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심을 보인 것은 40년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본 역사도 없고, 선생님이 내주시는 독후감 숙제는 보는 순간 머리가 아프고 한숨이 푹푹 나오기만 했다. 심지어 책도 가까이한 적이 없던 내가 이렇게 글을 써서 힐링을 하고 기분전환도 하고 때론 남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니, 그야말로 세종대왕도 어이없어할 노릇이다.
글쓰기에 있어 나만의 물리적 도구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딸아이의 글쓰기를 봐 주면서 나는 늘 공중에 글을 썼다. 아이가 글을 쓸 때 나도 펜과 노트를 함께 펼쳤다. 하지만, 한 줄 생각해서 쓰려고 하면 불러대는 엄마, 엄마 소리에 결국 나는 둘째, 셋째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나의 첫 번째 도구는 허공이다. 허공에 그냥 생각을 툭 던져놓고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나의 두 번째 도구는 스마트폰이다. 내가 휴대폰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다. 원래 스마트 제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휴대성과 편리성 때문이다. 설거지하다가 생각나면 나만의 글감 어항에 글감이라는 물고기들을 채운다. 수첩에 기록해 본 적도 있지만, 덜렁거리는 성격에 챙길 게 많은 세 아이 엄마인 나는 그냥 휴대폰을 이용한다. 생각나는 단어나 문장을 기록해 놓고 저장해 놓으면 나중에 글감 목록을 찾아보기에도 좋다. 또, 진득하니 앉아서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기에 대부분의 나의 글은 서서 이루어진다. 주방에서 조금, 화장실에서 조금, 아이가 화장실에서 물놀이하는 시간에 조금. 평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내게 핸드폰이 정말 고마운 시간은 틈새 글 쓰는 시간이다.
가장 좋아하는, 나의 세 번째 도구는 노트북이다. 생각하는 족족 화면에 글을 기록할 수 있으니 참 편하다. 수기로 쓰기에는 써야 할 말을 제대로 쓰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 키우는 엄마에게 시간은 생명이다. 쓸 수 있을 때, 후다닥 써 내려가야 한다. 같은 문장을 쓰더라도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글을 쓰지 않아도 돼서 손목도 덜 아프다. 노트북도 너무 많이 쓰면 손목이 아프기는 하나 손으로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또, 자판기 누르는 소리가 참 좋다. 미래에, 머릿 속의 생각이 통째로 영상으로 나오는 시대가 다가온다지만, 모닝커피의 냄새를 맡는 기분처럼, 타자치는 소리는 심지어 힐링도 된다. 스마트한 시대에 글자판 하나하나가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 무엇보다 한 문단 마무리할 때마다 누르는 엔터키를 누를 때는 쾌감마저 느낀다.
글쓰기에 있어 나만의 환경적 도구
새벽 시간이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새벽시간.
사실 밤도 좋다. 하지만, 보통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아직은 세 아이가 나만 바라보기에, 엄마라는 존재가 수면제와 같기에 옆에 있어줘야 잠들지 안 그러면 엄마따라 늦게 잠들어버리기에, 밤엔 다 내려놓고 편히 같이 잔다. (오늘처럼 예외인 날도 있기는 하다).
평소에 잠이 그렇게 많고, 특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나는 어느날부터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성경 말씀을 읽기 위해서이다. 몇 년 전부터 성경 통독을 하고 있었는데, 2년 전(해수로는 3년 전) 통독방의 순장이 되었다. 리더로서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벽시간을 깨우기 시작했다. 맡은 일은 있고, 충실하게 해내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있으면 무엇인가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낮 시간에 아이들과 늘 함께 있는 나로서는 말씀묵상을 대충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다. 내게 있어 성경은 부모님이고 책과 글쓰기는 이성이다. 성경읽기는 당연한 것이다, 부모님의 따뜻한 품과 같다. 반면 책과 글쓰기는 안 보면 보고싶고 자꾸 만나고 싶고 설레는 마음이 요동치기까지 한다. 그만큼 책을 읽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새벽형 인간의 생활이 정착되었고, 이는 내가 매일의 책읽기 인증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아닌 비결이기도 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내 시간. 그 시간에는 내가 가는 모든 곳이 내 공간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이 도처에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그런 나만의 공간.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없어서 방에서 나왔다며 나만의 시간이 깨져버리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이도 자라기에 새벽에 깨는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
바로 이곳, 주방의 식탁이 내겐 나만의 방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최적의 공간. 새벽에 이곳에서 책을 읽고,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쓸 때면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다. 그냥 나란 사람이다. 내 이름 석 자가 태어나는 공간. 내게 우주가 폭발하듯 에너지가 생겨나고 공급받고 방출해내는 이 공간. 한동안, 남편의 일을 돕느라 글을 제대로 못 썼으나, 요즘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바로 이 공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