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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1. 2016

캔버라로의 초대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



 멜번이 고향인 영국계 호주인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3주를 그녀의 학교가 있는 캔버라에서 보내기로 했다. 캔버라는 멜번과 시드니 사이에 위치한 호주의 행정수도이다.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이 단거리 여행은 시작부터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저가 항공계의 짐승, 타이거 에어웨이즈 항공편을 예약한 것이 화근이었다. 저가 항공사답게 체크인 장소가 공항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해있었던 것이다. 몇 번이고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는 이민 가방을 일으키며 정비소로나 쓰일 법한 후미진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녹초가 된 상태라 직원에게 말을 건넬 힘도 없었는데, 앞에 선 중동계 남자가 갑자기 직원과 싸우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출발 45분 전까지 와야지만 탑승이 가능하니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티켓 교환도 불가능했다. 국제선도 아닌 국내선, 그것도 코앞에 멈춰 서있는 비행기를 40분 전에 와도 탈 수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중동의 모래바람도 뚫고 레이저 빔을 쏘아대는 직원의 눈을 보니 당최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이민가방을 굴리며 공항 메인 로비로 돌아가 타 항공사의 티켓을 끊었다. 붉고 푸른 유니폼의 여직원들이 어찌나 친절하던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캔버라 공항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명색이 수도인데, 해도 해도 너무 소박하잖아.”


 픽업을 나온 친구의 차 안에서, 한숨처럼 새어 나오는 이 한 마디를 막아낼 길이 없었다. 캔버라 시내에 있는 거라곤 듬성듬성 세워진 볼품없는 아파트형 건물들과 몇 개의 쇼핑센터, 정부 청사, 대학교, 그리고 인공호수뿐이었다. 이곳이 바로 학생과 공무원의 유토피아인가? 이곳의 명문대 학생은 공무원이 되고, 공무원은 공무원과 결혼해 학생을 낳고, 그 학생은 다시 공무원이 되는 시스템인 것일까?  머릿속이 공연히 혼란스러워질 때쯤 차가 멈췄다.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그럴싸한 아파트였다. 멀찍이 들려오는 친구의—쾌적하고 넓은 집인데 아직 둘이서 셰어를 하고 있네, 학기가 시작되면 한 명을 더 들일 생각이네 등의—말을 팝송 가사처럼 반쯤 흘리며 짐을 풀려는 찰나, 한 소절의 클라이맥스가 귀를 때렸다.


“내일은 다 같이 근처 산으로 드라이브를 갈 거야. 새벽에 가면 캥거루가 많거든.”


 현지인 친구들이 말하는 캥거루는 대개 특대 사이즈의 그것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크기의 캥거루는 사실 캥거루보다 작은 왈라비의 일종이 대부분이다. 그 말인즉슨, 내가 떠나기 전에 제대로 된 놈을 한번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 온몸을 외투와 목도리로 칭칭 감고서 길을 나섰다. 캥거루를 만날 확률은 반반이지만 그곳에서 보이는 정부 청사의 모습이 꽤 아름다우니 실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친구들의 설명을 들으며 졸린 눈을 비볐다. 푸른 안갯속을 오르던 차 앞에, 이윽고 묵직한 물체가 나타났다. 경계 태세로 몸을 곧게 세운 것이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귀엽다기보다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심기를 건드리면 차를 찌그러뜨릴 수 있다며 모두 숨을 죽였다. 무겁지 않은 얼마의 정적. 우리가 영 시시했는지 캥거루는 곧 가드를 내리고 수풀 너머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캔버라에서 맞는 첫 일출은 따사로웠고 새로이 알게 된 친구들도 역시 그러했다. 친구 중 한 명은 과학수사를 하신다는 삼촌의 농장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강 시즌이 다가왔고 나는 자연스레 친구들의 학교를 홀로 탐방하게 되었다. 


 호주 국립대학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호주 전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바로 그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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