어떤 흔적을 남길까. 궁금해하고 있다. 18p


다만 걸리는 게 있다. 선을 넘는다. 적어도 가족에게는 매우 공격적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살아서 버티고 결과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건 맞지만, 가족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 매번 공격적이다. 이부분만 좀 뺐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해보지만, 그걸 빼면 서하늘 작가의 글이 아닐 거다. 글은 작가의 일부다. 그래도 빼면 좋겠다. 다이어트 좀 하면 안되나? 남 일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하늘씨는 어려움을 마주하면 늘 도망치는 쪽을 택해요. 스스로 잘 알고 있죠? 사실 하늘씨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패턴을 반복하며 삽니다. 자신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25p
그 후로 꿈에 자주 아빠가 나온다. 그의 무능과 폭력은 내 마음을 고장 냈다. 홧김에 시작한 비트코인과 주식 투자는 모두 실패했다. 31p


원서 표지는 화사한 분홍에 흰 네모가 몇개 있고 제목이 나온다. 이걸 살려서 네모 패턴을 그려보았다. 흰 네모를 여러개 그리고 작은 네모를 넣었다. 작은 네모를 지우고 작은 동그라미로 바꿨다.




우리는 모두 허기진 몸을 끌어안고 산다. 내 몸은 사랑받지 못한 지 오래됐다. 비루한 몸이지만 가끔은 나도 뜨겁게 사랑받고 싶다. 굳어버린 마음이 녹아 뜨거운 물이 되어 흐르면 좋겠다. 나처럼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며 안아주고 싶다. 75p
일대일 대화는 모두 지운다. 꼭 기억하거나 다시 떠올려야 할 중요한 대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단체방, 독서모임방, 나와의 채팅만 그대로 둔다. 103p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멋있다고 한다. 도전을 응원한다고 한다. 이게 도전인가. 나는 갈 곳이 없어 여기에 있는 것뿐인데, 현실의 벽을 넘을 자신이 없어 도망치는 중인데. 134p


서하늘 작가의 책을 여러 서점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핑크핑크 산뜻한 표지(마음난리)와 화사한 노랑 표지(글쓰는제주)가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독자들이 멀끔한 껍대기에 끌려 펼쳤다가 날카로운 글에 베이기라도 하면 얼마나 놀랄까. 생각만 해도 신난다. 흔하디 흔한 우울에세이를 예상하고 책을 펼치면 당한다. 나만 당할 순 없지. 후후.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마음이 전부인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