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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시시 Feb 27. 2021

[책리뷰]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

자식에게 최고의 유산을 물려주는 아빠

200페이지가 안 되는 짧은, 작고, 가벼운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갱지와 같은 이런 질감의 책을 좋아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가벼운 책이 무게감이 없어 좋을 뿐이다.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저자 옥명호, 출판사 옐로브릭)



이 책을 읽고 난 후, 머릿속에 남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잠들기 전 15분 책 읽어주기'이다.


저자, 옥명호는 거제도에서 어부인 아버지 밑에서 대화 없이 자랐다. 오 남매였기에 자신의 것은 없이 물려받고 함께 쓰며 자라다가, 유일하게 '주인'이 되었던 것은, 어느 날 읍내에서 사 오신, 아버지가 내민 책 두 권이었다. '책 주인, 옥명호'라고 써 주신..


그게 시작이었을까?

책에 대해 좋은 기억으로 시작한 그는 현재 편집장으로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을 고른 계기]   


사실, 이 책은 내가 요즘 남편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나는 아이들과 365일 내내(코로나로 특히 가정보육을 하면서) 함께 지낸다. 낮에도 책을 읽어달라면 읽어주는데 보통은 밤에 끊임없이 갖고 온다. (첫째가 어렸을 때에는, 자기 싫어서 잔꾀를 부리나?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희한하게 밤이 되면 책을 손에서 안 놓는다는 사실을 책 육아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 여하튼, 떡실신이 되기 일보직전, 끊임없이 책을 갖고 오는 꼬맹이들로 인해 난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잠자리 책만 남편이 읽어줘도 좋겠어.

그럼 그 시간에 내가 집안일 하지.. 아이들한테 책 읽어주는 건 좋은데.. 사실 체력이 달려.

그리고 잠자리에선 엄마 목소리보단 아빠 목소리가 좋대, 이유는.. 모르겠어..

그럼 남편이 하는 말,

애들이 안 오잖아. ㅡ.ㅡ

다른 남편들처럼, 애들이 오길 바라며 가만히 앉아있다가 얄밉게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아빠가 책 읽어줄게~! 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만

난 엄마가 읽어주는 책이 더 좋아! 하며 엄마 껌딱지가 되어버리는 아이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책을 보게 됐으니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밖에!



[머리+가슴으로 읽기]


본격적으로 내용이 전개되면서 독서 육아(=잠자리 책 읽어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나온다.

직장을 다니던 아내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결국 일을 그만두고 독박 육아를 하게 되었는데, 저자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내가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에, 본인이 도울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에너지를 가장 덜 쓰고 덜 빼앗기는 책 읽기를 선택했다.


너무 피곤한 날은 내용을 엉뚱하게 읽어 웃음바다가 된다고 하는데, 이 역시 격하게 공감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바바파파가.. 떡볶이를.. 먹었는데...' 하며 엉뚱하게 읽거나 잠시 침묵을 하는 등의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박장대소하거나, 엄마 팔을 쿡하고 찌른다. 피곤하고 쉬고 싶을 지라도 잠자리 책 읽어주기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은, '아이가 좋아하니까. 나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거부하고 싶지 않으니까.' 또, 돈이 들지도 않으면서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는 시간이고, 아이에게 좋은 것을 물려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 온종일, 집안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오는 아이 열심히 밀어내며 정신없이 움직였는데, 잠자리 책 읽어주는 시간만큼은 열일 제치고 함께하고, 또 지키고 싶은 특별한 시간인 것이다.




14p. 아이들이 바라는 건 바로 '지금' 함께 놀아주고 시간을 보내는 것


42p. 교육 전문가가 말하는 책 읽어주기 : 데이비드 피어슨 미국 버클리대 교육대학원 학장, 책 읽어주기야말로 언어와 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최고의 방법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갖고 언어나 어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는 언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확장시켜주는데 큰 도움이 된다. "


43p. 아동 발달학 권위자가 말하는 책 읽어주기 : 아이들에게 독서의 첫 단계는 '듣는 독서'이며 아이들은 부모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독서가 사랑과 연관된 아름다운 일.

메리언 울프 교수, <책 읽는 뇌> "많은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구술 언어에 대한 이해력이 높다. 어른들이 책을 많이 읽어준 아이는 주위 모든 언어에 대해 이해력이 높아지고 어휘력도 훨씬 풍부하게 발달된다."


