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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4. 2015

#024. 엘리노어 릭비

하나의 사랑, 그리고 다른 곳을 향해 있었던 두 마음.

Title : The Didappearance of Eleanor Rigby : Them / Him / Her
Director : Ned Benson
Main Cast : James McAcoy, Jessica Chastain
Running Time : 123 min
Release Date : 2014.04.09. (국내)




01.

한 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냉정과 열정 사이> 등의 소설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에 대해 두 작가가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포맷이 서점가에 유행처럼 지나간 적이 있었다. <엘리노어 릭비>는 그와 유사한 포맷을 영화라는 콘텐츠로 옮겨와 같은 스토리를 놓고 두 남녀 주인공 각각의 시선에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때문에 영화는 세 편의 독립적인 영화 <엘리노어 릭비 : 그 남자>, <엘리노어 릭비 : 그 여자>, 그리고 <엘리노어 릭비 : 그남자 그여자>로 구성되어 있다.


02.

사실 영화의 타이틀인 "Eleanor Rigby"는 1966년 발매된 "비틀즈"의 "Revolver" 앨범에 수록된, 비틀즈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여주인공 "제시카 차스테인"의 이름이 "엘리노어 릭비"로 등장하고, 이는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비틀즈"의 팬이었다는 설정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원곡인 "비틀즈"의 "Eleanor Rigby"의 가사가 어떤 한 여성의 외로움과 죽음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의 타이틀은 단순히 캐릭터의 설정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영화 속 "엘리노어"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타이틀이자 이름이라고 봐야 할 것만 같다.


03.

소설이나 에세이와 같은 활자로 된 작품들과 다르게 영화를 비롯한 영상 기록물은 하나의 스토리를 몇 개의 분절된 이야기로 분할할 때 결정적인 약점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동일한 신 내에서 반복되는 장면으로부터 파생되는 지루함과 장황함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엘리노어 릭비>는 그 부분을 적절한 수준에서 잘 통제하고 있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추론이 가능한 부분들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두 영화 <엘리노어 릭비 : 그 남자>와 <엘리노어 릭비 : 그 여자>가 만나는 교집합을 적절히 잘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04.

사실 "네드 벤슨" 감독도 이번 작품을 통해 장편 데뷔를 한 신인 감독이고, 배우들 역시 "제임스 맥어보이"의 <어톤먼트> 정도를 제외하면 그 동안 이 영화와 같은 드라마 장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배우들이었기에 그 만남부터 다소 신선하게 느껴진다. 특히 "제임스 맥어보이"의 경우 <엑스맨> 시리즈의 "찰스 자비에"를 제외하고는 크게 두각을 보인 작품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더욱 더 그렇다. "제시카 차스테인"의 경우엔 "제임스 맥어보이"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장르에서 인상 깊은 장면들을 만들어 낸 적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만남이 궁금해진 이유 중 하나였다.


05.

이 영화 <엘리노어 릭비> 시리즈(세 편으로 분절되어 있기에 시리즈물이라고 보기로 한다.)는 단순히 멜로 드라마, 러브 스토리에 대해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함으로써 과거의 아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통해 누구에게나 아픔과 슬픔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가 더욱 빨리 아무는 것도 아니며, 남들보다 수 십 번을 더 다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아픔의 정도가 결코 덜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부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런 모습들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게끔 만들어주고자 한다.



아래 6번에서 11번까지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두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 정리한 글입니다.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아직 감상하지 않으셨다면 건너뛰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06-1.

[엘리노어 릭비 Says 1] 그녀는 그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완벽했던 생활이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이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나의 슬픔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며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하다.


06-2.

[코너 러들로 Says 1] 그녀의 슬픔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녀의 오랜 슬픔과 변덕에 나 역시 지쳐가고 있다. 나라고 그 일을 잊는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마지막으로 남겨진 우리 둘의 행복까지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에 끝까지 지금에 충실하려고 했다. 그것만이 그녀와 나의 미래가 다시 행복해지는 것이라 믿었다.


