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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n 30. 2016

#082. 백 엔의 사랑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




내 인생은 백엔짜리니까요.

01.


<록키>(1976), <주먹이 운다>(2005), <신데렐라 맨>(2005), <사우스포>(2015) 등 '권투'를 소재로 하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 아니, 스포츠를 소재로 삼는 대부분의 작품 - 감독들은 대체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자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에 나름대로 이름을 알렸던 존재들로, 선천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으나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었거나 은퇴 / 사고 / 트라우마 등의 외부적 요인에 따라 링을 떠나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노력과 화려한 재기에 대해 다루어내면서 그 속에 감동과 환희 같은 속성들을 녹여내는 것이다. (물론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같은 예외도 존재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영화 <백 엔의 사랑>을 이들과 같은 '복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일정 부분 투박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이 '권투'에 대한 소재를 안고 가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언급한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링을 바라보게 되는 동인(動因)이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이치코"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가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복싱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02.


이 작품에서 '권투'라는 - 권투를 통해 그녀가 딛게 되는 링의 존재 역시 - 소재는 "이치코"(안도 사쿠라 역)에게 있어 진짜 세상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안쓰러움의 시선으로 아무런 노력없이 쌓아올려져 있던 세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의 손으로 하나하나 완성해 낸, 오롯한 그녀의 세상. 이 영화는 그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그 한 걸음을 딛으며 전에 없었던 다양한 감정들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권투와 연관되는 장면들이 영화의 후반부에 많이 등장하기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만 많은 홍보 과정에서 그녀의 무기력한 첫 모습이 이 사회의 청년 세대, 소위 N포세대라 불리는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이 얼마나 치열한 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의 모습이 그런 청년들의 모습과 닮아 보이는 것은 그녀의 첫 모습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두 발로 링 위에 서고자 땀을 흘리던 모습 때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녀는 보기에도 안쓰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03.


32살의 "이치코"는 대학 졸업 후 변변한 직장 하나없이 부모에게 의지하며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인물이다. 어떤 능력도, 의지도 없는 채로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동생과의 다툼으로 인해 우발적인 독립을 선언한다. 자주 가던 백엔샵에서 아르바이트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지만, 아무런 사회 경험이 없던 그녀에게 모든 것은 어색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어느 웹 사이트의 영화 줄거리를 닮아 있지만, 여기까지의 내용은 "이치코"라는 인물이 자신이 살던 폐쇄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권투 시합 이후의 삶)을 갈망하게 되는 첫 번째 요인이 된다.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시선(관객의 시선)엔 이상한 사람들 뿐인 것 같다. 매일 바나나를 사러 오는 바나나맨의 정체도. 옆에서 끝없는 수다를 늘어놓는 남자 동료도. 때가 되면 나타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사 가는 어떤 할머니도. 어쩌면 그 동안 피해 왔던 세상이 그렇게 어려운 곳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04.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하나 같이 어떤 결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높은 스펙과 완벽한 이미지만을 원하는 사회 모습에 대한 풍자임과 동시에 작품 속 "이치코"의 모습이 결코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물론 그녀의 다소 어설픈 모습들을 보면서 아주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이지만 그녀 역시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준다. 단적인 예로 바나나맨 "카노"(아라이 히로후미 역)와 처음 만나기로 한 날 자신의 속옷을 체크해가며 신경 쓰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녀가 한 사회의 평범한 여성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욕구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05.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이 작품의 어느 순간은 개인적으로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솔직히 그 장면만 놓고 보자면 자리에서 일어서고 싶을 정도였는데, 장면도 장면이지만 그만큼 변태 이혼남을 연기했던 "오키타 히로키"라는 배우의 연기가 현실적이었다. "이치코"를 모텔로 끌고 가던 그 장면이 이 작품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타케 마사하루" 감독의 의도를 전혀 모르는 것 또한 아니다. 아마도 그는 이 장면을 통해 "이치코"가 앞서 설명했던 것과 동일하게 자신의 원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기를 갈망하는 두 번째 요인으로 만들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성별을 떠나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외부의 폭력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장면은 언제나 불편하다. 그래도 "이치코"에게 고마웠던 건 그 상황에 무너지지 않고 잘 견뎌내어 용감히 맞서 이겨냈다는 것이다.


06.


그녀가 "카노"의 서툰 요리에 처음으로 진짜 감정을 드러내며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린 것 역시 바로 그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던 두 가지 요인 때문에 홀로 서기를 선언한 이후 느껴야만 했던 지독한 아픔과 외로움들이 그의 밥상, 그의 따뜻한 행동 앞에서 모두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왜 우리들 역시 사회 생활을 하며 힘겨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 문득 어머니의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리워질 때가 있지 않나. 아마도 그것은 추억 깊은 곳에 자리 하고 있는 어머니의 밥상에서 피어오르던 흰 쌀밥의 따뜻한 수증기,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남몰래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누군가의 행복함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밥상에는 그런 힘이 있다.


현장에서 진짜 식사 중인 안도 사쿠라.


07.


애석하지만 "카노"의 밥상에 따뜻함을 느꼈던 그녀와 달리, 그 놈은 단순한 보답의 차원이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자신을 길거리에서 구제해 준 것에 대한 등가관계의 보답. 얼마 지나지 않아 두부를 팔러 다니는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이 순간 "이치코"는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힘으로 만들어 진 세상은 그가 떠난 뒤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권투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가 예전에 몸 담았던 체육관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아직 그녀에게 세상이란 자신의 직장인 백엔샵과 집 사이의 거리가 전부다. 그래서 '권투'는 그녀에게 자신이 아는 세상 내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의미한다. 조금씩 모습이 변해가기 시작한다. "이치코"의 얼굴에 전에 없던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녀는 이제 행복한 삶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으리라.


08.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 그녀는 처음 나선 정식 경기에서 처절하게 깨지고 말았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얼굴이다. 엉망이 된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 보는 "이치코"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놈. "카노"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그의 경기를 찾았던 것에 대한 보답일까? 그러고 보니 그는 그녀가 준 만큼, 딱 그만큼만 돌려주던 놈이었다. 그가 그렇게 떠나기는 했지만, 사실 "이치코"는 그가 나쁘지 않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렇다. 싫다고 선언한다고,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곁을 떠난다고 해서 감정까지 쉽게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 그가 말한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이치코, 밥이나 먹으러 갈까?


09.


영화는 이제 끝이 나지만, 두 사람은 아마도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으리라.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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