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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09. 2015

#017.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마치 우리들의 연애가 시작되고 끝난 것처럼..

Title :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Director : Inudo Isshin
Main Cast : Satoshi Tsumabuki, Chizuru Ikewaki
Running Time : 116 min
Release Date : 2004.10.29. (국내)




01.

세상에 공개된 지 벌써 10년도 넘은 이 작품이 아직까지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으니,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제대로 담아낸 영화의 수명이 얼마나 될는지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포함하여 1990년도 후반에서 2000년도 초반까지 이어진,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작품들이 숱한 그 일본 영화의 부흥기가 지난 10여 년을 지나면서 왜 갑작스럽게 무너지고 말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02.

영화의 제목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니.. 한 동안 정말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던 부분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영화를 네 번쯤 본 지금에서야 겨우 유추해 보자면 아마도 "조제"라는 인물이 세상을 느꼈던 감정과 시선을 반영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세상에 나와 처음 "호랑이"를 만나고 했던 대사처럼 세상은 그녀에게 "호랑이"만큼이나 두려운 곳이었을 것이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바다 깊은 곳에서 "물고기"처럼 숨을 죽이고 "츠네오"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츠네오"일지 모르지만 관객들의 감정은 "조제"의 모습에 더욱 휘둘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03.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사랑이라는 감정을 기저에 갖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다양한 관점들을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할머니"가 "조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오는 전통적인 일본 사회의 관념, "화(和)"의 정신일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에 "조제"가 가진 육체적인 불편함과 더불어 유모차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모습은 감독이 의도했다기보다는 그 역시도 이런 관념들을 배우고 자라 왔기에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04.

한참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할머니가 죽은 이후 두 사람이 처음 나누는 대화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츠네오"에게 진심을 직접 말로 표현한 적 없었던 "조제"가  그동안의 응어리를 쏟아내듯 뱉어내고 있었던 장면이었기 때문에 말이다. 성격의 차이(선천적으로 타고 났든,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습득되었든 상관없이)이기는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가슴속에 응어리를 담아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조제"의 마음이 터져나왔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스크린 속 "츠네오" 만큼이나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05.

이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내용들이 삽입되어 있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너무나 현실적인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기에 이 장면들은 더욱 이질감이 크게 느껴진다. 특히 "칼"이라는 요소에 관련된 내러티브라던가 "코지"가 마트에서 누군가를 해치고 피 묻은 스패너를 무심히 원래 자리에 걸어놓는 등의 장면들이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 장면들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사회적 관념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라고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관객들이 거리감을 느낄 법한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조제"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관념들(다른 것을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는)에 큰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만 같다.


06.

이 작품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 한 구석에 자리할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슬픔과 웃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감정들을 전달해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구간을 두지 않으면서도 슬쩍 건네는 그 감정들이 노골적으로 감동을 강요하는 작품들과 달리 오히려 더 안달이 나고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사실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누군가 채찍질을 하고 멍석을 깔아준다고 해서 억지로 쥐어짜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의 자연스러운 담담함이 의외로 큰 너울을 만들어 보내온 것 같다.


07.

"이누도 잇신" 감독에 대한 이야기 또한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작품 활동에 대한 소식은 거의 없었지만 그는 2,000년대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었다. 특히 더욱 기억에 남는 건 이 작품과 같이 다른 작품들 모두 현실에서는 직접 겪기가 힘들만한 소재들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들을 잘 이끌어냈던, 그 감성들을 조근한 말투로  이야기해 주었던 감독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메종 드 히미코> 역시 잊을 수 없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 이리라.


08.

관객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이 영화의 엔딩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게 있어 이 영화의 엔딩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신이 있었다면 바로 이 엔딩 장면이 아니었을까. 이러나 저러나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남겨진 삶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마지막으로 던진 메시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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