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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Oct 01. 2016

#089. 칠드런 오브 맨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이야기.




01.


이전에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과거에 인기를 얻었던 작품들이 재개봉하는 경우가 상당히 늘어난 모습이다. 재개봉의 이유는 다양하다. 처음 개봉한 지 몇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봉하는 경우, 해당 작품의 주연을 맡은 배우의 새 작품이 개봉하는 경우, 특정 배우의 타계를 기리기 의한 경우 등등. 하지만 이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개봉과 같은 케이스는 오랜만이다. 국외에서 개봉한 지 오래 되었지만 그 동안 정식으로 소개되지 못했던 작품의 첫 개봉. 물론 재개봉의 모습을 갖고 있든, 오래된 작품의 초회 개봉의 모습을 하든, 스크린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점은 동일하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이렇게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고 잊혀진 작품들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은 재개봉 작품들을 마주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일이라 하겠다.


02.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사랑해, 파리>(2006), <그래비티>(2013)로 우리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연출작이다. 국내에서는 개봉 이후 10년 만에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래비티>로 많은 사랑을 받기 이전부터 이 작품의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아주 잘 알려진 영화였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함께 그가 지향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오롯이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의 장기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세 번의 Long take Scene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쏟아냈으며, 스토리 상의 내용은 물론 -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배역의 이름까지도 성서와 연관지어 맞추어 놓았다. - 영화 상에 등장하는 배경들까지도 굉장히 디테일하게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주인공인 "테오"(클라이브 오웬 역)가 "줄리엔"(줄리안 무어 역) 일당에게 납치 당해 끌려간 공간의 벽에 부착되어 있던 신문들은 전부 이 영화 속 내용에 맞춰 하나 하나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전투 장면의 부서진 건물에 낙서된 채로 남겨져 있던 문자들의 모든 의미들 역시 말이다.


1) 물론 <칠드런 오브 맨> 이전의 <사랑해, 파리>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몽소 공원'을 통해 단편 전체를 하나의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2) 이 작품을 함께한 엠마누엘 루베츠키(Emmanuel Lubezki) 촬영 감독은 현재 헐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현장의 질감과 생동감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것에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다. 여러 작품에서 선보이는 롱테이크 기법 역시 그런 맥락 중 하나. <그래비티>(2013), <버드맨>(2014), <레버넌트>(2015)로 아카데미 최초로 3연속 촬영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03.


영화는 기본적으로 2027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공권력을 잃어버린 채로 무질서한 가운데, 모든 여성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임을 겪게 된다는 설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테오"가 들어간 카페에서 사람들이 세계 최고령자의 죽음이 아닌, 세계 최연소자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왜 이 시기의 여성들이 불임을 겪게 되는지에 대해 일말의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는 전혀 무관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기본적으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가진 SF 작품들은 그 세계가 왜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영화의 시작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  실제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 <그래비티>를 세상에 내놓은 이후 매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영화는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는 작품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생각은 <그래비티> 때가 아니라, 이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이전에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장면의 벽에 붙은 신문들은 모두 하나하나 제작된 것들이다.


04.


감독이 영화 속 불임의 원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과 달리, 아이를 임신하는 것이 기적이 되어버린 설정의 세계관은 영화 속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세계 최연소자였던 "디에고"가 죽고 난 이후 - 이는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18년 만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남을 의미한다. - 이민자 소녀인 "키"(클레어-홉 애쉬티 역)가 다시 한 번 임신을 하게 된다는 것에서부터 이 작품의 모든 이야기들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줄리엔"이 "테오"를 납치하여 "키"의 안전을 부탁하는 것도, 반정부군인 피쉬단와 이민자 계급인 푸지들이 "키"를 두고 어떤 정치적 행동을 취하고자 하는 것도, 모두 그녀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키"라는 인물이 이민자 계급에 속한다는 것 역시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영화 속 주인공이 누군가의 희망이자 상징이 되는 작품들을 여럿 봐왔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해리 포터"가, <헝거게임> 시리즈 "캣니스"가 그랬다. - 물론 이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 더 먼저 제작되고 있었지만 - "키"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인류 전체로 보면 새로운 생명의 시작과 종족 번영의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이민자 계급에 속한다는 것은 그들(푸지) 역시 영화 속 영국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05.


