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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Mar 20. 2024

힘들 때 눈에 들어오는 풍광


 풍경보다 넓은 시야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높은 곳에서의 뷰를 풍광이라 한다.

 꼭 높은 곳에서 바라보지 않더라도, 어떤 풍경에서 장엄하고 광활한 압도감이 느껴진다면 그것 역시 풍광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똑같은 길을 걸으며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도 유독 힘에 부치는 순간, 그런 순간마다 도심의 풍광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어이없게도 사진첩에 있는 가장 멋진 노을 사진들은 죄다 사무실에서 찍은 것들이다. 저녁밥을 먹기보다는 빨리 끝내고 가고 싶어서 꼬르륵 소리를 BGM 삼아 잔업을 하던 얼마간의 시간.

 드물게 주어지는 사무실의 적막을 채우던 그 짙은 노을을, 내 머리는 기억 못 해도 구글 포토는 고스란히 기억하는구나.


 블라인드 결을 따라 가지런히 내 책상을 수놓던 말간 빛살.


 하루 끝 제 할 일을 다 해놓고 흐린 눈을 마주치는 태양은 좋은 친구였다. 이때만큼은 아니, 오직 이때에만 눈을 찌푸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몇 해 전에 베를린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후 남은 여정을 소화해야 했던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칼바람이 내리 꽂히던 항구의 풍광은 황량하고 아름다웠다.

 분명 곳곳이 투박한데도 이상하게 세련된 느낌이 들었던 그 항구에서, 해뜨기 직전 가장 어두운 날을 지나고 있는 것만 같았던 그때의 내가 손을 흔든다.

 아직 풀지 못한 짐처럼 남아 있는 그날의 감정들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정리해 보려고 시간이 나는 대로 낡은 여행기를 쓰는 중이다.


 나이 앞자리도, 대운도 바뀌어 가는 인생 분기점의 코너를 격하게 도느라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가장 힘들 때 눈에 들어오던 풍광들을 되새기며, 또 부지런히 가보기로 한다.





마음을 양조합니다.

마인드 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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