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Jul 07. 2016

#083. 나이스 가이즈

관객들은 원작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권리가 있다.




01.


이런 작품을 만나고 나면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 지 사실 조금 난감하다.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산업만 놓고 보더라도 마케팅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혹은 그 마케팅의 방향이 어떠한 지에 따라 원작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 마케팅 방향이 긍정적이었는지에 대한 부분은 성적이 - 영화 산업에서는 흥행 스코어 - 어땠는 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물론 관객의 취향이나 입소문과 같은 요소들은 개인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영역에 있기에 과정의 노력은 무시당하고 결과에만 좌우되는 자신의 일을 힘들어 하는 마케터들도 현장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다. 성적만을 바라볼 수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산업 자체의 문제점 같은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언급하도록 하자. 오늘 아쉬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왜 우리 나라의 홍보 마케팅은 어느 새로운 것 하나가 조금 성공했다 싶으면 왜 주구장창 그것 하나만 바라보며 카피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는 것일까? 이 영화 <나이스 가이즈> 역시 바로 그런 근시안적인 마케팅에 망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02.


지난 5월 북미에서 이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기 전, 북미 배급을 맡았던 "워너 브라더스" 사는 이 영화 <나이스 가이즈>의 컨셉을 70년대 복고풍 스타일로 잡고 마케팅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트레일러만 확인해 봐도 알 수 있듯이 전체적인 톤은 어두우면서도 무겁다. 이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중후반의 L.A.의 - 많은 사건 사고의 중심지였던 - 모습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관객들에게 공개된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전혀 그런 점이 고려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서 "러셀 크로우"와 "라이언 고슬링"의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 몇몇 관객들은 올해 2월 개봉했던 한 영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바로 <데드풀>(2016). 자막으로 처리되던 그들의 이름 아래에는 영화 <데드풀>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상징하는 문구가 익살스럽게 -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 표현되어 있었다. 그것까지만이었다면 조금 웃으며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모든 단어 선택을 자기 멋대로 뱉어내기 시작한다. '의역'이 되는 부분들도 도가 지나친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 "잭슨 힐리"와 "홀랜드 마치"가 뱉어내는 속어들과 언어 유희들이 빛날 수 있는 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톤 자체가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막들을 마주하는 순간 이 영화는 그저 3류 포르노 영화만도 못한 작품이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데드풀>의 경우에는 애초에 영화 자체가 그런 컨셉이었다.


03.


너무 자막 하나로 이 영화를 매도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자막 하나 때문에 마케팅을 운운하는 게 과하다고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영화를 제공받는 관객의 입장에서 - 특히 외화의 경우에는 이 방법이 유일한 현재의 상황에서 - 이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수입사 혹은 배급사가 좋은 해외 작품을 수입해 국내 극장가에서 상영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마블'이나 '디즈니'와 같은 블록버스터 급 작품이 아니면 짧게는 한 두달, 길게는 6개월 이상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다. 만약 이 영화를 책임지고 있는 관련 회사들의 마케팅 방향 혹은 컨셉 자체가 앞서 언급한 <데드풀>의 카피가 아니었다면, 이 자막 자체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다른 작업을 통해 교체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었다.


04.


사실 이 영화를 연출한 "셰인 블랙" 감독은 각본가로 조금 더 유명하다. <리썰 웨폰>(Lethal Weapon, 1987) 시리즈를 통해 각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작자 "조엘 실버"를 만나 자신의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다. 감독으로 전향한 지는 채 10년이 되지 않았으며, "존 파브로" 감독의 뒤를 이어 <아이언 맨 3>(2013)를 연출하면서 디렉터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최소 2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던 <아이언 맨 3>에 비하면 이 작품 <나이스 가이즈>는 그 1/4에 못 미치는 5천만 달러 정도의 소규모(?) 작품이다. 애초에 이 작품은 제작자 "조엘 실버"의 지휘 아래 총 3부작으로 제작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조엘 실버"는 <리썰 웨폰>, <다이하드>, <매트리스> 등의 대단한 시리즈물들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었으니 북미 현지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3,500만 달러라는 총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흥행 성적 때문에 이 계획이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고 하니, 어쩌면 이 작품은 여기에서 끝이 날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호흡은 의외로 좋다.


05.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러셀 크로우"와 "라이언 고슬링" 두 배우의 호흡에 기댄 작품이다. 영화의 짜임새 자체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90년대 초중반 자주 등장했던 버디 무비의 흐름과 완벽히 일치한다. 어느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의견이 부딪히는 두 주인공의 협력. 비틀린 자신의 확고한 가치관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의 존재. 그리고 해피엔딩. 개인적으로는 "성룡"과 "크리스 터커"가 함께 출연했던 <러시 아워> 시리즈가 떠올랐는데, 영화의 배경 자체를 1970년대에 맞춘 만큼 스토리 라인 역시 그 당시 올드 패션의 흐름대로 끌고 나가는 듯 보인다. 그 당시의 작품들을 자주 접했던 관객들에게는 식상함 혹은 친숙함으로, 그 시절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관객들에게는 신선함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되지 않을까 싶다.


06.


이 작품을 보면서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배우가 자신이 맡을 배역에 어떤 확고한 기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현대극이라기 보다는 1970-80년대, 혹은 90년대까지에 치우쳐 있는 시대극에 가까운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계획되어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 연출의 <블레이드 러너 프로젝트(가제)>에 출연하게 되면, 필모그래피 처음으로 SF 작품에 도전하게 되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녹여낼 지 궁금하다. 그리고 "러셀 크로우"는 <레 미제라블>(2012) 이후로 작품 운이 별로 없는 듯 보이는데, 내년으로 계획되어 있는 <미이라>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부진할 경우 이제는 내리막을 계속 걷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배우를 누가 <블루 발렌타인>의 "딘"이라고 생각할까?


07.


평소에 작성했던 [넘버링 무비]의 글들과는 내용적으로 다소 상이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통해 꼭 한 번 언급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1980년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외화를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북미의 많은 작품들이 국내 시장을 주목할 수 있도록 만든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 작품만이 갖고 있는 원작의 고유한 분위기까지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산업 내부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두 배우의 호흡에 비해 성적이 매우 아쉬운 작품이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082. 백 엔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