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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1. 2016

첫 갤러리 계약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

 


 기회는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오는데, 어떤 것은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잡았었더라도 그것을 손에 쥐었던 그때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면, 함께한 기념사진조차 남겨두지 않았을 정도로 그 기회를 홀대했다면, 그건 그야말로 스쳐간 인연에 불과한 것이다.

 

 전면 유리로 된 외벽 안쪽에 분명 내 그림들이 고운 액자에 안겨 전시되어있었고, 나는 그 앞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그 길을 종종 다니는 친구들은 늘 어제 네 그림을 보았노라며 재잘댔고, 그 앞을 지나던 어떤 이들은 그 그림을 좋은 값에 들여가기도 했다. 집에서 대각선으로 2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던 그 작은 갤러리. 작가 인생 처음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역사적인 곳이었음에도, 나는 한 번도 그곳을 기록한 적이 없다. 매일 수도 없이 눈으로 찍어둔 터라 당연히 그 장면이 메모리카드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 거라고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호주 사람들이 피부암을 감기쯤으로 여기게 한 호주 표 태양광이 시시각각 내리 꽂히는 통에 창에 걸린 내 잉크 드로잉 작품들은 하루가 다르게 창백해져 갔다. 그렇게 운명한 그림들도 있고, 죽기 전에 제 주인을 만난 것들도 있다. 죽은 도시 위의 물고기는 물고기 밥 잘 줄 만한 주인에게 헤엄쳐 가버렸고, 갈 곳 없던 낙타는 사막을 갈망하던 보스니아 여자를 태우고 사라졌다. 호기심 많은 개구리는 어머니의 생신이라며 고민하던 호주 청년의 주머니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들의 마지막을 주인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 때문에 약간은 화가 나 있었다. 작별을 고할 수도, 잘 부탁한다는 말도 건넬 수 없다니…….


 손님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청취할 권리와 50퍼센트의 판매수수료, 한 점의 그림을 조건으로 지불하고 얻은 것은 얼마의 편한 돈과 계약서, 그리고 시간이었다. 나쁘지도 기쁘지도 않은 알다가도 모를 감정은 계약기간 내내 지속되었고, 그런 것이 바로 ‘을’ 혹은 약자의 일상이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별로 안타까울 것도 없는 밋밋한 첫사랑이 되어버린 그때 그 기회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속일 수 있었더라면. 아니, 내가 헤어짐 앞에 좀 더 의연했더라면, 나는 그로 인해 행복했을 것이다.



개구리는 아직 살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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