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로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 등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듯이 그들도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악한 인간이라고 말하기엔 같은 인간으로서 부정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죽음 혹은 질병 소식을 전해 들으면 일단 걱정과 놀라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부끄럽게도, 나 혹은 우리 가족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게 사실이다. 과연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음은 씁쓸하지만,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다. 이 책은 짧은 중단편 소설임에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실감나게 그려냈다.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다.
이반 일리치는 젊었고 즐겁게 노는 걸 좋아하는 기질이었지만 엄격했다. 권력을 악용하지 않았고 공손하고 세심하던 사람이었다. 결혼 후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는. 그의 직업(판사) 답게, 그는 결혼에 대한 원리원칙(밥, 집안관리, 잠자리)을 세우며 그로인해 만족하기로 작정한다. 그 이외의 것은 일로 채운다. 오직 일 속에서 삶의 재미를 느낀다. '재미라는 것이 그를 삼키게 되면서' 인생에 검은 그림자가 다가온 것 같다. 그의 주변에 이미 도사리고 있었으나 그가 잘라냈던 권력의식, 존경어린 시선, 과시, 성공 등이 곧 그의 기쁨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일에 파묻혀, 혹은 일을 핑계로 가정을 소홀히 하는 이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례로, 남편의 전 직장의 (일부)상사만 해도 아내 혹은 자녀들이 부르는 게 무섭다며 야근을 자청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어딘가 닮아있다. 가정에서 만족과 행복을 채우지 못하는 영역을 일을 통해 사회적인 인정, 명예로 대신하는 모습이 말이다.
출처, @아시시.sdg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타인이 보는 이반 일리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이반 일리치, 죽음을 앞둔 이반 일리치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반 일리치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설명되고, 스스로의 상황이나 감정을 돌아보다가 죽음 앞에서, 생과 사의 길목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죽음을 - 지금껏 그가 살아왔듯 - 외면해보고 부정도 해 보았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날이 갈수록 더한 고통, 진실성 없는 가족의 태도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삶 에는 잘못이 없다고 느낀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구어낸 정직 그 자체였다. 승진을 앞두고 부부관계도 결혼 초기처럼 아주 다정하고 좋았다. 17년 만에 다시 행복해지려는 순간,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사다리에서 떨어져 부상이 생겼는데 그로인해 그의 병세는 악화되었다.)가 그를 스올로 끌고가니, 그의 심경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출처, @아시시.sdg
후반부에 들어서 책의 내용은 종교적인 관점으로 다가간다.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끊임없이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다가 내면의 영혼(이라고 표현하였으나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신이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반 일리치가 꼼꼼히 따져보던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최초로 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듣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그가 원했던 것은 '전처럼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이 달라지면서 예전에 좋았던 모든 순간이 다르게, 때론 역겨운 것으로 느낀다. 이때 던진 질문이,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이다. 남들은 그가 산을 오른다고 보았지만 그의 발 밑에서는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심지어 그가 증오감 마저 느끼는 그의 아내, 자녀들을 통해서 이반 일리치 자신의 모습과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보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머리가 복잡할 정도로 번뇌했다. 임종을 한 시간 앞두고 깨달음이 오기 시작한다. 그 첫째가, 가족이 자신을 괴롭힌 것이 아닌 자신이 가족 모두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들을 안쓰러이 여기며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한다. 다음으로,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라는 생각과 함께 기쁨을 느낀다. 긴 시간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부정했으나, 죽음을 면전에 두고 그는 받아들인 것이다. 죽음 대신 빛을 보며.
출처, @아시시.sdg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이반을 보며 나를 대입해본다. '살고 싶다, 나의 살아있음을 약속한 배우자와 자녀들. 그 앞에서 나만 유독 생기가 없어지고 송장 같아진다. 죽음은 자꾸 내 앞에서 나를 거둬가려 하는데 살고 싶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나도 이반처럼 잘못 살아왔다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때때로 '내가 죽으면?'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이어령 선생님은 죽음에 대해 '죽음 뒤에 남겨진 이의 슬픔, 나의 괴로움. 하지만 죽음을 넘어선, 세상의 고락을 다 잊고, 육체의 통증, 괴롬을 벗어난 상태.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되는 순간일까..'하고 말씀하셨다. 과거에는 죽음이 우리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었던 거라고. 죽음의 흔적을 없애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진다고.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끝끝내 부정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동일한 모습이다.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맞이하는 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다. 이반 일리치의 감정 또한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비록 나는 죽음을 겪어보지 않았으나, 그 공포와 두려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알 것 같다. 나 역시 죽음을 멀리하고 싶지만 언젠간 죽을 것이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살려고 노력하고는 있으나,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면 그 당혹감을 감추지는 못할 것 같다. 이반의 말대로 '저항은 불가능하니까', 피할 수가 없다. 죽음을 앞두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후회없도록, 살아있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버티고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껍데기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 사랑하기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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