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20. 2016

#088. 카페 소사이어티

복잡한 인간관계 속 개인에 대한 근원적 물음.




01.


1935년 생. 우리 나라 나이로 여든도 넘은 "우디 앨런" 감독은 그 동안 50편이 넘는 작품 - 장, 단편을 모두 포함하여 을 연출했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 지난 1966년 <타이거 릴리>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후로 매년 1편 이상의 작품을 내 놓은 수치라고 할 수 있으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이 수치는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만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수치이며, 동일한 기간동안 80여 편에 육박하는 작품의 각본을 써 내기도 했다. 나이가 무색하다는 말이 정말로 그런 셈이다. 글쎄 그 스스로가 자신의 나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그의 머릿 속은 온통 영화로 가득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는 여전히 왕성히 활동 중이다. (좌측에서 두 번째)


02.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2015)를 이야기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감독들에 대해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토마스 앤더슨", "고레에다 히로카즈", "홍상수"와 같은 감독들이 바로 그렇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감독들이기도 하다. 인트로만 보더라도 감독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도록 작품을 완성해 내는 이들. 그들의 작품 속에는 각각의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련의 시각들이 온전히 녹아 있고, 또 그 시선에는 어느 순간 숨을 멈추고 몰입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디 앨런" 감독 역시 그렇다. 작품의 수가 많기 때문에 모든 작품들이 그렇다. 라고 이야기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많은 작품들이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유사한 경향성을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도 감독의 고집스러움에서 느껴지는 매력이라고 해야겠다.


03.


이번 작품 <카페 소사이어티>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가 평생을 떠나지 않은 뉴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과 - 서부에 위치한 LA 헐리우드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삽입된 것은 다소 의외다 - 특정 장면의 반복을 - 콜걸인 캔디와의 실랑이, 조카 "바비"(제시 아이젠버그 역)를 처음 마주한 장면에서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 형인 "벤"(코리 스톨 역)이 사람을 수 없이 땅에 묻던 장면, "필"(스티븐 카렐 역)이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 역)를 만나 대화를 하는 도중 계속해서 지인들을 만나게 되는 장면 등 - 통해 무게감을 덜고 주위를 환기시킨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말이다. 아니, 사실 영화의 시작과 함꼐 등장하는 Casting 란 아래에 쓰여 있던 'Alphabetical Order'라는 단어만 보아도 이 영화는 온전히 "우디 앨런"의 것처럼 보인다.


I never read what you say about me or the reviews of my film.


04.


이 영화를 향하는 시선들 가운데 가장 아쉬운 대목은 이 작품이 단순한 치정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 관객 수 자체가 많을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상영관에서 상영되고 있지만.. - 이 영화를 바라보는 포커스를 "바비"와 "보니", 두 사람의 은밀한 감정에 두고 있다. 이는 이 영화를 표현하기로 불륜이니, 치정이니 하는 단어들이 인터넷에 쏟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표면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보니"는 "바비"의 삼촌인 "필"과 결혼해 그의 숙모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사회적, 도덕적으로 자신의 진짜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캐릭터의 상황을 스크린에 표현해 내기 위한 하나의 설정에 불과하다. 이 작품의 타이틀이 <카페 소사이어티>, Cafe Society로 명명된 이유 역시 바로 이 곳에 있다.


05.


원래 Cafe Society라는 단어는 1900년대 초중반 뉴욕, 파리, 런던 등지의 유럽의 큰 도시들에서 고급 레스토랑, 카페 등을 통해 자신들만의 모임을 가지던 상류층 인사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풀파티 장면과 유사한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우리가 그들의 모습에서 짚어내야 하는 것은 영상에서 보이는 외면의 화려함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관계 속에서 쉽사리 드러낼 수 없는 속내다. 웃으면서 서로의 근황을 묻고, 투자 현황을 체크하고,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 모이는 그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 마냥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사랑했던 "보니"가 조카인 "바비"와 교제하고 있음이 처음으로 밝혀지던 장면의 "필"의 모습과 유사하다. 자신의 진심을 쉽사리 먼저 보여줄 수 없는 복잡한 인간관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 - 이 물음에는 개인의 선택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 이것이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이 이 작품 <카페 소사이어티>를 통해 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풀파티가 등장하는 시작점은 영화의 타이틀을 원어 그대로 설명한다.


