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만큼 자라는 아이
부모는 아이를 통해 배운다
요즘 내 안에 여러 가지 생각 중
2가지 정도가 머리에 맴돈다.
그것은 믿어주기/ 기다려주기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6살 된 둘째를 통해서 들었다.
지금부터 아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1. 믿어주기
아들! 유치원 잘 다녀왔니? 오늘 공원에서 생태 체험한다더니 어땠어?
거미에 대해 알아봤어요. 이 길 따라 가는데 선생님한테 “여기, 거미줄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그냥 가서 말 못 했어, 나 3개나 찾았거든요.
그래? 잘 됐다! 아까 찾은 거미줄을 엄마한테 보여주면 되겠네!
둘째는 신나서 거미줄을 찾았다. 보통은 세 아이와 함께 다니지만, 첫째와 셋째가 집에 있겠다고 하여 둘만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다만 셋째는 아직 두 돌이 지난 꼬맹이라 걱정이 좀 되었다.)
근데 말이야, 누나랑 동생한테, 놀이터 들렀다 올 거라고 말해 놓고 나오긴 했는데.. 좀 오래 있었던 것 같아.. 누나는 그렇다 치고.. 시아가 괜찮을까?
누나가 있잖아.
혹시 누나가 다른 일에 집중해서 시아 신경 안 쓸 수도 있잖아.. 얼른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혹시 놀다가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집에 전화도 없어서 엄마한테 연락할 수가 없는데..
엄마..! 한번 믿어보자.
누나도 시아도 다 잘 있을 거야!
어디서 이런 믿음이 솟아나는지! 아이가 워낙 다부지게 얘기하길래 나도 몰래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한번 믿어보자!
2. 기다려주기
아이는 신나서, 유치원에서 현장 학습한 노선을 그대로 따라 이동하며 설명해주었다.
엄마, 여기야 여기!
여기에서 이렇게 갔어. 나를 따라와 봐~
솔방울 보이지?
소나무야. 이 솔방울이랑 나뭇잎으로 거미를 만들었어.
이 쪽이야! 이쪽으로 지나왔어.
엄마, 여기에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선생님이 술래 했는데 무궁화 대신 엄마 꽃, 아빠 꽃 뭐 이렇게 저렇게 말을 바꿔가면서 했어.
아들 녀석이 너무 재미있었나 보다. 신나서 한참을 떠들어댄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언젠간 친구들처럼
유치원 끝나는 시간까지 있다 올게,
기다려줘~
잠시 당황했다. 요즘 내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코로나로 아이는 유치원을 그만두었다. 유치원이라는 곳이 단순히 교육을 넘어서 또래끼리 함께 살을 맞대고 어울리며 사회성을 배워가는 장인데 격리, 접촉 차단 등의 이유로 과연 유치원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성이라면 세 아이가 함께 있으니 그걸로도 충분했다. 코로나의 불안으로부터 배제할 수 있었고,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지낼 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또, 아이들과 동네 산책으로 건강도 챙기고 가족끼리 친밀감도 더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본격적인 가정보육이 시작되면서, 사전에 약속한 ‘매일 산책하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일주일 내내 방콕을 하니 아이의 건강마저 걱정이 되었다. 결국 아이를 유치원에 '다시' 보내기로 마음을 바꿨다.
안 가겠다는 아이에게 조건을 내민 것이 밥은 먹지 말고 한 시간만 있다가 오너라~였다. 한참 코로나가 수도권 지역에 심했을 때, 유치원에서 그렇게 권고했다. 원격수업 내지는 일찍 하원 하는 것을. 마침 그 시기 즈음 대기 걸어놓은 유치원에서 등원하라는 안내를 받고 시작된 유치원에서의 ‘한 시간 생활’이 아이는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껏 등원한 지 한 시간 만에 하원 중이다. 지금은 코로나 단계가 완화되면서 모든 아이가 제 시간(오후 3시 반)에 귀가한다. 종일반은 더 늦을 테고. 우리 아이만 잠시 있다가 오는 거다, 여전히.
요즘 밖에 나가 자고 하면 잘 나가니까 한 시간.. 있을 바에야 다시 그만둘까? 언제쯤 다른 아이들처럼 제시간에 오려나?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했다. 원래 나란 사람이 100퍼센트의 확신이 있지 않는 이상 늘 고민하고.. 우유부단하다.
그.런.데!
"기다려달라니..."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내 주특기는 기다려주기이다.
옆에서 답답해할 정도로 난 잘 기다려준다.
세 아이를 도서관에 데려가면 왕복 4시간이 걸린다. 도서관이 멀리 있기 때문은 아니다. 참고로 도서관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있다. 아이들이 산책하기 적당한 거리에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첫째에게 있다. 둘째, 셋째는 서가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가져온다. 빌릴 수 있는 최대 권수에 맞춰 들고 나오기 급급하다.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딸아이는 꽤나 신중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고른 책이 없을 때도 있다. 이 책을 보고 저 책을 본다. 훑는 정도가 아니라 책을 다 읽는다. 그중에 재미있는 책 몇 권을 고른다. 아직도 안 고르고 뭐했냐며 아이를 보채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약속이 있거나 다음 일정이 있으면 속터질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저 아이는 긴 시간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책을 고르는 판단력이 자라나고 책과 더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 시간을 깨면, 아이가 내적성장 하는 것을 엄마가 방해해버린 꼴이 된다.
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잡초, 나무, 벌레 등에 관심을 갖고 보고 있으면 나는 가던 길을 멈춘다. 대부분은 급할 일이 없기에 마냥 기다려준다. 엄마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시간이다.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고 질문을 던지며 관찰력과 추리력, 상상력 등이 성장하게 된다. 물론 나도 아이만큼이나 느린 사람이라 가능한 걸 수도 있다. 사실 난 보챌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바쁜 스케쥴 속에 이동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하는 일정은 늘 free다. 무계획 속에 아이가 이끌어가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거다. 그럼 아이는 아이대로 충분히 즐겨서 좋고 엄마는 엄마대로 일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다.
아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여전히 혼자 일찍 오고 있고, 다른 아이들처럼 정규 하원 시간에 와야 한다는 것을. 다만 스스로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실, 아이가 유치원에 제시간만 있다가 와도 엄마는 꽤 편하다. 물론 보내고 나서도 바쁜 일상들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것보다는 기관에 보내는 편이 최소한 '숨통'은 트인다. 하지만 난 강제로 아이를 떠밀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라는 끝나지 않을 이 특별한 시국에. 아이의 기다려달라는 말을 들으니 난 더더욱 기다려주고 싶어 졌다. 설사, 이대로 쭉 가더라도 상관없다. 유치원이 어차피 의무교육은 아니니까.
계획대로였다면 첫째, 셋째와 함께 둘째의 유치원 하굣길을 동행하여 다 같이 산책하고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예상치 못 하게.. 둘만의 데이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아이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를 통해 너무 중요한 사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보통은 부모가 평소에 한 말들이 아이들 입을 통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아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전혀 꾸밈없는, 오롯이 아이가 느끼는 순수한 감정과 생각이기에 ㅡ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늘 가득한 생각이었지만 아이를 통해 들으니ㅡ더욱 새로웠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부모이기에 자녀를 가르치기만 해야하는 게 아니다. 눈과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자녀에게 배울 것 투성이이다. 사랑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경청하자. 진정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말할 때, 그 순간을 놓치지 말자. 그 아이의 원하는 바를 마음에 새기자. 그래야 아이도 부모도 행복해진다.
오늘 내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은 두 가지
'믿어주기/ 기다려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