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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r 22. 2016

#070. 조이

제니퍼 로렌스에 의해 완성된 데이빗.O.러셀 감독의 실화 작품.




01.


지금 헐리우드를 양분하고 있는 두 개의 가장 큰 키워드는 "코믹북(Comic-Paper)"과 함께 "실화(Based on real story)"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도 <타이타닉>(1997)과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들을 각색하여 영화화 되곤 했었지만, 현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말 그대로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실화들이 "사건(Event)" 중심이었다면, 최근 영화계의 시선은 "인물(Person)"의 이야기에 더욱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 부분은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실화 작품들의 경우에는 소재 자체에 극(Drama)이 필요로 하는 기승전결 구조의 뼈대가 갖추어져 있으나,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때문에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경우, 각색의 과정에서 극의 중심이 될 이야기를 취사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틀을 제대로 구조화 할 필요가 있다. 실례로 지난 2013년 개봉했던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의 <잡스>는 이 과정에서 큰 오류를 범하며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바 있었다.


02.


이 영화 <조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데이빗.O.러셀" 감독의 작품들을 떠올려 보자. 데뷔작이었던 <스팽킹 더 멍키>(1994)에서부터 아카데미의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하나 같이 그들의 세상 속에 존재하는 듯 보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작품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실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일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엄마 수잔을 탐하게 되는 아들 레이먼드의 모습(<스팽킹 더 멍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미키의 모습(<파이터>), 성적 욕망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티파니(<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등이 그랬다. 다만 그런 강렬하고 자극적인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빗.O.러셀" 감독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과 더불어 그가 창조해 놓은 허구적인 세계 속의 이야기들이 관객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작품 <조이>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동명의 실존 인물을 베이스로 삼고 있는 작품이고, 그 소재 역시 현재 우리의 삶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문제는 스토리는 현실과 가까워졌는데,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여전히 과장되어 보이고 허구스럽게 다가온다는 것.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의 모든 캐릭터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되게 표현되고 있다.


03.


물론 감독의 전작인 <파이터> 속 "미키"라는 캐릭터 역시 이 작품 <조이>의 "조이"(제니퍼 로렌스 역)처럼 실존했던 인물의 이야기를 베이스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설정 면에서 두 인물은 어딘가 모르게 서로 닮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파이터>의 경우에는 주인공인 "미키"가 어떤 과정을 통해 타이틀을 획득해 나가는지에 대한 서사보다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삶 그 자체를 더욱 조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영화 <조이>와 결정적인 차이를 낳는다. 많은 부분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조이>는 그녀의 삶 전체가 아니라 그녀가 써 놓은 성공 신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에 더욱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1번의 이야기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실화를 베이스로 하며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경우, 어떤 특정 지점의 이야기를 취사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어땠을까?


04.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분할하여 설명할 수 있다. 주인공인 "조이"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내해야만 했던 현실을 조명해 주었던 전반부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밀대 걸레 "미라클 몹"을 개발하여 CEO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후반부의 이야기. 사실 이 작품의 모델이 되는 "조이 망가노"의 삶이 실제로 어떠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조이"라는 인물이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고 보여주는 것과 모든 가족들이 그녀 하나만을 바라보며 "조이"의 삶을 극한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모든 장면들은 후반부에서 이용될 '인생역전'이라는 소재의 극적인 활용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데이빗.O.러셀" 감독의 지난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안전해 보이는 보편적인 방식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넌 항상 어려서부터 평정심을 잘 유지했어


05.


이 영화에는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이 단조로운 스토리를 벗어나기 위해 두 가지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조이"라는 캐릭터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의지하고자 하는 가족들로부터 꿋꿋이 견뎌냈던 그녀 자신으로부터 파생된 이야기 하나와,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편이 되어준 할머니 "미미"(다이안 래드 역)의 존재로부터 파생되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가 바로 그것인데, 이 두 가지 장치가 극 속에서 작용하고 있기에 감독은 "조이"라는 캐릭터에게 수 많은 위기들을 마음놓고 던져 놓을 수 있다. 그녀의 사업을 비웃으며 언제든 그만두라고 종용하는 가족들의 모습에도, 그녀가 자신의 딸 앞에서 수치심을 느꼈을 때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동일하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06.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의미있게 지켜본 것은 영화의 전반부에서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이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 그녀의 사업이 성공하는데 어떤 조력자의 역할들을 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혼했지만 "조이"의 집에 눌러앉아 있던 전 남편 "토니"(에드가 라미레즈 역)로부터 소개받은 홈쇼핑 채널의 이사 "닐 워커"(브래들리 쿠퍼 역)는 그녀의 장기적인 비지니스 파트너가 될 인물이었고, 사업 초기 자금을 얻을 수 있었던 곳은 자신의 어머니와 이혼한 뒤 수 많은 여자를 전전하던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 역)의 새 여자친구였다. 사실 이런 부분들이 바로 "데이빗.O.러셀" 감독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간의 케미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물들의 행동 혹은 모습들이 과장되더라도 충분히 이해하며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두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평한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이런 지점에 닿아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07.


반면 이 작품에는 자신의 사업을 통해 과거에 본인이 처해있던 삶의 굴레로부터 틀을 깨고 나오는 "조이"와 함께 또 다른 인물 하나가 자신만의 세계로부터 독립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바로 그녀의 엄마, "테리"(버지니아 매드슨 역). 그녀는 자신의 남편 "루디"와 이혼한 뒤로 자신의 침대와 TV 속 드라마가 세상의 전부인 인물이었다. 모든 것을 딸인 "조이"에게 의존했고, 자신의 세상 속으로 낯선 이가 등장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도 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흑백 신과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동일한 장면들이 바로 "테리"라는 인물의 심리를 반영한 부분이며, 또한 그녀의 딸 "조이"와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는 부분이다. 아무튼, 영화가 진행되고 "조이"가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테리"라는 인물 역시 "투생"이라는 인물을 만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이 영화가 "조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표면적으로 "꿈"을 꾸고 있는 이들에게 응원과 힘을 보내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 "테리"가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는 모습은 이 "꿈"이라는 것이 단지 선택된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과 비단 세계가 놀랄만한 일을 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이 영화가 이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08.


그 동안 "데이빗.O.러셀" 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언제나 굵고 진한 모습들을 지켜봐 온 관객의 입장에서 이번 작품 <조이>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보여주었던 스타일과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과장되어 표현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 다소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남는 것 같다. 그나마 이 작품을 이만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니퍼 로렌스"라는 배우의 아우라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데이빗.O.러셀" 사단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는, 이제 막 20대 중반에 들어선 이 여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들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으며,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게 만든다. (보통의 경우 여배우에게 이런 표현을 쓴다면 보기보다 어려보인다는 의미가 되지만, 그녀에게 이 표현은 완전히 반대의 의미가 될 정도로 성숙하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온 작품의 수도 벌써 3편. 올해로 58년생인 "데이빗.O.러셀" 감독의 나이가 다소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앞으로 두 사람이 보여줄 새로운 이야기들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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