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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y 24. 2016

#078. 싱 스트리트

OST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



01.


영화 속 OST의 역사를 정확히 분절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1970-80년대 <죠스>(1975), <스타워즈> 시리즈 등에 등장한 음악들이 영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시그니쳐(Signature)로써 관객들의 머릿 속에 각인 되었다면, 90년대 중반 이후 <보디가드>(1992), <타이타닉>(1997)을 통해서는 작품의 배경을 채운 음악들은 영화 속 주요 장면들을 조금씩 담아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옥같은 멜로들이 쏟아져 나와 "Jessica"의 'Good bye'가 회자되던 90년대 후반 역시 그 시대의 시작이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존 카니" 감독은 영화 속에서 OST를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그니쳐로서의 활용', '주요 장면을 상징하는 배경으로서의 활용'을 넘어선 '스토리를 풀어내는 역할로서의 활용'이 바로 그것. 지난 작품들 <원스>(2006)와 <비긴 어게인>(2013)에서도 분명히 그런 모습이 있었지만, 그는 이번 작품 <싱 스트리트>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02.


앞서 OST의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했던 옛 작품들이 그 동안 "존 카니" 감독이 보여준 작품들과 조금 다른 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작품의 '시그니쳐'와 '배경 음악'으로써 치부되던 OST가 어느 순간 작품의 중요한 위치로 옮겨가면서 '음악 영화'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원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이후에도 <러덜리스>(2014), <인사이드 르윈>(2013), <프랭크>(2014)와 같은 작품들은 계속해서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참고로 여기에서 헐리우드 애니메이션들은 논외로 하기로 한다. 90년대 '디즈니'와 '드림웍스'를 통해 제작된 애니메이션들의 OST는 이미 지금 '음악 영화'의 수준을 넘어선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 흐름의 중심에는 '존 카니' 감독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가 OST를 대하는 모습은 이미 영화 속 어떤 요소보다 가장 중요해 보인다. 물론 이 작품 <싱 스트리트>의 스토리는 그가 연출해 온 지난 작품들의 분위기에서 오롯이 벗어나 있지만 OST를 통해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갈무리 해내는 모습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어느 마에스트로의 그것에 가깝다.


그가 학교 밖에서 그녀를 만난 이유는 우연이 아니다.

03.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코드는 '간결함'이다 다른 영화였다면 그 과정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을 부분들이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다. 주인공 "코너"(페리다 월시-필로)가 밴드 '싱 스트리트'를 구성하게 되는 과정은 물론, 그 과정을 통해 그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까지 모두 말이다. (실제로 그가 '라피나'(루시 보인턴)의 앞에서 처음 부른 노래 실력은 정말 듣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가 꿈을 갖고 나아간다는 설정도 아니다. "코너"가 밴드를 만들고 싶어했던 이유는 단순히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였다. 이 영화를 두고 단순히 '성장 영화'의 시각을 갖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는 이러한 부분들을 과감히 삭제한 대신 "코너"라는 소년이 사회 속에 던져진 뒤로 부딪힐 수 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잣대를 강요하는 학교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너져 가는 가정의 모습, 그 동안 알지 못했던 형 "브랜든"(잭 레이너)의 숨겨진 속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생애 첫 감정까지. 이 영화를 단순한 '성장 영화'라고 볼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 영화는 음악을 하는 주인공 "코너"의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소년의 삶을 가진 "코너"의 성장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04.


영화 속에는 이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 뿐만 아니라 1980년대를 대표하는 유명 밴드들의 트랙까지 함께 사용되며 그 특유의 흥겨움을 유지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듀란듀란'이라는 밴드는 이 영화의 중심에서 '싱 스트리트' 멤버들이 지향하는 방향점의 역할을 하며, 뮤직비디오와의 점접을 만들어 "라피나"와의 스토리를 이어나가게 하는 장치가 된다. 또한 처음으로 '듀란듀란'이 언급되는 장면에서 아버지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발터 벤야민'이 언급한 바 있는 '아우라'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후 "코너"와 "라피나"가 왜 영국을 향할 수 밖에 없는 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다. 실제로 1980년대를 전후로 하여 밴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제작될 무렵, 그것을 바라보는 음악계의 첨예한 대립이 존재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현실적으로 닿아있는 지점에 대해서도 짚어보게 된다. 1900년대 중반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영국과 미국의 팝 음악이 얼마나 큰 동경의 대상이 되었는지 역시 말이다.


