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에 있는 장유넘버25호텔이라는 한번에 발음하기도 어려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고양이와 함께 장기투숙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펫룸이 있는 숙소가 필요했다. 김해에는 고양이를 데리고 지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도 안 나오는 걸 꽃기린이 블로그 뒤져서 겨우겨우 찾아냈다. 어쩌면 여기가 유일하다. 부산에는 많다.
내부는 일반 모텔과 유사하고 가격은 조금 더 비싸다. 반려동물이 이리저리 몸을 문댈테니 청소도 빨래도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거다. 침대 시트나 이불이 망가지는 장면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1층에 빨래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각 층마다 전자레인지가 복도에 있다. 조식배달 서비스가 있다고는 하는데 안 해봤다. 집에서 싸온 밥이랑 반찬이 있어서 아침은 그걸로 먹었다. 바로 앞에 반려동물용품 파는 가게가 있고, 바로 뒤에 롯데마트가 있다.
상호 | #장유넘버25호텔 주소 |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301-2 특성 | #펫룸 #반려동물동반숙소
당연히 고양이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낯선 곳에 도착해보니 알 수 없는 채취가 난무하는 곳이니, 외계인의 우주선에 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 기분일 거다. 처음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츄르도 먹지 않았다. 같이 놀아주며 시간을 좀 보내고 나니 간식도 먹고 잠도 자고 나중에는 화장실도 이용했다. 차츰 경계를 풀어서 방바닥에 철부덕 주저 앉기까지는 10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 같다. 사료는 안 먹는다. 원래 간식은 하루에 한캔 정도만 주고 더 달라고 해도 안 줬다. 대신에 사료를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료를 거의 먹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캔 위주로 주고 있다.
이렇게 적응하는데 어려워하는 걸 보니, 앞으로는 여행 일정 짜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겠다. 하루이틀 여행은 고양이를 집에 두고 간다. 어정쩡한 사흘 나흘 여행은 아예 가지 않는다. 한달 이상 장기간 여행은 고양이와 같이 가되, 한 숙소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
결심하며 베를린일기를 읽었다. 여행지에서 직접 쓴 일기를 묶어만든 책이다. 이미 읽었지만 가져왔다. 최민석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글을 쓰려고 하는 입장이라 표절하려고 챙겼다.
제목 | #베를린일기 저자 | 최민석 @run_write_sing
베를린에서의 여덟 번째 밤. 이 글은 냄비에 밥을 안쳐 놓고 쓰고 있다. 애초에 귀찮은 조리 행위는 내 인생 계획에 없었으나, 어제 집주인 할머니가 주신 김치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나도 모르게 김혜자 선생처럼 “그래! 이 맛이야”를 외치며, 냄비에 쌀을 붓고 있었다. 44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 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었다. 필요한 날이었다. 열네 번째 날이다. 76
이 글은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서 한참 뒤에 쓰고 있다. 기묘하게도 오늘 달리기를 하고 나서 포기의 미학을 강하게 느꼈다(고로, 달리다 멈춰서 걸어왔다). 결심과 선언이 인생에서 무용하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숙지하고 있기에, 일순의 충동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문신 같은 기록을 남기는 우는 범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앞으로 되는대로 살 것이다. 대강. 그런 이유로, 오늘 일기는 이걸로 마친다. 서른아홉 번째 날이다. 199
경험칙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다. 법률용어라고 한다. 경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얻어낸 법칙을 의미한다. 여행 와서 일기를 쓰려고 하면, 이상하게 일기가 쓰고 싶지 않다. 이건 실험을 통해서 얻어낸 측정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누가 일기를 안 썼다고 하면 이렇게 일갈할 수 있다.
네가 일기를 안 쓸 거라는 건 건전한 상식과 경험칙에 미루어볼 때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