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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r 28. 2016

#071. 배트맨VS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환영 받지 못한 새로운 배트맨에 대한 위로.




01.


조금은 억울할 것도 같다. 이 작품 <배트맨 VS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저스티스의 시작)의 제작이 발표되고 난 뒤 환호를 내지르던 이들이 정식 개봉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언론의 혹평을 듣고 한숨부터 내쉬고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정말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외면받아야 할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는지에 대해 직접 물어보고 싶다. 물론 이 작품의 전면에 내세워진 "배트맨"과 "슈퍼맨"이라는 캐릭터, 일반 미디어에 노출된 지구 상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그 이름 정도는 들어 봤을만한, 그들이 갖고 있는 무게감과 인지도에 의해 환영과 비난을 동시에 받을 가능성은 시작부터 염려스러운 부분이었다. 게다가 "배트맨"의 경우에는 이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지난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통해 여론과 평론을 모두 사로잡은 바 있었던 캐릭터가 아니었나. 이런 상황에서 "DC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굳이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반대편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커다란 흥행과 수익을 얻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한 발 늦어버린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그들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것은 앞으로 진행될 DC 코믹스의 개별 유닛 영화화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1)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구분에 대한 설명은 지난 글 <#066. 데드풀>의 1번 내용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02.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진행하고 있는 디즈니가 마블 코믹스의 수 많은 캐릭터들을 얻어 문어발식으로 세계관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과 달리, 어쩌면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워너브라더스는 애초에 그만큼의 물량공세를 펼칠만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더불어, "잭 스나이더" 감독을 양손에 쥐고 시리즈를 진행해 갈 수 있었던 것이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배트맨 비긴즈>(2005), <다크 나이트>(2008),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3부작을 통해 찬사를 받았던 것과 달리,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2013)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함께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인간의 내면을 극적으로 표현해 냈던 "크리스토퍼 놀런"의 "배트맨"에 비해, "잭 스나이더" 감독의 "슈퍼맨"은 시각적인 부분에 큰 비중을 둔 느낌이 강했고, 스토리 라인을 피상적으로 구현해 내는 것에 더욱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판이한 두 감독의 스타일은 평단과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대단하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후광에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잭 스나이더"와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좌) & "잭 스나이더" 감독 (우)


03.


이번 작품 <저스티스의 시작>을 놓고도 두 감독 중 "잭 스나이더"가 메가폰을 잡은 것을 두고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이 대단히 실망이라고 말하며 그 이유를 "잭 스나이더"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한 작품이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인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선장 격이라 할 수 있는 감독이 책임을 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실 모든 책임이 감독에게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앞서 2번의 마지막 문장에서 조금 비꼬는 듯한 어투로 이야기를 한 것은 그래서이다. 많은 이들이 "잭 스나이더"에 비해 "크리스토퍼 놀런"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이 작품의 한계를 선언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 언급하자면, 사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도 <맨 오브 스틸>과 <저스티스의 시작>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두 작품 모두 그의 프로듀싱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감독의 위치와 프로듀서의 위치가 다르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크리스토퍼 놀런"의 시각도 분명히 이 작품에 투사되어 있는 셈.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현장에서는 워너브라더스의 관계자들 모두 이 작품 <저스티스의 시작>에 대단히 만족했다고 한다. 이 모든 짐들을 "잭 스나이더" 혼자서 떠안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두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논외로 한다면, 나는 이 작품 <저스티스의 시작>이 새로운 시리즈를 선언하는 작품으로서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2) 이 시리즈 <저스티스 리그>의 메가폰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잡지 못한 것은 그가 이미 그 전부터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있었던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뒹게르크>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워너 브라더스" 역시 이를 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루며 비밀리에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영화 <인섬니아>(2002)를 시작으로 14년 째 "워너 브라더스"에서만 영화를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04.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타이틀이다.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경기를 우리가 항상 "한일전"이라 부르는 것처럼, "배트맨"과 "슈퍼맨" 각각의 팬들에게 이번 작품의 타이틀에 어떤 캐릭터의 이름이 먼저 붙여지는가? 하는 것은 큰 관심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품이 제작될 시점에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헐리우드의 많은 가십들은 두 캐릭터의 순서를 두고 루머들을 양산해 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배트맨 VS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고, 내용적으로 역시 "배트맨"의 이야기 속에 "슈퍼맨"이 개입하는 듯한 흐름을 초반부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내용적으로 볼 때 이전에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창조해 냈던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 워너 브라더스가 이 작품을 이전 "배트맨" 시리즈와의 연계성을 고려했다면, 굳이 "잭 스나이더" 감독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3) 사견이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대표적인 거물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과 "잭 스나이더"를 통해 자신들이 선보일 수 있는 라인업을 전체적으로 구성함에 있어 '투트랙 전략'을 활용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으로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방향은 "잭 스나이더" 감독에게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게는 그 보다 더 자유도가 높은 작품 선택권을 주는 방향으로 말이다. 물론 이것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 대한 워너 브라더스의 깊은 유대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두 캐릭터의 무게감을 대등하게 가져가고 있지만, 확실히 "배트맨"의 시점에서 해석되고 있다.