45p. 자녀교육 상담가가 말하는 책 읽어주기 : 자녀교육 상담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자녀를 사랑한다면 책을 읽어주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아무리 일찍 시작해도 상관없다. 갓난아기까지도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고, 간단한 동화책의 그림 보는 것도 즐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당신과 자녀 사이의 유대를 깊게 하는 기회인 동시에, 아이들이 평생 간직할 귀중한 것을 심어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남편이 밤에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이유는.. 저자의 추측이긴 하지만.. 뭔가 나온다.


57p. 여자 목소리를 남자에 비해 고음역대에 속하며 목소리 파장이 짧다. 이에 비해 남자의 목소리를 상대적으로 중저음에 속하며 목소리 파장이 길다... 중저음 목소리가 더 잘 전달되므로.. 아빠의 저음이 훨씬 더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물론, 정확한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의 생각일 뿐이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 나름의 방법으로 강단 있게 키우면 되지만, 같이 사는 남편이 있는 이상, 잠자리 책 읽기는 남편들이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여자와 남자의 뇌구조는 다르기에 책 읽는 방법 또한 다른데, 이를테면 책을 읽고 나서 중간중간에 혹은 말미에 질문을 던지는 내용 자체가 엄마와 아빠는 다르다. 보통 아빠의 이성의 뇌를 사용하는 질문을, 엄마는 감정의 뇌를 사용하는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좌우뇌의 균형 있는 발달과 더불어 아이의 사고력, 언어표현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가지 않을까? 나 또한 추측을 던져본다.


63p. 영국 작가 C.S. 루이스, "연인들은 대개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에게 빠져 있는 반면, 친구들은 나란히 앉아 공통된 관심사에 빠져 있습니다." 이 말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줄곧 책을 읽어주고 싶어 했구나, 공통분모를 원했던 거구나, 평생 친구가 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을 해 왔구나.' 내 전제조건 속에, '나는 이미 나란히 앉아 아이가 행복해하는 일을 같이 꿈꾸는 사람이구나..'하고 말이다.



66p. 자연스레 찾아온 대화의 즐거움이란 소제목을 말하며 가룟 유다라던지 15 소년 표류기에 대한 대화를 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아마 이때, 저자의 자제분들은 사고력이 꽤 성장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 준비 없는 토론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하부르타가 별게 아니다. 단지  질문을 통해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묻고 답하며 토론하는 게 바로 하부르타이다. 아마, 하나님을 믿게 되며, 신앙생활을 한 게, 자녀들에게 이런 긍정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 일이 쉬울까?

무려 12년 동안 자녀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이..!

이에 대한 저자의 항변이다.





71p. 책을 읽어주기 힘든 날도, 읽어주기 싫은 날도, 읽어주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80p.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라 해도 책을 들고 아이들 방으로 가야 한다. 시간이 나지 않는 것이 우리 일상이므로 시간을 내서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게 사랑 아니겠는가.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는 것, 곧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것. 나중에 시간 날 때 시작하려면 늦을지도 모른다.. 그 내일이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내야 한다. '우리를 통해 왔지만 우리 소유는 아닌' 이 존재들을 책임진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또 있을까.

106p.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아직 화가 덜 풀렸다고, 오늘은 책 읽어줄 기분이 아니라고, 온갖 이유를 대며 책 읽기를 멈췄다면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기란 어려웠을 것.

107p. 하지 않을 이유는 언제나 백만 가지이다. 그럼에도 아빠의 책 읽기는 계속된다. 근무로 여력이 되지 않을 때에는 5분이라도 한다.


이어 읽어준, 혹은 함께 읽은 책들을 기록하며

이 책은 마무리된다.