이민자 계급의 "키"가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이 하나의 인간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해석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현실의 문제를 가장 강도 높게 비판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정부와 군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영국인과 무질서와 무법으로 가득한 이민자 계급 사이의 계급 차별은 물론, 수용소 내에서 일어나는 비인권적 행위에 대한 모습까지. 기존의 많은 SF 영화들이 외부 세력의 침입에 맞선 지구인들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조금 다르다. 영화 속에서 "줄리엔"과 "테오"가 "키"를 인간 프로젝트(The human project)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보내고자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영화는 결코 어떤 해법이나 결말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이런 상황이 '왜' 벌어 졌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 이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 지. 또 그 모습은 곁에 있는 타인에게 어떤 의미로 발현이 될 지. 그 과정에 모든 무게가 실린다.


신념의 반대쪽에 운명이 있다.


06.


반정부군 피쉬단을 이끌고 있는 "줄리엔"이 "테오"를 납치하게 된 것은 두 사람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테오"와 "줄리엔"은 과거 사회운동가로 일하면서 만나서 "딜런"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지만, 그가 독감으로 죽으면서 헤어진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줄리엔"은 계속해서 자신의 신념을 믿고 나아가 반정부군을 이끌게 된 것이고, "테오"는 자신의 신념을 외면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아들이 죽음을 맞이한 것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이 설정은 "제스퍼"(마이클 케인 역)의 대사인 '신념이 반대쪽에 운명이 있다.'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같은 목표를 향해 걷던 두 사람의 결과물인 "딜런"의 죽음은 신념이 운명에 지고 만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서 "테오"가 "키"의 뱃속에 잉태되어 있던 새 생명을 직접 받아내는 것으로 신념이 운명을 넘어서는, 혹은 "테오"가 그 동안 굴복하고 있던 자신의 운명에 맞서 애초에 갖고 있던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곧추 세우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은 앞서 "줄리엔"이 "키"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의미를 "테오"에게 맡긴 이유를 다시 한 번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07.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테오"가 "줄리엔"의 부탁을 들어 다시 한 번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결정으로 인해 그는 "딜런"에 이어 "줄리안"과 "제스퍼"의 죽음까지 바로 눈 앞에서 직접 목도하게 되고 만다. 많은 작품 속 주인공이 그러하듯,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주인공이 갖고 있는 사명감을 조금 더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줄리안"의 제안에 대한 자신의 선택이 어쩌면 잘못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는 "테오"라는 인물은 과거에 비해 성장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테오"는 같은 순간 - 아들이었던 "딜런"이 죽었을 때와 같은 순간 - 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후반부의 모든 장면에서 자신보다는 "키"와 그녀의 아이를 위해 맹목적으로 온 몸을 던지는 모습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는 모습 역시 어쩌면 그가 목도한 장면들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테오가 키를 향해 뛰어드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08.


이 영화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역시 롱테이크 신, 그 중에서도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12분 가량의 트래킹 숏(Tracking shot)이 포함된 정부군과 반란군의 대치 장면이다. 물론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장면만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이 기술적으로나 영상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나 이전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이야기들이 있기에 이 부분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만 한다. 모든 영화가 똑같다. 이전에 쌓아온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매력적인 장면도 제대로 된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더 이상 새 생명이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함에 최연소자의 죽음 앞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눌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10개월을 품어 온 그 숭고한 생명에 대한 경외심.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듯 보인다.


2) 트래킹 숏(Tracking shot) : 움직이는 연기자를 따라 트랙이나 이동 장치 위에서 마운트 된 장비로 연속적으로 촬영하는 것.


09.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 기준을 두고 설정될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은 채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수작(秀作)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확실히 그런 지점에서 명확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아들인 "조나스 쿠아론" 감독의 <디시에르토>가 국내에 개봉한다. 뛰어난 영상으로 호평 받았던 아버지와는 조금 달리, 이야기에 조금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들. 그의 시작을 함께하면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과거도 함께 즐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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