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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10. 2016

#058. 나를 잊지 말아요

과정이 부족한 로맨스의 공허함.





1. 어느 순간부터 국내 멜로 영화가 흥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더 이상 그렇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제작을 기피하는 분위기로 연결되었다. (정말 언제부턴가 멜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 공포 영화를 제작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워진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국내 멜로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그 기대감만큼이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작품 <나를 잊지 말아요> 역시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2. 일단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고 있는 두 배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TV 드라마를 통해 인상적인 멜로 연기들을 펼쳐 온 배우 "김하늘"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새드 무비>(2005), <데이지>(2006) 등의 작품으로 2000년대 중반 애틋한 로맨스의 남자로 자리매김한 "정우성"의 만남.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두 배우이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그리고 어떤 장르보다 '멜로/드라마' 장르의 경우, 남녀주인공의 인지도와 비주얼 측면의 호감도는 매우 중요한 부분일 수 밖에 없다.


3.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던 작품이 하나 있었다. '기억 상실'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던 2004년의 멜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두 작품에 동시에 출연하기 때문은 분명히 아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소재의 유사성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기억 상실'이라는 큰 틀에서는 같을 지 모르지만,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경우에는 주인공의 '알츠하이머'를 다루었던 작품이고, 이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는 '해리성 기억 상실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언급한 이유는 두 작품이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4. 먼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주인공의 '알츠하이머'를 두고 두 주인공 "철수"(정우성 역)와 "수진"(손예진 역)이 겪게 되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상대방의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과 그런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남자 "철수"의 이야기.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멜로 영화가 주는 특정 감정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인 "석원"(정우성 역) 겪는 '해리성 기억 상실증'은 분명 "진영"(김하늘 역)과의 스토리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다. 이 영화의 '기억 상실' 소재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애틋함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인 "석원"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 더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5. 분명히 이야기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기억 상실'과 관련된 연결 고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석원"과 "진영" 사이에서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애틋한 상황들을 "석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결혼이라는 사건으로 매듭지어 놓았기에 다른 멜로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이 매우 약하다. 멜로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은 러닝 타임 동안 두 주인공이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무언가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굉장히 축약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몰입감이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6. 그런 부분에서 볼 때, 그렇지 않아도 약하다고 느껴졌던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이 후반부에서 "석원"의 기억 회복 이후 가족애로 변하는 순간에는 다소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인 구성을 보자면 영화 <어바웃 타임>(2013)에서 두 주인공의 멜로가 가족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모습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역시도 <어바웃 타임>의 경우 영화의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명확하게 표현되었다는 부분에 있어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약점을 보일 수 있다. 첫 번째가 기억을 상실한 당사자가 본인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빈번한 반복적인 장면들. 그리고 두 번째가 현재의 혼란스러움과 슬픈 감정들을 표현할 때 유지되는 지나친 무게감. 오히려 <스틸 앨리스>(2015)와 같이 장르적인 성격이 '드라마'에 가깝다면 이 부분 역시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멜로'라는 장면에 있어 위의 두 가지 약점을 자칫 지루함을 남길 수 있다.


8. 이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역시 후반부의 기억 회복 이후 기억과 현실을 오가는 부분이 조금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큰 약점으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진영"의 정체를 묻어두기 위해 러닝타임 내내 그녀의 감정을 표현해 주지 않은 부분이 더욱 아쉽다.


9.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타이틀 역시 주인공 "석원"의 영화 속 어떤 상황을 대입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서 등장하는 "석원"의 유서와 같은 편지의 첫머리를 딴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처음 기억을 잃어버리고 돌아온 그에게 모든 주변 사람들이 기억을 되찾으라고 채근하던 모습들을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


10.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오브젝트들(강아지, 퍼즐 등)을 통해 장면으로 보여주지 못한 의미들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떨어져 있는 두 시점, 두 사람을 연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김영희"(장영남 역)라는 인물의 비중을 조금 줄이더라도 "진영"의 이야기를 더 해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는다.


11.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이런 대사가 하나 나온다. "잊어버리면 사라지는 것이 기억이다." 살아가면서 모든 기억을 할 수 없는 게 사람이지만, 정말 기억이라는 건 그렇게 미약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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