06.


앞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복잡한 인간관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라고 언급하기는 했으나, "보니"와 "바비", 두 사람의 감정에 대한 내러티브를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에서는 외적으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맥락에서 끊임없이 파생되는 작은 이야기들에 대한 고찰이 수 많은 이야기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금도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파생된 작은 이야기들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세 사람의 삼각 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 "보니"의 모습과, 그런 "보니"와 헤어진 뒤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또 다른 선택을 내려야 하는 "바비"의 모습이 함께 어울리면서 이 작품의 진짜 메세지를 구체화시켜 나간다.


07.


헐리우드에 처음 온 뉴욕 촌놈 "바비"를 데리고 LA 구경을 시켜주던 "보니"가 '베벌리 힐즈'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두 사람이 이후에 선택하게 되는 결과에 맞물려, 어쩌면 영화 속 운명을 좌우하는 대목처럼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삶을 사는 것과 작은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생각했던 처음의 작은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이후 설정과 더불어 왜 두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서로를 향하지 못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작은 대답을 내놓는 것처럼도 보인다. "필"과의 결혼 이후 시간이 지나 "바비"를 조우한 "보니"의 말을 들어보면, 결국 그녀가 "바비" 대신 "필"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안정적인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바비" 역시 "필"에 뒤지지 않는 부를 가진 인사가 되었으니, "보니"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선택이 - 작은 삶에 만족하며 "바비"를 선택하지 못한 일 -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마지막에 "바비"와 "보니"가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기도 책임질 수도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전에 선택한 자신의 결정이 지금, 후회가 되는 까닭에 말이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작은 삶.


08.


양자 택일에 대한 문제 역시 이 영화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 부분을 표현하는 요소가 "바비"와 "필",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 "보니"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다소 진부하면서도 아쉬운 지점이다. 다만 영화 속에서 이 세 사람의 관계 뿐만 아니라 "벤"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 밝혀진 뒤 죄값을 치르는 동안 그의 가족들, 본인 스스로가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에 대한 부분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다시 한 번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우디 앨런" 감독이 조명하고자 했던 것이 비단 "바비"와 "보니", "필", 세 사람의 관계만은 아니었던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디 앨런"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양자 택일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떤 태도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전작인 <블루 재스민>(2013)에서도 드러났듯이, 결국 인간은 하나의 선택 앞에서 무한히 작은 존재이며, 어떠한 선택도 자신이 의도한대로 이끌고 갈 수만은 없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인생은 인생만의 계획이 있다.


09.


결국 감독이 이 영화의 대사인 '인생은 인생만의 계획이 있다'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인생관을 모두 보여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허름한 멕시코 가게의 바 앞에 앉아 "바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던 "보니" 역시 결국엔 "필"을 따라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의 여인이 되어버렸고, "보니"만을 바라보며 순애보 가득한 연정을 외치던 "바비" 역시 이제는 아내를 곁에 두고 다른 이와의 사랑을 갈구하는 또 하나의 '카페 소사이어티'의 멤버가 되어가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증오하고 경멸하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 모든 것들에 조금씩, 그리고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에 대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우디 앨런"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이 형성한 인물들에게 결코 어떠한 가치 판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현실 속 인물이든, 그가 영화 속에서 창조해 낸 캐릭터이든, 역시 인생은 인생만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가 말했듯이.


하지만 이제 그들은 함께할 수 없다.


10.


하나의 이야기를 마치 꿈을 꾸는듯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동화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팀 버튼" 감독의 작품들처럼 완전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이 하나. 반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들 가운데 마치 특정 인물만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다른 이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태도로 그 인물의 감정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아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우디 앨런" 감독은 후자에 해당된다. 이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 속 두 사람의 감정, 특히 엔딩에서 서로 오버랩되는 그 표정은 현실 속에 고립된 감정의 동화적 표현에 가깝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리고 우디 앨런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그 지점에 놓여 있는 우리들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87. 이레셔널 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