05.


영화는 시작과 함께 아무런 대사도 없이 "배트맨"(벤 에플렉 역)의 어린 시절을 조명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그 흔한 오프닝 타이틀조차도 스크린의 우측 하단으로 밀어버린 채 이 부분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의 시작이 이러한 모습을 가지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이 작품이 이전에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구축해 놓은 "배트맨" 시리즈와 분절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이 이야기의 주체가 "배트맨"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배트맨"의 탄생이 보여지는 것과 달리 "슈퍼맨"(헨리 카빌 역)의 그것은 조명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 스토리 상에서 "배트맨"이 왜 "슈퍼맨"에게 적의를 띄게 되는 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이미 누군가로부터 소중한 부모를 잃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는 이후 자신이 고담시를 지키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된다. 그런데 "슈퍼맨"은 자신으로부터 또 한 번 소중한 이들을 빼앗아 가 버린다는 설정. 이런 의미의 오프닝은 작품을 제작하던 이들이 정통성의 족쇄와 자가 복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고심 했는지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의 의도와 다른 반응이 조금 당혹스럽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4) 이 외에도 감독은 어린 "브루스 웨인"이 동굴 속에서 수 많은 박쥐들에 의해 허공에 떠오르는 듯한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원작의 모습을 떠나 자신만의 "배트맨"을 창조해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06.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두고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정의"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얕은 수준에 그치고 있어 절망스럽다고도 말한다. 이런 해석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는 단순히 "정의"라는 포괄적인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 동안 "슈퍼맨"과 "배트맨"이 합리주의적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전반부에는 "배트맨"의 시선에서, 후반부에서는 "슈퍼맨"의 입장에서 각각 개인주의적 정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 동안 고담시 전체의 안정을 위해 범죄자들을 처단하던 "배트맨"은 "슈퍼맨"이 외계 생물을 퇴치했던 합리주의적 정의관에 의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면서 그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테러 집단의 격퇴 장면에서 등장하고 있듯이 "배트맨" 역시 그 동안 "슈퍼맨"과 다름 없는 정의를 지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배트맨"은 자신이 그 동안 지켜왔던 "정의"를 협의의 수준까지 좁히게 되며 이것이 바로 그 동안 히어로들이 보여왔던 "정의"와 다른 부분으로 표현된다. 이는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슈퍼맨"의 행동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된다.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 역)에 의해 어머니가 위기에 처하자 그 역시 자신이 그 동안 수호해 왔던 "정의"의 개념을 변경하여 "배트맨"을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다만 앞선 "배트맨"의 그것에 비해 "슈퍼맨"이 보여주는 행동들은 다소 맥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와 비슷한 모습을 이미 <다크 나이트>(2008)를 통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믿음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비난 받을 때, 당신은 그것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07.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맨"에게 "배트맨"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흥미롭게 보이는 것은 애초에 이 두 캐릭터는 태생부터 다른 존재로 설명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위험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광의의 정의를 상실하고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 "슈퍼맨"의 모든 행동들이 결국 "배트맨"과 다르지 않다는 지점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이 작품에서는 단지 "슈퍼맨"과 "배트맨" 두 인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던 "슈퍼맨"을 인간의 영역에 닿아 있는 "배트맨"과 동일시하는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저스티스 리그>에 등장하는 수 많은 초월적 캐릭터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었으리라. 쉽게 설명하자면, <어벤져스>(2012)의 "아이언 맨"이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와 동일한 지점에서 설명될 수 있어야 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다만 <어벤져스>의 캐릭터들은 각자의 개별 작품들을 통해 낱낱이 설명되고 있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캐릭터들은 그럴 수 없었으니 이런 방식으로라도 당위성을 제공해야 했을 것이고 말이다.


궁금하군, 당신도 피를 흘리는지..


08.


