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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l 09. 2023

김해는 삼계탕의 고장이다

김해책여행 5

어렵게 김해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바로 쉴 수는 없다. 짐이 많아서 여러번 오르락 내리락했다. 지금 하루살이가 아니라 한달살이를 시작하고 있는 거라 짐이 아주 많다(나름 드립이었는데 후회한다). 짐을 풀고 땀을 닦고 나니 체력은 바닥을 보인다.


숙소 바로 앞 삼계탕 집으로 왔다. 일부러 맛집을 찾으려 했던 건 아닌데 얻어걸렸다. 원래 행운도 불행도 이따구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거다. 태어나보니 재벌집 막내아들인 것처럼, 나와보니 눈 앞에 삼계탕 맛집이 있었다.


건물이 통째로 삼계탕집이어서 여긴 무조건 맛집이라는 확신이 왔다. 주변 환경은 좋지 않다. 온통 다 모텔이다. 여기는 왜 모텔밖에 없냐고 소리 치고 싶었지만, 나도 모텔에서 나오는 길이라 참았다.


상호 | 갑오삼계탕 본점
위치 | 김해시 삼문로 6
특성 | #견과류삼계탕 #김해맛집 #김해삼계탕


삼계탕은 뽀오얀 국물이었다. 사골 느낌 아니다. 그보다는 아메리카노였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낼 때 상단에 뽀얀 거품 같은 게 생기는데, 이걸 크레마라고 한다. 커피 오일에 이산화탄소 거품이 섞여서 만들어진다. 크레마가 있다고 꼭 맛있는 커피는 아니지만 그렇게 보인다. 여기 삼계탕 위에도 마치 크레마처럼 뽀얀 거품이 올려져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이내 경계심을 풀었다. 옆자리 뚝배기가 싹싹 비워져 있었다.


전통적인 인삼 삼계탕 보다는 국물이 시원한 능이버섯 삼계탕을 좋아한다. 너무 맛있는 삼계탕을 만나면 국물까지 다 먹어버린다. 양이 작아서 고기는 꼭 남기지만 그래도 국물은 다 먹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 뽀얀 크레마가 덮힌 삼계탕도 국물 한방울 안 남기고 다 마셨다. 한 입에 내 마음과 위를 다 사로잡았다. 크레마의 정체는 견과류였다. 각종 한약재와 견과류하고 뭐 하고 넣어서 했다는데 뭐 암튼 좋은 거 넣었겠지 아주 뽀얗고 진했다. 닭과 밥은 담백했고 국물은 약간 달았다.



된장도 아주 맛있었다. 고추와 같이 먹으라고 나오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암튼 뭐 좋은 거 넣었겠지 아주 맛있었다. 고추 7개 중 하나는 매워서 바로 내려놓았고 (매운 고추 극혐! 아니 고추가 왜 맵냐고, 말이 되냐고!) 나머지는 아삭아삭 다 씹어먹었다. 같이 나온 인삼주는 보통이었다.


나오면서 물어보니 김해와 창원에 지점이 있다고 한다. 혹시 서울 매장은 없는지 궁금했는데, 한편으로는 아쉽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사람이 이 맛을 모르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쉬운 사람이 이거 먹으러 김해에 오면 될 일이다.


대구에 삼송빵집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제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다. 이거 먹으러 대구에 갈 필요가 없다. 반면 대전의 성심당은 서울 분점을 내지 않는다. 서울의 몇몇 백화점에서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 거절하고 대전에서만 운영한다. 서울로 진출하면 돈을 수십배 더 벌 수 있겠지만, 그만큼 대전과 서울의 차이는 줄어들 거다. 이건 대전의 로컬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 #갑오삼계탕 이 김해에서 하는 역할도 비슷하다. 아직 나밖에 모르는 맛집일 수 있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모른다. 이정도 맛이면 서울에서 김해까지 올 만하다. 언젠가 빵 먹으러 대전 가는 것처럼 삼계탕 먹으러 김해에 오는 사람이 있기를 기원한다.


김해는 삼계탕의 고장이다.



삼계탕의 고장에서 배부르게 먹고 돌아와 이글을 쓴다. 상술했듯이 원래 김해에 온 목적은 글쓰기였다. 써야하는 글을 잔뜩 어깨에 짊어지고 왔으나, 일기만 써도 하루가 다 간다. 퇴근하고 글 쓸 시간이 없다고 핑계대던 습관은 여행지에서도 이어진다. 문득 김사과가 생각난다. 여행 와서 글쓰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글쓰기에는 지루함이 필요하다고 외치던 그에게 수긍하게 된다.


제목 | 디즈니랜드에서 글쓰기
저자 | #김사과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규칙적인 생활을 요구한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일상을 지루하게 만들고, 반대로 생각하면 일상이 지루해질수록 글쓰기에는 좋다. 15
내 생각에 여행지에서의 글쓰기란 디즈니랜드에서 독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남들은 놀이 기구에 올라타 환호하고, 페스티벌 행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솜사탕을 들고 뛰어다니기 바쁜데, 홀로 놀이공원 구석의 커피숍에 앉아 맛대가리 없는 커피를 앞에 두고 두꺼운 소설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15


마침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맛 없다. 크레마는 역시 커피 말고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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