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현실 속에서 나의 세계를 지키는 법
누가 보아도 적의가 드러나는 눈에 보이는 적보다 더욱 골치 아픈 상대는 바로 나를 위하는 척 내 옆에 선 숨은 적들이다.
과거에 퇴사의 주된 원인이 되었던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런 존재들은 늘 있었다. 나의 의중을 살살 떠보면서, 친분에 기대어 나눈 대화를 그대로 외부에 전달하는 사람들 말이다. 사건의 방아쇠는 그들의 활약에 의해 당겨졌는데, 정작 그들은 양쪽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조직 내 안전한 위치를 찾아 다시 쏙 소라게처럼 숨어 버린다.
이력서에는 굳이 기재하지 않지만, 다녔던 기간 대비 가장 많은 야근을 했던 어느 상장기업 계열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고용노동부와 해당 기업 감사팀의 조사 끝에 문제를 일으킨 임원에 경고 조처가 내려졌지만, 어쨌든 공공의 적과 숨은 적, 그 둘은 여전히 고액 연봉을 받으며 평화롭게 조직에 머물고 있다.
그때 있었던 일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배임과 인격모독, 야근수당 미지급 등 단 5개월 동안 재직하는데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 펼쳐졌다. 결국 나를 포함, 경력 공채로 들어온 두 사람이 위 내용을 관계 기관과 지주사 감사팀에 신고 후 퇴사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밀렸던 야근수당도 일시금으로 받았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고용노동부 서부지청 담당 주무관은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느냐’라며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첫 회식 때 시작된 해당 임원의 발언 수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5년 뒤에 이보다 더한 회사를 만날 줄 모르고, 이 일로 사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웬만한 만행에 끄떡없는 면역력이 생겼다고 감히 자부했다.
가까이 지내던 개발자와 경영지원 팀원이 나중에 전해 준 소식 중에서는 문제의 임원이 그나마 조용히 지낸다는 이야기 정도가 쓸 만했다. 결국 그들만의 공고한 세계에 잠시 풍랑이 일었을 뿐,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쨌든 이 모든 풍랑의 발단은 나를 위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감시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던 숨은 적의 공이 8할이었다. 내가 없는 외부 거래처 미팅 때마다 내 사생활을 들춰 안줏거리 삼은 사람들 속에서 같이 웃고 떠들어 놓고, 그걸 나에게 굳이 전달한 것도 그 중간관리자의 업적이다.
내가 해당 내용을 감사팀에 증언해 달라고 요청한 시점부터, 그녀는 나의 연락을 피했다.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숨은 적의 패턴이었다. 아니, 그 시점엔 이미 ‘드러난 적’이지만 말이다.
현실 속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위와 같은 문제들은 사실, 숨은 적을 찾아 미연에 차단하기만 하면 내가 입는 내상을 최소화하면서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다.
숨은 적을 찾아내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한 가지다.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이 교묘히 나의 분노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면 된다.
올해 겪은 입사 직전 연봉 후려치기 사건에 대응하면서도, 내 편에 서는 척하며 불특정 다수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나에게 투영하고 나를 통해 자신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려는 숨은 적들이 슬며시 내게 접근해 왔다. 그들은 처음에는 도움을 주겠다며 서서히 접근하다가, 내가 동조하지 않자, 자신이 증오하는 계층, 종교, 성별, 국적에 대한 혐오성 발언과 욕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역시는 역시다.
미안하지만 그들이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다. 비행 안전 수칙처럼, 위급상황 시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정상적인 호흡을 해야 비로소 남의 생명도 구할 수 있지 않은가.
한 번 더,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모든 이들을 경외하게 되는 순간. 따개비처럼 찰싹 들러붙는 숨은 적을 인생 표면에서 긁어내는 일도 분기별 목표를 세워 실천해야 하나 심히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초연결 사회에서 긴밀하게 맞닿아 오는 랜선 인연 또한, 진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인연이 맞는지 시간을 두고 진위를 판별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