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동안 썩 가까이 지낸 건 아니지만 비교적 소통도 하고 왕래도 한 편이라 헤어질 것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만남의 장을 가졌다. 서로 근황부터 시작하여 별 거 아닌 일로 모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임의 주인공이 평소 안 하던 자랑을 했다.
“제가 떠나는 마당에, 자랑 하나만 할게요. 실은 얼마 전 결혼 10주년이었는데, 남편에게 가방 받았어요. 그동안 한 번도 결혼기념일 선물은 없었는데, 이번엔 그렇게 됐네요.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 ‘10년 후에는 내가 차 사줄게!’라고 큰소리쳤어요.”
지인 분은 평소 물질로 자랑하거나 사치하지 않는다. 전직 교사답게 늘 단정하고 단아한 옷차림이었다. 크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눈처럼 새하얀 피부, 정갈한 단발머리가 그분의 스타일을 한껏 곱고 세련되어 보이게 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물건' 이야기를 꺼냈다.
"저.. 그 선물을 받고 어땠는지 아세요? 난생처음.. '집에 도둑이 들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게 됐어요. 혹시라도 도둑이 든다면, 뺏길 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평소 집에 훔쳐갈 게 없을 정도로 욕심 없이 살던 분이 결혼 10년 차 선물로 남편에게 받은 D명품백으로 하여금 근심하게 됐다는 말씀에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한참을 웃었다. 조금은 어색해하시는 그분께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 말했다.
“근속수당 받았다 생각하세요. 육아 때문에 일 못하시고 내리 집안 살림하셨잖아요. 따지고 보면 매달 받을 근속수당을 10년째 모아서 한꺼번에 받은 거나 별반 차이 없잖아요.”
출처, 픽사배이
나의 말에 조금은 가슴을 당당하게 펴신 듯했다. 지인의 명품백 이야기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부러운 마음에 자신을 비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사치문화에 대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나는 명품백 가격과 브랜드를 모를 정도로 관심도 없고 관련도 없는 사람이지만 단순히 선물 내용으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욕설하는 것에 대해 반갑지 않다. 누구에게나 처한 환경과 상황, 선물하는(받는) 이의 마음이나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지인분과 같은 상황을 엄두도 못 낼 처지일뿐더러, 바라지도 않는다. 내 경우, 10년째 되던 결혼기념일에 별다른 기억이 없을 정도로 평소같이 온 가족이 밥을 먹으며 지냈다. 지인의 말을 들으며 역시 물질은'있어도 걱정없어도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가의 선물로 얻은 근심에 밤잠까지 설쳤으니. 그런 면에서 나는 참 감사하다. 결혼 생활 13년 차에, 도둑이 들어도 훔쳐갈 물건이 없으니까. 넘치는 물질로 걱정할 일도 없을뿐더러 길가에 나 앉을 정도로 궁핍하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