07.

어쩌면 두 사람은 나름대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을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이 닿아있는 시점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었고, 그의 노력은 현재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사랑은 시간의 차이로 놓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차이로 놓치는  것'이라는 문구가 <엘리노어 릭비 : 그 여자> 편을 통해 보여진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노력은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기억들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녀는 자신이 쌓아 올린 울타리에 가려진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외롭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에게 있어 문제는 '타이밍'이 아니었을까?


08-1.

[엘리노어 릭비 Says 2] 사실 그녀는 방황하고 있는 자신을 그가 적극적으로 붙잡아주기를 바랬다. 나는 변하더라도 그는 나를 위해 그 자리에 항상 서 있어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처음에 그가 나를 찾아오고, 부모님의 집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조금 움직였던 것 같다. 옛날의 좋았던 기억들과 함께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변해 있었다. 우리의 공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만났다고 했다. 괜찮은 척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08-2.

[코너 러들로 Says 2] 그녀가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 뒤 나는 모든 게 망가져 버렸다. 지난 7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세상을 지탱하고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녀가 아니면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아 갔지만 그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다.


09.

"코너"는 아버지라는 인물로 인해 가정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집착을 갖고 있었던 인물처럼 보인다. 성공의 발판이 되어준 어머니를 버리고 젊은 여자들만  찾아다니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만큼은 가정을 지켜내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한편 "엘리노어" 역시 그와 함께한 모든 장소, 그와의 보금자리, 아니 그의 얼굴만 보아도 시시각각 떠오르는 과거의 모습에 당장 떠나지 않고서는 현실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10-1.

[엘리노어 릭비 Says 3]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게  확실해졌다. 내가 그의 곁에 남을 수 없었던 이유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때의 기억을 조금씩 잊어가는 내 모습을 스스로가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일 뿐인데 그 모든 잘못을 그에게 떠넘기고 말았다. 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10-2.

[코너 러들러 Says 3] 나는 그녀를 위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모든 게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겨질 나의 모습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때의 일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굴었고, 그녀의 슬픔을 들어주지 않은 채 덮어 두려고만 했다. 그녀에겐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11.

영화 <엘리노어 릭비 : 그 남자>와 <엘리노어 릭비 : 그 여자>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던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재회하는 장면에서 서로를 안은 채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 모습이 등장한다. <엘리노어 릭비 : 그 남자>에서는 "엘리노어 릭비"가 "코너 러들러"에게, 반대로 <엘리노어 릭비 : 그 여자>에서는 "코너 러들러"가 "엘리노어 릭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는데,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이 비로소 각자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12.

세상에 만약 부피와 질량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완벽히 같은 모양의 슬픔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안게 될 슬픔의 크기를 가장 아프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아픔을 보호하고 위로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설명하고, 문자를 통해 이해하는 것보다 공감하고 위로한다는 행위 자체가 실제로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13.

혹시 이 작품의 시리즈 세 편을 모두 보고자 한다면, 개인적으론 <그 여자> - <그 남자> - <그남자 그여자> 순으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그 이유는 <그 남자>에 비해 <그 여자>가 조금 더 함축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여자>에는 "코너"의 모습이 최소한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남자 그여자>의 경우는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오히려 이야기가 산만하게 느껴져서 나머지 두 편을 관람했다면 굳이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14.

하나의 이야기를 두고 양 쪽의 시각을 모두 생각하는 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양가적 감정'의 단점들에  언급할지 모르겠지만, 예술 작품을 수용할 때만큼은 다양한 시선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영화 자체가 그런 부분들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고 실제로 또 그런 방법들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처음 연출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잘 짜여져 있었던 영화였기에 "네드 벤슨" 감독이 만드는 로맨스물이라면 조금 더 기대감을 가지게 될 것만 같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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