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심리묘사에 매료되다

프랑수아즈 사강_브람스를 좋아하세요...

by 아시시


한 독서토론 모임의 주제책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이 참 인상적이라 언젠간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이 고전소설이라니, 참 어색하기도 하고 감성적이기도 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게다가 ‘~좋아하세요’ 뒤의 문장부호가 인상적이다.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를 강조한 이 책의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 2008.05.02.



1935년, 프랑수아즈 사강은 프랑스 카자르크에서 태어났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작품 속 등장 인물인 ‘사강’을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 1954년 열아홉 살에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해 프랑스 문단에 커다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해 비평가상을 받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외에 남녀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등이 있다. 두 번에 걸친 결혼, 이혼, 알콜과 마약 중독 등 일생의 어두운 면을 지나오면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2004년 심장과 폐 질환으로 사망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요 등장인물은 폴(39세, 이혼녀, 실내장식가), 로제(폴의 연인), 시몽(25세, 청년, 변호사)이다. 폴은 로제를 기다리고, 로제는 다른 젊은 여자를 만났다가도 폴에게 돌아온다. 어느 날, 일을 하러 간 폴이 시몽(실내 장식 의뢰인의 아들)을 마주치며 새로운 구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변호사인 시몽은 훤칠한 키에 외모가 뛰어나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젊은 청년 시몽의 구애에, 폴은 흔들릴듯말듯 고민하다 결국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반응, 사회 통념으로 인해 결국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로제에게 돌아가려 한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p.46).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대사이다. 시몽은 변호사 출신답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또 정확하게 파악한다. 폴의 상태, 문제점, 필요한 부분을 짚어낸다. ‘고독형 집행’까지 선고하는 이 대사는, 폴의 전반적인 삶과 그녀의 미래까지 암시한다. 폴은 시몽이 싫지 않았다. 거리를 두려는 시몽에게 오히려 ‘빨리 돌아오라’는 편지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폴은 행복했지만, 그 감정을 외면했다. 자신 내면의 소리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더 의식했다. 결국, 생애 진정한 사랑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밀어내고 스스로 고독한 삶으로 돌아간다.

독자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삶, 가치관, 자기애, 연애의 감정을 돌아볼 수도 있다. 나는 과연 제 감정에 진실한가, 의무를 다했나, 핑계를 대며 체념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나 등과 같은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p.60).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물음표가 아니라 점 세 개로 이루어진 말줄임표로 끝나야 한다.”라고 사강은 강조했다. 사강의 이야기가 있기에 이 대목은 더 곱씹어 읽어보게 된다. 이 질문으로 폴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마치, 각박한 현실을 살고, 삶의 여유라곤 1분 1초도 찾아볼 수 없는 누군가에게 ‘넌 꿈이 뭐였니?’라고 묻는 격인 것이다. 삶, 환경, 타인에게 이끌려 ‘자아’는 안중에도 없이 살아온 주인공에게 이 질문은 망각 덩어리와 같다고 했다.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잊고 있던 모든 것을 환기시킬만한’ 인생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그걸 문제 삼고 있는 게 아냐.
오히려 당신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게 하려는 거야.
당신은 당연히 내게 그런 일을 감추고 싶겠지.
하지만 내게 그런 걸 감출 필요가 없어.
나는 어린애가 아냐, 폴.
내게는 당신을 이해할 능력도,
당신을 도울 능력도 있어.
알다시피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 이상이야. 난 당신도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p.139).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시몽은 변호사답게 사태 파악 및 상황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다. 또한, 주변 시선은 아랑곳 않고, 시몽과 폴 둘의 관계에만 집중한다. 반면, 폴이 시몽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면 그만인데 폴은 왜 사랑에 빠질듯하다 결국 그 감정을 외면해버리는 걸까? 시몽의 적극적인 구애와 끊임없는 사랑에도 불안해하고 피하려 한다. 시종일관 폴은 상대보다 주변인을 의식한다. 단지, 나이 차이 때문일까? 스스로 극복이 안 되는 콤플렉스 때문일까? 사회적 분위기나 관습 때문일까? 아니면, 로제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만약, 폴 역시 시몽처럼 주변 사람은 신경 안 쓰고 순수한 사랑을 쫓는 캐릭터였다면, 이 소설의 결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감수성 내음 풍기는 제목답게 섬세한 표현을 살펴볼 수 있는 고전이었다. 인물 간에 ‘사랑’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시몽이 폴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폴은 사랑과 현실 속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괴로워하는지, 책 속의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기에 표현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상세하게 드러난 작가의 감성과 섬세함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이 책은

‘가독성 있는 로맨스 고전소설을 읽고 싶다면,

현재 각자의 상황에서 권태기를 겪는 이들이 있다면,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면,

무미건조한 사랑에 질린 이들이 있다면,

사랑에 대해 고민하거나

사회통념의 틀 안에서 괴로워하는 독자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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