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10년간 육아에 전념했다. 한 명도 두 명도 아닌 세 명의 아이를 키우기에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나가볼 생각을 안 했다. 그래서일까? 내 옷은 특별한 게 없었다. 늘어난 수유티, 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전부였다. 한 때는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그리고 앙증맞은 핸드백으로 젊음을 자랑하던 나였는데 그 때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실, ‘어차피 아이를 또 낳을건데 무슨 옷이 필요해?’하는 생각이 컸다. '두 명 낳았으니 이제 출산은 끝'임을 선포하고 새햐안 바지 한 장을 샀다. 곧바로, 임신을 했다. 셋째를 낳은 후 '출산은 이제 '정말' 끝이야.'를 외치며 구입한 청바지가 공식적인 자리에 입을 내 바지 목록의 전부다. 그러니까 흰바지는 구입한지 6년, 청바지는 3년이 된 거다.
주일이 되면 공식 석상용 바지, 두 벌을 번갈아 입고 교회에 간다.
'지난 주에 청바지 입었으니까 이번 주는 흰바지 입고 갈까?'
하고 나름의 드레스코드를 생각하여, 상의는 하얀색 레이스가 달린 쉬폰 소재의 잔잔한 꽃무늬 핑크 블라우스를 걸쳤다. 평소에 화장 안 하는 엄마가 주일날 유일하게 덧칠하는 파우더 바르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여섯살 막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맨날 그 옷만 입어?"
순간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맨날 그 옷?"
"응. 엄마 지난 번에도 그 옷 입었잖아~"
내 딴에는 적절히 번갈아가며 입는다고 입었는데 아이 눈에는 엄마가 자주 입는 그 옷을 맨날 입었다고 정의했나보다. 지금 내 옷장 안에는 사계절 옷이 한데 모여있다.
그러고보니 어렸을 때 내 옷서랍 속에는 ‘계절’별로 옷이 바뀌어 있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올 때마다, 엄마는 여행용 트렁크에서 켜켜이 접어둔 옷을 꺼내셨다. 지나간 계절에 입던 옷은 곱게 접어 신문지에 싼 새나프탈렌과 함께 정리해두셨다. 내 옷이 들어있는 서랍장에는 흰속옷부터 상의, 하의별로 깔끔하게 자리를 채워갔다. 어느 순간 옷으로 가득찬 서랍장을 보며, 어떻게 하면 이 옷들을 하나라도 더 정리해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막바지엔, 자리가 없어 쑤셔넣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도 엄마에게 입을 옷이 없다며 옷타령을 했었다.
가만 생각하니 엄마아빠는 옷장 하나를 같이 사용하셨다. 대부분이 아빠의 정장이었고 엄마 옷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아빠 옷들 틈에 겨우 서너장의 옷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정작 옷이 없는 건 내가 아닌 부모님이었다. 그 땐 단촐하고 한없이 부족해보이는 엄마 아빠 옷장을 보며, '대체 무슨 옷을 입고 사실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내가 당시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보니, 옷장에 옷이 별로 없어도 그걸로 충분하다. 젊어서는 개성을 표현한답시고, 모델도 아니면서 온갖 패션을 따졌다. 누가 옷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스타일이며 브랜드에 신경을 썼다. 똑같은 옷을 입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지출 목록엔 ‘옷 사기’가 꼭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오히려 불필요한 지출을 할 경우, 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옷은 썩지도 않을 뿐더러 때론 거품이 많다. 환경을 오염시키는데 돈 들여가며, 또 시간을 투자해가며 굳이 옷을 사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고보니 삶의 여유마저 부릴 수 있다. 매일 회사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재택근무하는 나에게 옷은 ‘반드시 있어야할 것’은 아니었다. 최소 몇 장으로 충분하다.
'엄마는 옷이 이것 밖에 없지만'
쇼핑하는 시간, 옷값, 코디하는데 들이는 시간, 에너지(체력)까지 동시에 아끼니 시간과 물질 그리고 에너지를 생산적인 다른 곳에 쓸 수 있어 있어 오늘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