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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y 18. 2016

#076. 45년 후..

중요한 것은 사랑의 기간이 아니라, 함께 나눈 시간의 길이다.




**앞서 작성한 <곡성>의 글과 유사하게 막(Act)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이 글이 <곡성>의 이전에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그것은 <곡성>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분절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01.


영화의 소재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루어지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그 모습은 조금씩 다를 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역할을 부여받게 되면 다소 일정한 형태로 그 모습이 획일화되는 경향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국내에서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랑'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클래식>(2003),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너는 내 운명>(2005), 등의 흐름을 잇는 정통 멜로 계열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와 <엽기적인 그녀>(2001),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건축학개론>(2012) 등의 로맨스 코미디 작품에서 등장하는 풋풋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이 대부분의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는 '젊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02.


물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어떤 경향에 대한 비난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관을 찾아 티켓을 구매하는 관객층의 대부분은 여전히 20-30대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한 캐릭터들의 감정에 대해 보여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이야기 하자면 이런 시장 논리에 휘둘리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의 사랑(여기에서는 연령대라는 기준에 의거한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야겠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져야 한다는 것'의 숙명은 그리 이상적이지만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그러한 시도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 <장수상회>(2014) 등이 조금이나마 노년의 삶과 사랑에 대해 비추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관객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영화 속 다른 스토리들과 함께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해외작이기는 하나, 이 영화 <45년 후>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무게는 다른 영화들의 그것과 조금 달라보인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일주일동안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03.


이 영화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결혼한 지 45주년을 맞이한 어느 한 노부부가 자신들의 결혼기념일 파티를 일주일 앞두고 날아 온 한 통의 편지로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과 관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조금씩 바뀌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시간 순서대로, 그것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시간을 극 중의 막(Act) 형태로 분절시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동안 다른 작품에서 이 방식이 전혀 구현된 적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영화에서 시간의 분절이 의미하는 것은 화제의 전환(환기) 혹은 새로운 내러티브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동일한 이야기를 시간대(요일별)로 나누어 놓은 이 작품의 구성은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04.


이 영화가 요일별로 분절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온 다른 이유 하나는, 매일 아침 시작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조금씩 변화가 있다는 지점 때문이다. 이 영화는 "케이트 머서"(샬롯 램플링 역)는 자신의 애완견 "맥스"와 함께 산책을 다녀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아침에 "맥스"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은 그녀에게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그녀는 같은 모습으로 산책을 다녀온다. 허나, 남편인 "제프 머서"(톰 커트니 역)가 다락방을 오르며 그의 첫 연인 "카티야"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 뒤 목요일 아침엔 조깅을 나서지 않았다. 대신 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지긋이 지켜본다. 금요일 아침에는 처음으로 아내인 "케이트"보다 남편인 "제프"가 먼저 집을 나서게 되며 그의 옛 사랑에 대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결국 그날 밤, 두 사람은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마지막 토요일, 두 사람의 결혼기념식이 있던 날 "제프"는 모닝 커피로 아내를 깨우는 데, 이 모든 장면들이 모이자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매일 아침만으로도 이 작품의 주된 감정들이 축약적으로 갈무리 되어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두 사람의 일주일이 표현된 장면이라기보다는, 어떤 관계 속에서 변화되어 가는 감정의 모습과 그런 감정의 이동이 이끌어 내는 행동의 변화. "케이트"와 "제프" 두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같은 것 말이다.


당신은 그녀를 몰라.


05.


영화는 표면적으로 남편 "제프"의 첫사랑 "카티야"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 때문에 두 사람의 갈등이 시작된 것처럼 표현되고 있지만 사실 이 사건은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두 사람 사이의 형체없는 불안을 터뜨리고 만 기폭제일 뿐이라 여겨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은퇴한 교사인 "케이트"가 언제나 남편인 "제프"의 행동을 달래는 듯한 입장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카티야"의 소식 이후 매일 밤 다락방에 홀로 쳐박혀 그녀의 옛 사진이나 뒤적거리는 남편을 발견한 뒤에도 "케이트"는 결코 자신의 정제된 모습을 버리지 않는다. 그녀의 감정이 가장 폭발했던 금요일 저녁의 대화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녀의 그런 행동과 두 사람의 관계가 지난 45년 동안 서로에게 있었을 불만과 상처들을 자연스럽게 덮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거니까 말이다.