이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가치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에 대한 것이었다. 앞서 이 영화의 주된 캐릭터는 "배트맨"이라고 언급한 바 있었지만, 적어도 이 가치와 관련해서는 "슈퍼맨"이 많은 부분을 이끌어간다. 처음 "슈퍼맨"이 인간들에 의해 비난을 받기 시작한 것은 "로이스 레인"(에이미 아담스 역)을 포함한 민간인 기자들을 생포한 테러 집단에 대한 응징 때문이었다. 물론 영화의 후반부에 들어 이 모든 것이 "렉스 루터"에 의한 계획된 음모였다는 것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는 테러 집단에 대한 응징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최근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이 테러 공격을 받고 있는 현실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다. 앞서 이야기 한 두 정의관 역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가치관이기에 이 작품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었다. 평범한 이들은 저울의 가운데 서서 관망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히어로의 어깨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09.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이 영화에서 "잭 스나이더" 감독은 어떠한 부분도 하나의 시각으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슈퍼맨"의 죽음에 대해서도 감독은 그의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의 슬픔과 감정에 따라 쉽게 변질되는 대중의 속성에 대해 두 가지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누군가의 상실 이후에야 그가 일상에서 주었던 존재감에 대해 더욱 깊게 느끼고 마는 우리들의 모습과, 어떤 이를 판단하는 일에 있어 단편적인 시각들에 얼마나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에 대해 말이다. 만약 이 작품에서 스토리 상의 개연성에 아쉬움을 느낀 이들이 있다면, 반드시 어떠한 상황을 선택해야만 했던 히어로들과 달리 어느 한 쪽도 포기하지 못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10.


개인적으론 그런 감독의 욕심마저도 흥미로운 소재였기에 이 영화 <저스티스의 시작>을 즐겁게 볼 수 있었지만, 캐릭터들의 관계를 '복수'라는 단어로 연결지어 놓은 부분과 "배트맨"과 "슈퍼맨"이 화해를 하게 되는 이유가 동명이인이었다는 설정에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사실 "슈퍼맨"을 향한 "배트맨"의 증오심이 "렉스 루터"에게 전이가 되고, 그 상황에서의 오해가 "슈퍼맨"에게 다시 향한다는 설정은 유치하기는 해도 이 작품이 코믹북을 원작으로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개연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영웅의 엄마가 동명이인이라 화해를 하게 된다는 설정은 조금 과장해서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다. 더구나 영화의 전반부에서 "배트맨"은 자신의 부모를 잃었던 것을 발단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앗아간 "슈퍼맨"에게 적의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슈퍼맨"의 엄마에게서 부모를 잃은 이들의 동질감과 비슷한 무언가를 느낀다? 글쎄,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이 그것까지 이해하기 바라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는 훌륭했다. 다만, 분노의 근거가 되는 스토리가 빠져있어 아쉬웠을 뿐.


11.


후반부에 이르러, 두 인물이 공동의 적을 만나게 되면서 마음을 합일하게 되고, 위기의 순간에 "원더우먼"(갤 가돗 역)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을 보면서 화려함에 대해 언급하지만, 정작 감독은 그에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 확실히 빌런과 관련된 스토리 역시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치를 살짝 초과하는 듯한 느낌이 있고, 시리즈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벌써부터 이렇게 센 장면들을 보여주면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과연 어떤 장면들이 탄생하게 될 지 궁금해 질 정도다. 다만 "슈퍼맨"이 애초에 자신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던 창을 쥐고 빌런의 가슴에 꽂아넣던 장면은 배경으로 삽입된 음악의 웅장함과 더불어 의외의 감동을 주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번 작품으로 한 가지 확실해 진 것은 전체적인 분위기에 있어 확실히 DC 코믹스의 라인이 마블의 것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 공개될 <저스티스 리그>의 느낌이 <어벤져스> 시리즈와 또 어찌 다를 지 기대가 되는 것이고.


12.


마치 영화사의 직원에 빙의된 듯한 느낌으로 글을 써내려 온 것 같기는 하지만, 이전에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완성해 놓은 <다크나이트> 시리즈 정도의 무게감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상이한 캐릭터들 간의 무게감, 시리즈의 진행 방향 등 작품 이외의 것들에서 자유로웠던 것과 달리, "잭 스나이더" 감독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앞으로 진행될 <저스티스 리그>와의 연계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슈퍼맨"과 "배트맨" 두 캐릭터의 이야기를 상당히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원더우먼"이야말로 이 작품의 시리즈를 연결하는 장치로 이용되고 있다.


13.


마지막으로 많은 이들이 이 작품 <배트맨 VS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유로 "생각보다 너무 가볍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정의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왜 <어벤져스> 시리즈는 그래도 되고,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는 그럴 수 없는 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기대가 너무 편향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 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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