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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08. 2015

#014. 초콜렛 도넛

편견에 맞서 서로의 마음을 보듬었던 세 남자의 이야기.

Title : Any Day Now
Director : Travis Fine
Main Cast : Alan Cumming, Garret Dillahunt
Running Time : 98 min
Release Date : 2014.10.02. (국내)




01.

영화에 앞서 나는 나와 다른 성 정체성에 가진 이들에 대해 깊은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수준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초콜렛 도넛>이 분명히 그런 의미에서 부분적으로 가슴이 울리기는 했으나 모든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음을 밝힌다. 아마도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지점들에 대한 부족한 이해 때문이 아닐까? 다만 그들의 감정이 생물학적인 성별 차이를 넘어서 내가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다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좋아하는 사람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바, 성 소수자들이라고 표현되는 그들의 감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02.

영화 속에서 사회의 "소수자"라는 대상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 소수자"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운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소수자"와도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이 결코 특별히 대우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성 소수자들이 사회 속에서 특별한 대우나 차별적인 처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과 상동하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또한 스토리의 중심에 있는 "폴"의 직업을 이 시대의 가장 고지식한 이미지를 가진 집단 중 하나인 "변호사"로 설정한 부분 역시 영화를 통해 사회의 시선을 비틀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03.

이 영화의 원제는 <Any Day Now>. 우리 나라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타이틀인 <초콜렛 도넛>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이 시도가 절반은 성공적이고 그 나머지는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타이틀을 <초콜렛 도넛>으로 설정한 것은 대단히 감각적이라고 볼 수 있다. "루디", "폴" 부부와 "마르코" 사이의 상징적 연결고리가 바로 그 초콜렛 도넛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은 최악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초콜렛 도넛"이라는 소재를 타이틀에서부터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사전에 국소적으로 제한하는 마케팅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모든 홍보 문구엔 '초콜렛 도넛을 좋아하는 소년 마르코'라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작품 속 "마르코"가 좋아했던 건 "도넛"이었지 "초콜렛 도넛"이 아니었다. 물론 대다수의 관객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겠지만 작품을 수용하기도 전에 의도적으로 관객의 판단을 흐릴 수 있는 마케팅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04.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르코"에게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상징적 의미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에게 "밤"이라는 시간은 친모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순간이었으며, "루디", "폴" 부부에게서 가장 좋아했던 해피 엔딩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혼자가 되어버린 낯선 공간에서 자신의 집을 향해 한 없이 걸어야만 했던 시간의 배경 역시 "밤"이었다.(이 부분에 있어서는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초반에 등장하는 친모의 집을 찾기 위한 밤과 엔딩에 등장하는 "루디"와 "폴"의 집을 찾아 떠났던 밤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한 마디로 "마르코"에게 "밤"은 상실과 결핍의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루디"와 "폴"에게 들은 해피 엔딩 이야기 역시 자신의 진짜 부모가 해 줄 수 없는 것들(결핍)을 대신 채워준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05.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베드신 속 상반신 노출 역시 대단히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감독은 15세 관람가의 틀 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을 이 장면 하나를 통해서 대신 보여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쯤 영화를 보다 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이 영화에 존재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루디"와 "폴" 두 사람 모두 생물학적으로 남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이 이 베드신 속에는 등장하는 상반신 노출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인간의 가슴은 그 외형적인 모습을 통해 생물학적 차이를 가지는 유이(有二)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06.

사실 "트래비스 파인" 감독의 영화를 접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보는 내내 우리 나라 퀴어 영화의 대표라고  일컬어지는 "김조광수" 감독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대단히 싫어한다. 그의 작품들에서 중심이 되는 두 인물은 항상 두 사람으로 분담되어 있는 역할 속에서 여성성이 강한 인물이 약자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회가 그에게 강요한 암묵적인 침묵 속에서 그의 작품 세계 역시 영향을 받았을 지 모르겠지만 만약 우리 영화사에 퀴어 영화가 더 제작된다면 반드시 그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감독들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07.

이 작품의 마지막에 흐르던 "루디"의 노래는 정말 압권이었다. "밥 딜런"의 명곡이었던 'I shall be released' 가 "알란 커밍"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데 "알란 커밍"이 그렇게 노래를 잘 할지 몰랐다. 최근에(2014년) O.S.T가 대단히 좋은 영화들이 줄지어 소개되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그 선 상에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 2014년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기대 이상의 O.S.T. 를 쏟아내었으며, 이제는 사운드 트랙 역시 작품성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08.

이 작품에서 정말 인상적인 건 실제로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마르코" 역의 "아이작 레이바"도 위에서 언급한 노래도 아니었다. 바로 "루디" 역을 맡은 "알란 커밍"의 대단한 연기력. 실제로도 커밍 아웃을 했던 이 배우는 마치 그의 삶을 영화 속에 그려내기라도 하는 듯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드라마인 <굿 와이프>에 등장하고 있었던 배우라는 이야긴 들었지만 실제로 연기를 본 건 처음이었는데 마치 <아버지를 위한 노래>의 "숀 펜"이 떠오를 정도로 대단한 연기였다.


09.

우리는 이 고민을 늘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상적인 것을 위해 현실과 싸울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 현실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것. 사실 어디에도 답은 없다. 영화 속에서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루디"와 "폴"에게도 아마 "마르코"를 만난 그 순간부터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전에 자신들의 정체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말이다. 양 쪽 모두를 선택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늘 고민을 하지만,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둘 중 하나라도 강하게 쥘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 그들이 그렇게 싸워냈듯 말이다.


10.

이 영화가 그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외로 엉성한 부분들이 있고, 두 인물을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내기엔 감독의 역량이 조금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힘들 수 있는 소재들을 통해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함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들이  함께하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보편적인 감정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1.

이 작품에서 영화가 끝 날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딱 하나 있다. "루디"는 왜 옆집에 살던 "마르코"에게 처음 보자마자 가족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에 대한 부분. 나는 감독이 이 부분을 고의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루디"의 과거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본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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