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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n 25. 2016

#081. 비밀은 없다

당신에게 반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01.


영화 <식스 센스>(1999)가 시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사적 놀람의 단계를 넘어서 의식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하고, '반전'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던 게 말이다. 분명히 그 이전에도 이와 관련한 기법들이 존재했고 이용되어 왔다. 그 이후 '반전'이라느 것은 하나의 기법을 넘어 하나의 장르처럼 받아들여지고 - 물론 여기에는 마케팅의 힘이 크다. - 개별 작품 속에서는 하나의 목적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스릴러 장르에서, 한국형 스릴러에서는 마치 이 반전이라는 단어가 어떤 하나의 신앙처럼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반전 영화'라고 해서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02.


다른 기법들/기술들 역시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구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너무 각박한 시선이 아니냐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확률의 문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빈도의 문제로 접근하고자 한다. 개별 감독들은 겨우 한 두 작품밖에 만든 적이 없다고 이야기 할 지 모르지만, 극장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피로가 쌓이고 만다. 이 영화 <비밀은 없다> 역시 다르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을 위해 작품 속 모든 것들을 희생한다. 그래도 관객에 따라 그 충격이 적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다만 치밀한 각본에 의한 내용 상의 충격이 아니라 시각적 자극에 의한 충격이라는 점에서는 그간 만나왔던 수 많은 작품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사실 이 즈음에서 이미 대충 느낌이 왔다.


03.


반전이라는 기법을 스크린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로 세 가지 방법이 이용되어 왔다. 관객의 사고를 현혹시키기 위해 진짜 이야기 밖에 위장된 이야기를 얹어 놓는 방식. 한 인물이 가진 진실된 이야기를 작품의 마지막까지 감추어 놓다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터뜨리는 방법. 이도 저도 아닌 경우엔 시간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위의 세 가지 방식 중 첫 번째 방식의 구성, 진짜 이야기 밖에 선거라는 다른 이야기를 쌓아 놓는다. 방식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나 일차원적이라는 것이 아쉬움일 뿐.


04.


기본적으로 스토리 자체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거나, 캐릭터의 심리를 이용한다기 보다는 시각적 자극에 기대는 작품 - 개인적으로는 시각적 자극 역시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다고 느낀다. - 에 가까워 보인다. 일단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 제대로 녹아나지 않는 느낌이다. 특히 딸의 죽음이 밝혀진 이후 갑작스럽게 추가되는 이야기들은 분명 후반부의 주된 스토리와 연계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도는 모습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 역시 마찬가지. 처음에 극을 이끌고 나아가던 "연홍"(손예진 역)의 내러티브가 가진 톤과 아이들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톤은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 톤의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 "이경미" 감독의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는 분명히 전작인 <미쓰 홍당무>(2008)를 통해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 바 있었지만 두 작품은 장르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그 때는 호감으로 느껴지던 연출법이 이번 작품에서는 틀린 느낌이랄까.


누구를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딸? 아니면 자신?


05.


최면과 주술의 소재가 이 영화에서 이용되는 것 역시 <비밀은 없다>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 아닌 경우에야 수사 및 추적 과정에서는 이 두 가지 요소를 피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 두 가지 요소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주 치밀한 구조의 스토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 최면과 주술은 스토리 전개 능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억지로 메워넣는 요소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역시 사건과 실마리의 연결고리를 최면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연홍"의 주술은 그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결국 사용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내 딸이 죽었는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06.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영화가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활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그녀는 분명 이번 작품에서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기술적으로' 말이다. 그녀의 연기와 별개로 깊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딸을 잃은 어미의 모습이 정말 그럴까? 라는 의문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너무 과하다. 그런 모습을 통해 어떤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는지조차 제대로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연기가 겉도는 느낌은 전혀 아닌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이런 느낌도 정말 오랜만에 느낀다. 이에 대해 "이경미" 감독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탈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녀의 표현을 오롯이 빌리자면 누군가의 우산이 되기엔 어딘가 좀 부족하고 불안해 보이는 엄마가 나중에 진정으로 확장된 모성애를 성취해 낸다면 캐릭터에게 큰 성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의 엔딩에서 마지막까지 죽은 딸이 자신을 어떻게 이야기 했는지 되묻던 그 모습을 보면 과연 감독의 말처럼 "연홍"이라는 캐릭터가 진정으로 확장된 모성애를 성취해 냈는지 의문스럽다. 그녀는 딸을 찾기 위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개인적 복수, 화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들을 취했던 것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07.


정치나 선거를 활용한 작품들이 그 동안 많이 있어왔기 때문에 소재 자체가 신선했던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재의 정면이 아닌 측면 부분을 이용한 그 시선만큼은 흥미로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그마저도 치정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몰아넣고 말았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차라리 처음의 컨셉대로 선거의 결과를 좌우하는 딸의 실종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반전이라는 게 그렇게도 중요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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