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 모든 사람은 평가를 받는다. 아이의 부모는 밥 먹고, 걷고, 기저귀 떼는 시기 등을 비교하면서 평가를 시작한다. 대놓고 아이에게 "넌 대체 언제 걸을래?"라고 장난섞어 비교하는 부모도 있고, "우리 아이 이제 걷는구나!"라고 말하며 아이 성장 발달 자체를 칭찬하는 부모도 있다. 아무리 부모가 아이를 비교, 평가하지 않더라도 주변 지인이나 친인척을 통해 그 대상이 됨은 당연지사다.
아이에게 최초의 사회기관인 가정을 벗어나 학교에 들어가면서 또다른 평가는 시작된다. 학교는 경쟁이나 어떤 댓가가 치뤄져야하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평가를 한다. 사람들 앞에 서거나, 자신의 속내 드러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내향인들에게는 부담스럽다.
초등 2학년 내향인 아이 A가 있다. A 학급 담임선생님은 그반 학생들에게 '장기자랑'을 준비해오도록 했다. A는 "엄마, 난 줄넘기를 오래 잘 할 수 있으니까 그걸 영상으로 찍어갈래!"하고 말했다. A의 엄마는 동영상을 찍어 선생님께 제출했고, 장기자랑 발표날 아이의 영상은 송출되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뭐야~" 내향인 A의 얼굴은 붉어지고 진땀까지 났다. 반 친구들의 부정적 평가로 A의 자신감과 즐거움은, 대차게 꺾여버렸다. 이후로 A는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만약 담임 선생님의 재치로 A의 마음을 읽어주어 이 상황을 모면했더라면, 혹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비난 아닌 인정과 격려가 이어졌다면 이 아이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마흔을 넘긴 주부가 있다. 그 주부는 수능을 본지 2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수능을 보는 악몽을 꾼다. 시험을 보는데 잘 풀리지 않고 풀면서도 기분이 영 나빠지는 꿈이다. 수능 보는 날, 너무 긴장을 하다보니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평소에 비해 훨씬 낮은 점수가 나온 그녀는 여전히 수능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
비교나 평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대기업에서 사원을 뽑을 때, 중요 거래 성사시키는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등이다. 경쟁을 해야 인정받고 그 댓가가 돌아온다. 그런데, 학교도 그래야할까? 내향인들에게 시험처럼 평가받는 자리는, 마치 알몸으로 가두행진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학교에서 교사뿐만이 아니라 학생들까지, 다른 친구의 모습을 평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할 수는 없을까? 소위 성공했다는 인물들을 보면 내향인의 비율도 꽤 많다. 빌게이츠, 마크 저커버그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유대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서로 비난하지 않고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감, 자존감, 창의성을 쌓아왔다. 학생들의 교육을 맡고있는 학교도, 교사나 친구들도 평가없이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한결 나은 교육문화를 이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을 토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