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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시시 Jan 14. 2021

주름의 의미

It's up to you

우리 집 요리는 전기로 한다.

전기로 주방의 메인 자리를 내어줄 생각은 없었으나

이사를 와보니 집에 전기레인지가 장착되어 있었다.

기계랑 워낙 친하지 않은 터라 사용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가스밸브를 열고, 레버를 돌려, 불이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사용했던 가스레인지 사용법과 달리

전원 버튼을 누르고, + 버튼을 눌러 불 조절을 하면 참 간편하다. 무엇보다 행주로 쓱 닦아내면 간편히 닦을 수 있는 점이 가장 좋다.


적응 시기가 필요했다. 가스불로 밥을 하기 위해선 불을 세게 놓고 압력밥솥의 추가 힘차게 돌아갈 때, 약불로 5분 정도 줄이고 끄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구수한 누룽지가 적당히 만들어진다. 처음 전기레인지를 접했을 때, 대체 약불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게 적당한가 싶어 두면 밥솥을 새까맣게 태우기를 밥먹듯이 했다. 이게 적당한가 싶으면, 뭔가 덜 익힌듯한 냄새와 질척이는 밥이 되었다. 그렇게 수십 차례 반복하여 얻은 결론,.. 압력솥의 추가 힘차게 돌아가면 불의 세기를 5로 놓고 5분 타이머 조절해 놓으면 된다(타이머 기능도 있다. 이는 사용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전기레인지와 충분히 적응되어갈 무렵 어느 땐가..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전기레인지 바깥쪽 어딘가에 실금이 간 것이다.

이게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그동안 불 세기 조절, 시간 관리, 나도 모르게 lock이 걸려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눌러보며 익숙해지니.. 눈에 들어온 것이다. 처음엔 분명 새것처럼 싱크대마저 반짝반짝 빛이나 보였다.  그런데.. 실금이라니! 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다른 생각이 든다. 이 실금이 타고 쩍쩍 뻗어나가 미루고 미루다 언젠간 싱크대 상판 혹은 전체를 교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금이 간 상태를 보고 있노라니, 난 왜 얼굴의 주름이 생각나는 것일까?


1. 얼굴의 주름, 삶을 말하다


20대 때에는 한참 멋을 부리며, 혹은 굳이 꾸미지 않아도 젊음 자체가 아름다웠다. 30대 때에는 결혼해서 육아 생활을 하며 정신없이 보냈다. 거울 볼 시간도 없고, 화장실도 제 맘대로 못 가고, 혹여 가더라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볼일을 보거나, 아이를 안은 채 해결하기도 했다. 남편이 같이 있어도 워낙 퇴근이 늦었기에 세 아이를 독박 육아하다시피 하여, 제 때 못 씻어 꾀죄죄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40대가 되었다.

조금씩.. 나의 손에서 하나하나 독립해가는 아이로 하여금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훌쩍 나이 먹은 내가 어색하기도 하다. 대체 얼굴에 잡티는 어느새 이렇게 늘었고, 주름은 언제 생겼는지. 난 좋아서 웃고 있는데 보고 싶지 않은 주름은 언제 이렇게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지.

싱크대는 돈을 들이면 되지, 얼굴은..  한계가 있다. 돈도 없거니와, 돈이 있어서 얼굴의 주름을 팽팽하게 펴 놓았다고 치자. 순간의 자기만족은 될지언정.. 남들의 눈은 속일지언정.. 과연 내 마음마저 속일 수 있을까?


내 얼굴의 나이에 책임을 지는 나이가 불혹이라 했다. 전에는 그 말의 뜻을, 단지 ㅡ 한 사람의 인상착의 정도로 생각을 했다. 막상 나이 마흔이 되어보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0대에는 활성산소를 잡는 항상 화 효소가 생성되는데 40대가 되면 이게 50%나 줄어든다. 뉴스에 보면 40대 가장의 돌연사 관련 기사가 많이 등장하고, 평소 안 아프던 곳이 여기저기 아파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하는 나이가 바로 '40'이다. 이게 바로 항상화 효소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더불어 몸에 근육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동안 소리를 꽤 들어왔는데, 이젠 그런 소리를 들으면 민망하다. 멀찍이 떨어지면 몰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표정 관리한다고 미소 지었던 입가에는 팔자주름이, 작은 눈 커 보이게 하려고 힘을 주었던 이마에는 수평선이 새겨졌다. 이래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를 불혹이라 했나? 하는 싱거운 생각을 한다. 얼굴에 주름은 싫지만, 내가 평소 인상 써서 미간에 찌푸려진 주름이 아니라 다행이다. 내가 늘 짜증에 가득해서 못된 주름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다.


언젠간 이효리가 말했다. 나이게 맞게 늙어가고 싶다고. 최대한 어려 보이고 젊어 보이려고 하는 다른 스타의 모습을 짐짓 돌아보게 한다. 주름은 그 사람의 인생이다. 얼굴의 주름을 통해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 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40대, 10년 후 20년 후 내 모습은 과연 어떨지..



2. 삶의 주름, 연단


어디 얼굴의 주름뿐인가?

내 삶의 주름 또한 다져가야겠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루의 삶 속에서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그렇게 내 삶 속에 주름이 생긴다. 그 주름은 내 삶을 더 견고하게도 하고, 그 속에 쓴 뿌리가 내려 영혼을 상하게도 한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It's up to you!


본인이 좋은 자극제로 받이들이기로 마음먹으면 좋은 약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면 독약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내면이 튼튼해질 것이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평생 남 탓하며 자기의 족쇄가 되어 발전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남 탓하며 신세한탄만 할 텐가. 언제까지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자기 비하하며 살 텐가. 언제까지 안 된다고가.


"그것은 당신에게 달렸다."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수행해 나가자. 안 된다, 못 한다고 말하지 말고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모색해보자. 모두 나의 인생을 견고하고 가치 있게 해 줄 과정들이다. 이 연단의 시기들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나면 더욱 성장한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세월의 흔적인 물건의 갈라진 금처럼,

삶의 흔적인 얼굴의 주름처럼

내가 지나온 길은 내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나,

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훗날 인생을 돌아봤을 때 최소한

후회는 없이 한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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