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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OO 선생님

2호 이야기_나는 행복한 엄마

by 아시시

*** 새해가 되어 2주를 열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걱정과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브런치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다른 분들은 모두 건강하게 2024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



내게는 세 명의 어린 선생님이 있다.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못 만났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정도로 사랑하는 세 아이들이다. 사람마다 생김새와 색깔이 다르듯, 나의 보석들도 저마다의 영롱한 빛깔이 다르다. 때때로 현상이나 생각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그 중, 오늘은 둘째 어린 선생님(이하, '2호'라 칭함)을 통해 느낀 바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하루살이가 퍽퍽한 엄마에게 아이의 순수함은 웃음을, 때로는 교훈을 준다. 단지 ‘엉뚱해’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들의 진심을 왜곡하는 행위이다. 아이들은 순수해서 지극히 들은대로 실천한다. 마치 '사람은 밥먹듯이 죄를 짓지만 자연은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말이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때였다. 성도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린 어느날부터, 가방 속 성경책은 점점 갈 곳을 잃어갔다. 성경은 무겁고, 들고다니기 귀찮다. 핸드폰 하나면 다 해결되는 세상이다. 성경앱을 깔면 원하는 구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방 속 무게를 덜어내니 어깨가 편하다. 심지어 앱이 무료다. 하지만 담임 목사님 눈에는 영 거슬렸나보다. 수년간 이에 대해 함구하시더니, 2023년 마지막 예배 때 입을 여셨다.

“새해부터는 성경책, 꼭 들고 다니세요.

교회 들어섰는데 손에 성경책 없으면 교회 못 들어와요,

꼭 확인할거예요”

평소 진지함 속에 우스갯소리를 투욱투욱 던지는 목사님이다. 뼈를 살살 갈아넣은 말 한 마디로, 성도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2호는 이 이야기를 마음 속 깊이 새겼나보다.

새해 첫 주일이 되었다.

“2호야, 날도 추운데 성경책을 왜 손에 들고가? 가방에 넣고 가자.”

“안 돼.”

“왜 안 되는데?”

“음.. 성경책은 손에 꼭 들고 가야해!”

왜냐고 묻는 내 말에 아이는 반복해서 같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 교회가는 길, 문득 생각났다.

‘아.. 2호는 지난 예배 때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수증기가 증발하듯, 나는 목사님 말씀을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당연하듯 핸드폰만 주머니에 쏙 넣어 교회를 향했는데 말이다.


물론 그날, 교회 입구에서 '성경책을 손에 들고 있지 않은 성도'를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의 경험으로 아이는 이후로, 늘 그렇듯, 가방에 성경책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내 마음을 대바늘로 깊숙이 찌르는 것 같았다. 말씀의 요지를 파악했음에도, 내 행동에 변화가 없다는 건 목사님 말씀을 가벼이 여김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가는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경청하고 와라."고만 말했지, 정작 엄마인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해 첫 주일을 '반성'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번성하라고 하셨나보다. 자녀를 낳고 가족과 함께 살아야하나보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나이를 불문하고 함께 사는 가족을 통해 보고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비록 어리지만, 일상의 가르침을 깨우쳐줄 세 명의 어린 선생님과 함께 ‘오늘’을 살고있는, 나는행복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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