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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4. 2016

교환학생 선발

서울 #2. 상사병과 기적



 2008년 9월. 남반구의 겨울에 적응되자마자 단번에 늦여름으로, 나는 계절과 공간을  건너뛰어 세 학기 만에 모교를 다시 밟았다. 졸업여행도 놓치고, 졸업전시의 부담만 마음  한편에 고스란히 아려오는 4학년 복학생이 된 것이다. 남은 두 학기 중 2학기를 먼저 시작하게 되어 졸업전시를 마치고도 동기들처럼 깔끔하게 학교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름상 졸업 전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1학기 수업들을 전시를 치른 후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졸업 전시 자체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


 고민하던 중 뒤늦게 발견한 교환학생 모집공고에, 나는 무릎을 쳤다. 자매학교 명단에 호주국립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국제교류센터로 달려가, 조교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했다. 미리 준비해 둔 아이엘츠(IELTS) 점수가 없어 접수 기한을 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시험공부를 한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나에게 생떼를 쓰고 있었다. 여기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다행히 허락이 떨어졌고, 나는 있는 돈을 긁어모아 시험을 치렀다. 20만 원이 훌쩍 넘는 길고 무거운 시험. 복통을 동반하는 긴장 속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혈류를 타고 돌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다 읽지 못한 지문이 있었던 것은 물론, 비중이 큰 라이팅 문항을 반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나마 시간차를 두고 진행된 스피킹 부문에서 말이 잘 통하는 면접관을 만나 별스런 수다를 떨다 나온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어느 고즈넉한 오후, 나는 교양수업을 듣던 중 쉬는 시간에 C동 휴게공간으로 향했다. 노랗게 익은 햇살 아래 넌지시 보이는 서강대교와 한강,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김밥과 우동 냄새, 늘 보아도 얼굴은 잘 익혀지지 않는 수많은 학우들의 말소리. 그리고 그 옆 한구석에 놓인 두 대의 컴퓨터. 나는 오른쪽 컴퓨터 앞에 서서 말없이 스크린을 내려보았다. 시험 결과 창을 띄우고, 손으로 가린 채 하나씩 하나씩 확인해나갔다. 스피킹, 리스닝. 좋은 점수였다. 리딩. 괜찮다. 그런데, 라이팅은 역시……. 그 점수로는 항목별 커트라인에 걸려 기술 이민도 못 갈 판이었다. 완성하지 못한 글에 좋은 점수가 나올 리 없지만, 알면서도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기다리고 있을 조교 선생님들께 소식을 드려야 했다. 좋지 않은 일일수록 직접 말을 해야 한다. 


 “응? 이 점수면 되는데? ANU는 다른 학교보다 총점이 0.5점 높은 대신 항목별 커트라인이 없거든.”


 의외의 대답이었다. 조교 선생님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가 가고 싶었던 곳도, 지원할 수 있는 곳도 어차피 ANU 한 곳뿐인 것이다. 다만 호주국립대는 그 해 교환학생이 아닌 방문학생만을 받게 되어있어서, 선발 시 양쪽의 등록금을 다 내야 했다. 벅찬 조건이지만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을 매일같이 거닐던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바로 내 앞에 놓여있지 않은가. 


 10월 1일, 선발 학생 명단이 발표되었고 감격스럽게도 그곳엔 내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순간의 기쁨과 함께, 시름이 밀려왔다. 본교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지만, 천 만원에 달하는 ANU 학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상대 학교의 확정과 자세한 일정표를 받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참여 여부 결정 또한 급하게 내리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은 당장 11월로 다가온 졸업전시를 무사히 치르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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