***만화책***

허영만 <색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흥용 <호두나무 왼쪽 길로>, <내 파란 세이버>, 이희재 <만화 삼국지>, 일본 만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초밥왕>


***4-7세 유아책***

티코와 황금날개(레오 리오니/분도), 도서관에 간 사자(미셀 누드슨/ 웅진주니어)

원숭이의 낚시(우에사와 겐지 원작/ 웅진닷컴), 도서관 생쥐(다니엘 커크/ 푸른 날개), 퀼트 할머니의 선물(제프 브럼포/ 홍성사), 그림형제가 들려주는 독일 옛이야기(그림형제/ 웅진닷컴)


***초등학생 시키(8-13세)***

나니아 연대기(전 7권: 마법사의 조카, 사자와 마녀와 옷장, 캐스피언 왕자, 새벽출정호의 항해, 말과 소녀, 은의자, 마지막 전투),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케네스 그레이엄/ 시공주니어), 톰 소여의 모험(마크 트웨인/ 시공주니어),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뒤죽박죽 공원의 메리 포핀스(파멜라 린든 트래버스/시공 주니어), 둘리틀 선생의 바다 여행, 15 소년 표류기, 세드릭 이야기(-> 소공자로 유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시공주니어), 피터팬(제임스 매튜 베리/ 시공주니어),


***청소년 시기(14-19세기)***

로빈슨 크루소(시공주니어), 크리스마스 캐럴(시공주니어), 변신(문학동네), 정글 이야기(시공주니어), 주홍색 연구(황금가지), 바스커빌 가의 개(열린책들), 바스커빌 가의 개, 호빗1,2(시공주니어), 어스시 전집,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 아이네이아스/북유럽신화 여행(서해문집)





그래서..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은?


끈끈한 유대관계 형성, 사랑, 추억..

그리고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유산'이다.


아이들이 엄마 껌딱지가 되고 엄마를 대화의 상대로 찾는 이유는 하나다. 유대관계가 형성되었으니까. 뱃속에서부터 함께였고, 눈을 마주치며 엄마젖을 먹었으며, 무엇보다 '늘 함께'였다. 아빠는? 그럴 시간이 있었을까?... 아빠는 서운해하지 말고 매일같이 아이에게 다가가야 한다. 매일같이 다가가고 노력해도 과연 엄마의 그것과 견줄 수 있을까? 아이는 매일매일 아빠를 밀어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가야 한다. 하루라도 어린 지금이 기회다. 아이와 특별해질 수 있는..

사랑도 줄 수 있을 때 줘야 그 사랑이 진가를 발휘하니까.

지금 한참, 관심과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우리 아이에게

퇴근 후 15분 책 읽어주기.. 전 국민이 동참하면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아빠이지만, 어디 아빠뿐이겠나.

싱글맘이 될 수도, 할머니나 할아버지, 그 밖에 다른 양육자가 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니까.



[마무리]


저자의 재미난 일화들이 몇 개 나온다. 그중 마음을 울렸던 것은, 2주간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책 읽어 주기를 멈추고 싶지 않아 썼던 방법이 '녹음'이었다. 지금처럼 음성 녹음파일 전송이나 국제통화가 쉬운 시기가 아니었기에 녹음테이프에 2주 치 책 읽기를 녹음해 놓고 출장을 갔다 왔는데, 아빠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유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빠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매일 15분의 책 읽기로 이미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몇 년 하다 말겠지 싶었던 그의 예상과 달리 퇴근 후 책 읽어주기를 12년째 지속했다. 언제까지 책을 읽어줄까라는 아빠의 질문에 아이들은 결혼할 때까지라고 대답을 하였고,  저자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첫째 딸아이가 고2가 되면서 책을 혼자 읽겠다고 선언했을 때, 서운했다고 한다. 아마도.. 부모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나가는 데에서 오는 서운함이 아니었을까..?


종종 책을 언제까지 읽어줘야 하나 라는 질문을 하는 이들을 보아왔다. 혹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만 책 읽기를 해 주는 경우를 익히 보아왔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도 또 내 경험상으로도 아이들에게 책 읽기는 아이가 거부하기 전까지 지속될수록 정서적으로 좋다.


남편에게도 이 책을 내밀었으나 읽지는 않았다, 결국 난 남편 옆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열심히 말해주었다. 나의 지속적인 권유 끝에..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내밀던.. 바로 오늘!!

남편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잠자리 책 읽기를 시도했다..  

과연 지속이 될까? 오늘 하루 반짝일 수도 있지만, 계속 새로운 마음으로 시도하다 보면 언젠간 남편도 아이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겠지.  

훗날, 함께 있으면 뒤로 밀려.. 어색하고 불편한.. 아빠가 되지 않도록 내 자리를 남편에게도 살포시 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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