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Jan 14. 2022

일단 쓰는 글 0.

Just Do It.

0. 나는 스스로 발목을 잘 잡는 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주제도 모르고 처음의 마음만 커져서 용두사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성격은 또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그냥 시작해보면 될 걸 이것도 준비하고 저것도 준비해서 처음에 한두 번은 그냥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놓고는 얼마 못가 지쳐 떨어져 나가 버린다. 가령, 책을 읽을 때는 하나의 책을 두세 번은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거나 좋아하는 페이지를 이렇게 저렇게 표시해 두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두세 번 읽을 시간이 없거나 표시를 하기로 해둔 방법을 찾을 길 없는 장소나 시간에서는 아예 독서를 포기해 버리게 된다. 지난달에 소개받은 '텍스쳐'라는 앱에는 모든 문장에 답글을 달겠다는 원대한 포문을 밝히고는 책 한 권, 4개의 글을 남기고는 이어가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 생각이 나는 일만 써놔서 그렇지, 내용보다는 껍데기에 신경을 쓰느라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걸까.


짧은 역사는 아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문제집의 가장 앞 페이지들에만 빼곡하게 글자가 채워져 있었던 일은 셀 수가 없을 정도였고. 시험 기간에도 내용을 외우기보다는 공책을 정리하거나 오답 노트를 정리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재능으로 먹고살 수 있게 좋은 머리로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갚을 길이 요원해 보인다. 책이 좀 구겨지면 어때서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영화나 음악 파일은 파일명을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느라 태워먹은 시간도 한두 시간이 아닐 터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오늘 하려고 했던 이야기인 'just do it'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들도 섞이게 된 것 같긴 한데. 한 사람의 모자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자면 다른 지점의 모자란 부분들까지도 고구마 줄기 딸려 올라오듯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다. 적당히 모자라면 꼬리라도 감출 텐데.


그러니까 요는, 그런 허례허식을 버리기 위한 행동을 이제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니, 생각은 이미 몇 해 전부터 했었지만 도저히 바꿀 수 없었던, 바꾸고자 하지 않았던 모습을 올해는 반드시 고쳐 보일 참이다.


가장 처음의 시작은, 매일 아침 일단 뛰러 나가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단 집을 박차고 나간다. 아, 아직 올해는 비나 눈이 심하게 내린 적이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뛰어 나가는 것부터가 시작.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계단이라도 타고 올라오려고 한다. 우리 집은 17층이니 뭐라도 되겠지. 책은, 아직 가운데 부분을 완전히 펼쳐 접는 일까지는 못하고 있지만, 모서리 꼭지를 접는 일이나 좋아진 문장을 연필로 밑줄을 치는 것까지는 시도해 보고 있다. 웃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내게는 심각한 도전이고 아주 나쁜 습관을 버리려는 시도다. 지난 연말쯤 어설프게 시작했던 불렛 저널도 일단 때려치웠다. 공책을 어떻게 나누고, 그 목적에 맞게 그리고 어쩌고 하는 게 또 내 의지를 꺾어버릴 게 분명해 보여서. 이건 원래의 방법대로 그냥 줄노트에다 날짜만 쓰고 하고 싶은 말들을 채워 넣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글에 넣을 사진을 찾고, 뭐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을 하고. 그 소재를 다듬고 뭐 어쩌고 하다 보니, 그냥 브런치가 하기 싫어지더라. 영화 글이야 그냥 쓰는 대로 써서 올리면 되겠다손 치더라도. 에세이를 쓰겠다며 브런치에 만들어 뒀다가 그냥 지운 매거진이 못해도 5개는 될 것 같다.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지금 여기 남겨둔 매거진들이야 언젠가 써서 모아 두고 싶은 것들이라 남겨 놓은 것도 있고, 인스타 부계정에 써놓은 것들을 옮겨다 두고 싶어서 두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매거진 '일단 쓰는 글'만큼은 그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의식의 흐름대로 마음껏 써내려 볼 참이다.


일단 하나를 쓰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뭐 이렇게 써도 그냥 써지네. 







작가의 이전글 2019 서울국제도서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