그들이 뮤직비디오를 찍으려 한 까닭은?

05.


주인공 "코너"가 학교 밖의 건물에 서 있던 "라피나"를 만나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그 이후의 행동들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단순한 스토리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부모의 갈등과 어려워진 가정 여건으로 인해 다니던 사립 학교에서 가톨릭 공립 학교로 옮기게 된 이후 "코너"에게 학교 안은 그 동안 겪지 못했던 부조리함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학교를 옮길 것을 제안하는 아버지 앞에서 공립 학교에 가면 다른 학생들에게 얻어 맞기나 할 것이라던 형의 이야기가 옳았다는 것이 채 증명되기도 전에, 학생들의 폭력과 흡연에도 묵과하던 학교가 가톨릭 교리 한 줄에 집착하고 선생들의 알량한 아집들이 이 학교 안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코너"가 학교 밖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코너"가 갖고 있던 '갈색 구두'와 '머리칼'이 그런 학교에 대한 반항의 징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영화가 끝날 때 쯤, 그 시작은 "라피나"의 마음을 빼앗기 위한 것이었지만 더 이상 그 목적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밴드 '싱 스트리트'를 통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일갈하기 때문이다.

           

This is your life you can go anywhere
you gotta grab the wheel and own it
and drive it like you stole it
rollin this is your life you can be anything

<Drive it like you stole it> 中


06.


이 영화에서 주의깊게 봐야 할 장면은 두 가지. "코너"의 머릿 속에서 상상되어지는 졸업 파티 장면과 영화의 끝자락에서 등장하는 마지막 콘서트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며 '꿈을 위해 나아가는 것'과 '시간이 흐른 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의 감정'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혹시 "코너"의 형 "브랜든"이 자신의 속내를 오롯이 드러내며 자신의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를 동생에게 전가하는 장면을 가슴 아프게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어쩌면 "코너"가 자신의 머리 속에서 졸업 파티 장면을 상상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브랜든"의 모습과 연결시켰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코너"와 "브랜든"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앞을 향해 한 발을 내 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상상만 하던 때의 "코너"는 'Drive it like you stole it'이 흥겹게 흘러나오는 그 장면을 통해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바꾸고자 했던 것들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콘서트 장면에는 이 영화의 전부가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07.


반대로 마지막에 등장하는 콘서트 장면은 "코너"를 비롯한 '싱 스트리트'의 멤버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이야기들을 현실 속에 구현해 내는 것으로 보인다. "코너"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형이 하지 못했던 그 한 발을 이 장면을 통해 내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국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연결된 행동에 불과하다.) 다만 이 장면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이 한 장면만으로 러닝타임 전체를 통해 감독이 보여준 모든 이야기들을 한 순간에 털어내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 세 곡으로 이루어진 이 장면에서 감독은 그 동안 "코너"라는 인물이 겪어 온 가정사에 대한 아픔과 사랑의 감정, 그리고 학교에서 겪어야 했던 부조리함 모두를 압축해 보여준다. 그 동안의 음악 영화들에서 마지막 연주 장면이 '갈등의 해소', '연정의 고백', '때 늦은 용서' 등의 의미로 그려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08.


원래 "존 카니" 감독은 기존에 연기를 경험하지 못한 배우들을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어설픔과 풋풋함을 관객들의 색다른 떨림으로 치환해 내는 데 놀라운 수완을 보여주었다. 영화 <원스>의 "글렌 헨사드", "마케타 잉글로바" 커플(지금은 헤어졌지만..)이 그랬고, <비긴 어게인>에서는 짧은 시간이긴 했어도 "애덤 리바인"을 스크린에 옮겨 놓기도 했다. 이 작품 역시 동일하다. 지난 작품들에 비해 깔끔한 스토리도 아니면서 무언가 어느 한 쪽이 빠진 듯 조금 B급스럽기까지 한 이 작품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떨리는 건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첫 연기를 선 보인 "페리다 월시-팔로"의 색다른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 어쩌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원스>나 <비긴 어게인>과 같은 가슴 깊은 떨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신 그들의 '싱 스트리트'를 함께 걸으며 우리 역시 언젠가 한 번은 꿈꾸어 봤을 '각자의 스트리트'에 대한 추억과 미련을 털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영화를 이야기 하며 "코너"와 "라피나"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Don’t sit around and talk it over
You’re running out of time
Just face ahead
No going back now

<Go Now>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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