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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08. 2015

#015.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

전형적인 인도 영화의 풋풋함이 돋보이는 작품.



Title : PK
Director : Rajkumar Hirani
Main Cast : Aamir Khan, Anushka Sharma
Running Time : 129 min
Release Date : 2015.09.03 (국내)




01.

인도 영화 산업을 통칭하는 '발리우드(Bollywood)'라는 단어는 일반 관객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국인들의 보수성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실제로 매년 1,000편에 가까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는 미국 헐리우드의 연간 제작편수를 상회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도 영화 산업을 '발리우드'라고 부르며 '헐리우드'의 지명과 유사하게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자국 문화에 대한 보수성이 강한 인도인들의 헐리우드에 대한 경쟁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해석과 자국 영화 산업에 비해 앞서 있는 헐리우드 작품들에 대한 동경이 담겨있는 단어라는 것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발리우드(Bollywood)'는 뭄바이의 옛 지명인 '봄베이'와 '헐리우드'의 합성어이다.


02.

프랑스나 영국,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의 작품들에 비해 인도의 '발리우드' 작품들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동안 이름을 알린 작품들의 면면을 돌이켜보면 또 그렇게 생소하지만은 않다. 특히  그중에서도 <슬럼독 밀리어네어>, <세 얼간이>, <블랙> 등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크게 사랑받았던 작품들이다. 다만 '발리우드' 작품들에서 관객들이 더 큰 생소함을 느끼는 이유는 작품  중간중간 등장하는 뮤지컬 형식의 춤과 노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문화적인 부분과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투영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기존의 한국 영화나 헐리우드 작품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실제로 <레 미제라블>이나 <맘마미아> 등의 뮤지컬 형식 영화들이 있기는 하지만, 같은 장르라도 표현 방법에 있어 인도 영화들은 그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03.

이 작품에 출연하는 "아미르 칸"은 지난 1973년 8살의 나이로 데뷔해 무려 43년 동안이나 연기 경력을 이어온 인도의 대표적인 배우 중 하나다. 지난 2011년 국내에서 개봉해 큰 관심을 받았던 영화 <세 얼간이>의 "란초" 역으로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가 개봉 전부터 알려졌던 것 역시 그의 지난 작품 <세 얼간이>의 힘이 크다. <세 얼간이>의 감독이었던 "라지쿠마르 히라니"와 주연인 "아미르 칸"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 만든 작품이었으니, 그 당시 <세 얼간이>의 "All is well"에 반했던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대가 되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이 작품은 인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갈아치운 작품으로 1,200억이 넘는 수익을 남겨 현지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04.

사실 <세 얼간이>를 매우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모바일 예매를 끝낼 때까지 생각만큼 끌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번 주에 개봉한 작품들을 거의 다 보고 나서야 예매를 망설였던 만큼 말이다. 어쩌면 내게도 "발리우드" 작품들 특유의 분위기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나 "발리우드" 작품들은 개봉작 편수 자체가 적은 편이기 때문에, 또 개봉 일주일이 채 넘지 않았지만 스크린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기에 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주변 지인들의 추천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고.


05.

관람하기 전에는 주변의 많은 소스들이 이 영화를 두고 '재밌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었지만, 실제로 보고 난 뒤에 내가 느낀 이 작품의 매력은 전혀 다른 부분에 있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다양한 방법들로 가벼운 농담들을 자주 시도하고 있었고, 특유의 춤과 노래로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작품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무언가를 남겨놓고 엔딩을 맞이했다. 사실 인도에서 제작된 많은 작품들이 기술적으로나 연출 상에 있어 어설픔을 보이면서도 그 속에서 진중한 모습들을 드러냈지만, 이 작품은 유독 더 어설픔 속에서 느껴지는 진심과 같은 것들이 진하게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06.

이 작품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설정은 영화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과 다른 시선을 갖고 있는 인물의 시각을 통해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현실의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비틀어 본다는 것에 있다. 이런 구조를 갖고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외면받고 있는 인물들이나 아이들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미>(2014)의 "스티브"가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이라던가, 얼마 전에 업로드했던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2012)에서 "메이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과 같이 말이다. 다만 이 영화는 다소 엉뚱하게도 주인공이 외계인이라는 설정과 함께 그의 눈에 비치는 생소한 인간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07.

사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피케이"가 어떻게 지구에 머무르게 되는지와 "사구"가 벨기에에서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는 시퀀스들은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다. 물론 실제로는 이 두 이야기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개별적으로는 전혀 연관이 없는 플롯 A와 B를 연달아 배치하다 보니 각각의 시퀀스에서 보여주는 소소한 웃음거리들만이 눈에 띄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사구"와 "피케이"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 이전까지는 이 작품의 정체성이 어디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가 힘들어 지속적으로 기대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08.

그런데 이 영화 중,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점점 진솔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물론 내러티브의 구조적 빈약함에서부터 오는 아쉬움들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지구라는 낯선 환경에 홀로 남겨진 뒤 적응해 나가려는 그의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애잔해 보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신의 종류를 막론하고 찾아다니는 장면에서는 어떤 꿈에 대한 간절함이 오롯이 느껴지는 듯 해서 뭉클함까지 느껴진다.(이제껏 봤던 인도 영화 속 음악 장면들 중 가장 애잔했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디즈니의 작품 중 하나인 <뮬란>에서 주인공 "뮬란"이 Reflection을 부르고 난 뒤의 공허함 같은 것들이 이 장면의 뒤에 남은 듯한 기분이었다.


09.

인도라는 국가에 대해 자세히 모르기는 하지만 다양한 종교가 발생한 기원지임과 동시에 그 많은 문화들이 함께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피케이"가 다양한 종교인들의 옷을 바꿔 입혀 놓고 사이비 교주를 시험하는 장면은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모든 종교는 그 세월의 길이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과 방법들이 모두 다르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형식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감독은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 오면서 자신이 느낀, 종교 사이의 갈등과 일부 급진주의자들의 폭력적인 행동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작품 속에서 표현해 낸 것처럼 보인다.


10.

이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사랑에 대한 이야기 또한 다루고 있다. 지구를 떠나야만 하는 "피케이"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피케이"는 외계인이니까..)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이와 관련된 장면들 역시 다른 헐리우드 작품들에서 봤던 플롯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남자의 모습과 그런 남자의 마음을 뒤늦게 확인한 여자의 모습을 풋풋한 감성으로 잘 그려낸 것 같다. 한 번도 직접 말로 고백해 본 적이 없었을 "피케이"가 어떻게 그 떨리는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있었겠나..("피케이"의 별에서는 상대의 마음을 읽기에 언어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사랑도 그리 했겠지.)  


11.

영화가 다 끝나고 나니 기분이 미묘하다. 완전히 몰입할만한 작품도 아니었고, 기술적으로나 감성적으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준 영화도 아니었는데 의외로 마음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인도 영화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강한 특색 때문에 다소 이국적인 느낌이 아직도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가끔은 이런 조금 어설픈 작품들을 통해 순수했던 때의 감정들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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