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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16. 2022

일단 쓰는 글 1.

오늘 밤하늘에 미시감을 느끼다.

1.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 앞 사거리에서 보행자 신호등의 빨간불에 걸려 걸음을 멈추었을 때였다. 평소 같았으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연락도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올해 들면서 이어폰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있기로 하면서 겪게 된 변화 가운데 하나인 것도 같다. 밤하늘에는 맑은 어둠 속에 거의 꽉 찬 보름달이 하나 조그맣게 떠 있었다. - 이상하게, 어떤 날의 보름달은 엄청 크고 가깝게 보이고 또 다른 날의 보름달은 작고 멀리 보인다. - 한참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밤하늘에 달이 떠 있는 모습이 꽤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의식적이고 반복적으로 자주 하게 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몇 달에 한 번이나 몇 년에 한 번 하게 되는 생소한 일도 아닌데 오늘은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을 그 풍경에 갑자기 미시감이 느껴졌다. 저건 왜 저기에 있고, 하늘은 왜 이렇게 어두운 거지. 하고.


살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서 의식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제 이렇게 되었지? 하고 되뇌게 만드는 일들. 그 처음을 거슬러 올라가며 생각해 보면, 사건의 장면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관계나 현상, 반복적인 습관이나 감정이 처음 묶인 순간은 좀처럼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어떤 사람과 형성하고 있는 관계에서 그럴 때가 많다. 가령, A라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 꽤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치자. 그 사람과의 첫 만남은 어떤 조직의 첫 모임이 될 수도 있고, 우연한 술자리가 될 수도 있고, 특별한 사건에 의한 조우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 '우리 친구 하자'라고 말을 섞는다고 해서 바로 그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자연스럽게 만남의 횟수가 쌓이고 시간이 녹아들면서 우호적인 감정이 쌓인 결과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특별한 계기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지점이 잘 생각이 나지 않고, 그러다 보면 오늘과 같은 어떤 약간의 미시감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부모를 부모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테고 - 물론 이 지점은 모든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에 발생함으로 그 누구도 이야기할 수 없겠다. - 사랑하는 연인의 경우에도 상대를 자신의 삶 아주 가까운 곳에 들여놓아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아임 유어 파더'라던가, '내가 널 사랑해'라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대사 한 줄로 실제 우리 삶의 모든 관계가 한 번에 구축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물론, 오늘 밤하늘에 미시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아주 의심하지는 않는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혹은 아직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느끼고 있는 관계나 감정에 대해 의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에 대해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마음을 조금 더 쓰게 되는 계기가 주어지는 것일 뿐.


집에 돌아와서 창문을 열어두니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며 만났던 달이 또 보인다. 아마, 당분간 며칠간은 이렇게 달의 모습을 조금 더 '의식하며' 바라보게 될 것만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미시감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또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시감 : 평소 익숙했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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