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Jan 14. 2016

#059. 그 날의 분위기

웃음만이 로맨틱 코미디의 전부는 아니기를..




1. 일반적으로 우리는 영화를 분류할 때 '멜로/로맨스'라는 식의 표현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의 세부 장르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는 작품들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어떤 곳일까?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더 간단할 지도 모르겠다.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 웃음과 즐거움이 더해진 사랑 이야기를 하느냐, 아니면 사랑 이야기가 더해진 웃음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정체성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 있기에. 그리고 이 영화 <그 날의 분위기>는 마케팅 상의 단어를 빌리자면, '철벽녀'와 '맹공남'이라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이끌어 나가는 작품으로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내용 중 후자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2. 어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랑 방식 혹은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실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큼이나 조심스럽다. 세상의 모든 사랑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한 들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전에 없던 사랑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들을 전달하고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두 주인공 "수정"(문채원 역)과 "재현"(유연석 역)이 보여주는 방식 혹은 형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장면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위적이라 생각되긴 하지만, 결국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범위 내에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3. 만약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원나잇 스탠드' 자체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이 2016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소재 자체를 두고 논쟁을 펼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 영화, 제대로 된 베드신조차 한 번 등장하지 않으니 실상 '원나잇 스탠드'라는 단어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안타까운(?) 대상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은 다른 지점에 있다. 작품의 현실성이 작품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떨어져 있다는 점.


4. 영화에서, 특히 감정이 중심이 되는 '멜로/로맨스', '드라마' 장르에서 현실성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일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관객들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다른 누군가는 한 번쯤 겪어봤을 것 같다는 공감대에서부터 관객들은 영화와 밀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몰입 속에서 관객들이 느끼기 시작하는 영화 속 상황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은 극대화 된다.


5. 이 현실감을 관객들에게 불어 넣는데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하는데,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현실감을 전달하는 방법 하나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다른 모든 장치들(배경, 소재, 소품 등)을 통해 전달하는 또 다른 방법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 관객들을 예를 들어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의 경우는 이국적인 배경을 통해서는 신비함과 이질성을 부여하지만, 배우들의 감정을 통해 현실감을 불어넣은 전자의 경우가 된다. 반대로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전쟁물이나 다른 사극물들의 경우에는 영화가 보여주는 배경이나 고증을 통해 재현된 장치들이 현실감을 불어넣는 후자의 경우가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가지를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다.)


6. 다시 이 작품 <그 날의 분위기>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모두가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감정선이 그리 진하지도 않으며, 영화의 장면들이 만들어 내는 현실감도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두 사람의 운명 혹은 우연을 연결시키기 위해 표현되고 있는 KTX 내의 여러 장면들은 영화에 몰입하는 순간들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KTX를 몇 번만 타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니 따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작품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강선배"(조재윤 역)의 연기 역시 흥미를 주는 요소가 되기는 했으나 조금 과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7. 물론 이런 아쉬움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원나잇 스탠드"라는 소재를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부분은 흥미롭게 지켜볼 만 하다. 감독은 이 부분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떠나 기존에 "수정"이 하고 있던 10년 연애와의 비교를 통해 사랑의 무게를 시간이라는 변수와 연결지어 표현하고 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과연 과거에 함께 지내온 시간의 두께만으로 현재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 글쎄 혹자는 이 글을 보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작품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게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듯이 마치 어디선가 꼭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기시감이 들 정도로, 아니 분명히 한 번쯤은 어딘가에서 쓰였던 적이 있는 틀에 박힌듯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습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거짓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역시 순간(장면)의 웃음에 기대지 않고 스토리 라인의 본질을 통해 그 진심을 전달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058. 나를 잊지 말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