두 사람은 함께 보낸 기간에 비해 나눈 시간은 모자라 보인다.


06.


조금 더 섬세하게 살펴보자. 영화의 시작과 함께 산책에서 돌아온 "케이트"가 장갑을 벗는 장면. 그녀의 손가락에는 여전히 반지가 위치하고 있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 반지가 결혼 반지인지 아닌지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지만, 그 위치가 네번째 손가락이라는 것은 어떤 암묵적 추론에 대한 암시를 드러낸다. 그리고 나는 영화 내내 남편 "제프"의 손가락을 주시한다. 만약 내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그의 손가락에는 단 한 번도 반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하나 더. 언젠가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이들이 만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케이트"를 통해 알게 된다. 사실 45년이나 함께 살아온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제프"는 자신의 첫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케이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 "카티야"의 소식은 두 사람의 관계 수면 아래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이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터뜨리고 만 것이다. 솔직히 생각해 보자. 이제 45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기껏 남편의 첫사랑 소식 하나 때문에 그렇게 상처를 받는다고?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07.


앞서 언급한 심리적인 부분 이 외에도 "케이트"가 그녀의 남편 "제프"에게("카티야"가 아니다) 절망스러운 감정을 전달받았을 부분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프"와 "케이트"가 함께 사랑스러운 밤을 보냈던 날 그 이후, 그는 다락방으로 향해 첫사랑 "카티야"의 사진을 뒤적인다. 마음은 "카티야"를 향한 채 몸을 통한 현실의 쾌락만을 강요당한 듯한 "케이트"의 기분은 어땠을까? 물론 "제프"는 그것이 아니라 이야기 할 지 모르지만, 침대 위에 홀로 남겨진 아내의 마음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그녀는 그것까지 모두 내색하지는 않는다. 그가 없는 틈을 타 다락에서 모든 것을 발견한 뒤에도 그녀는 그 사진을 어쩌지 못해 다락으로 향하는 사다리 위에 얹어두고 마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 작품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면, 아마 당신의 마음이 오롯이 그런 "케이트"의 마음에 닿아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모든 걸 다 했어. 당신이 느꼈을 지는 모르겠지만.


08.


"카티야"의 소식이 들려 온 이후, 남편이 그 소식에 대한 마음을 실체로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극대화 된다. 특히 "제프"가 스위스행 티켓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케이트"가 알게 되면서 그녀는 '질투'와 '배신감' 이라는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남편인 "제프"가 우연하게 들려 온 옛 사랑의 소식에 잠깐 흔들려 과거를 추억하는 일과 그 마음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카티야"가 임신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안 "케이트"의 입장에서는 그의 행동이 마치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을 것이다.(이 부분 역시 직접적인 언급은 등장하지 않지만, 정황상 두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어쩌면 반복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09.


복잡한 일주일이 지나고 두 사람의 결혼 기념일 파티가 있던 날 아침, 남편은 그 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다른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선다. 그가 "카티야"에 대한 감정과 미련, 그리고 생각들을 모두 정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동안 자신이 아내에게 전하지 못했던 애정들을 표현하고자 마음을 고쳐먹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글쎄 전날 "케이트"가 전에 없이 동요하는 목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터뜨린 것이 그에게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음 속에 여전히 "카티야"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지난 45년의 세월을 피부를 맞대며 함께 살아 온 "케이트"와의 관계 역시 그리 쉽게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10.


그 동안 살아 온 인생의 모든 시간을 더해도 아직 두 사람의 45년에 미칠 수 없는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는 하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도 분명히 모자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누군가 함께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그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응축되어 함께 감정을 나눈 시간의 길이가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45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하고, 서로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두 사람의 '기간'이 조금 안타깝게 다가온다. 어쩌면 "앤드류 헤이" 감독이 이 작품의 타이틀을 <45 Years>라고 결정한 까닭 역시 그러한 맥락의 의도가 반어적으로 깔려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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