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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20. 2022

일단 쓰는 글 3.

올해는 옷을 좀 더 사야지.

3. 최근에 핸드폰의 용량이 부족해져서 이것저것 정리를 조금 했다. 녹음 파일을 좀 지우고, 지금 당장 필요 없는 자료는 컴퓨터로 옮기고. 잘 쓰지 않는 어플도 몇 개 지우고. 용량이 더 큰 핸드폰으로 바꾸는 게 제일 편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알아보니 그것도 복잡한 부분이 있다. 신형 핸드폰을 사자니 노트북 한 대 값이나 다름이 없고,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 가서 바꾸자니 핸드폰 가격은 거의 공짜지만, 6개월 이상 의무로 써야 하는 요금제나 이것저것 생각하니 그것 또한 거의 노트북 값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요금제를 포함한 가격이지만, 통신사를 옮겨야 하는 경우의 수까지 생각해 보면, 지금 결합 할인이 되고 있는 인터넷까지 바꿔야 하는 데다 4G(LTE)에서 5G로 넘어가는 탓에 비용이 꽤 많이 늘어난다. 무엇보다 제일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L사의 경우에는 5G가 가능한 핸드폰으로 개통을 하고 나면 4G 요금제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단다. - S사나 K사는 구형 핸드폰이 있으면 가능하고, 그러면 조금 더 싼 요금제를 쓸 수 있다. - 이런 상황이다 보니, 머리를 조금 더 굴리고 있다. 2월 중순에 갤럭시 새 모델이 나오고 나면, 지금 쓰고 있는 S사 기변 요금도 더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아무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이야기가 조금 샜다. 오늘은 사진첩 속 내가 입고 있는 옷들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똑같은 옷만 입고 사진을 찍어 놓은 나의 초미니멀한 패션에 대해서. 


사실 나는 옷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여름에는 좀 덜 덥고 겨울에는 덜 춥고. 남들 보기에 그냥 깔끔해 보이는 편이기만 하면 좋겠다 하는 정도. 그렇다 보니 단벌 신사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옷이 많은 편도 아니다. 게다가 취향도 확고한 편이어서. 티셔츠 계열은 거의 없는 편이고 셔츠나 니트 위주로 갖춰 입다 보니 옷장을 보면 많이도 없으면서 그나마 있는 옷들도 다 고만고만하게 생겼다. 그래도 나름대로 몇 가지를 돌려 입는 편인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계속 똑같은 옷을 입는 줄 알 정도. 물론, 색깔만 바뀌는 동일한 패턴의 옷이라던가 어지간해서는 잘 알아보기 힘든 동일한 컬러의 무지 폴라 등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20대 때의 영향이 좀 컸던 것 같다. - 중고등학교 때야 학교에서 정해주는 교복이 전부였으니까 제외. - 남들 같으면 20대 초중반이 제일 꾸미기 좋을 나이였겠지만 나한테는 옷보다 중요한 것들이 더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받아서 쓰는 비용이야 매달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고, 옷을 사기에 앞서 써야 할 곳이 많았던 셈이다. 먼저, 영화관과 공연, 연주회에 쓰는 돈이 많았다. 특히, 당시에 유명했던 막심이나 이루마의 연주회는 물론, GMF(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나 서울 재즈 페스티벌 같은 페스티벌도 꼬박꼬박 다녔다. 책도 어릴 때부터 사서 보는 버릇이 들어서 그 값도 치러야 했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주말만 되면 기차표를 알아보는 게 일상이었다. 스벅충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끊을 수 없었던 스타벅스 커피값은 또 어떻고.


옷에 쓰는 비용이 제일 마지막이었다. 가지고 있던 옷들 중 하나가 이제 더 이상 못 입을 정도가 되어서 다른 옷으로 교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별로 생각을 안 했으니 말이다. 셔츠 4-5벌, 바지 2-3벌, 외투 한 두 개, 겨울에는 니트 종류가 다른 옷으로 3-4개 정도면 충분했던 것 같다. 계절에 따라서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입는 옷 한두 개 정도 엑스트라로. 신발도 운동화 하나, 구두 하나 내내 신다가 문제가 생기면 새 신발을 사는 식. (내가 20대일 때는 SPA 브랜드도 없었으니 지금보다 더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계속 입는 옷들에는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 처음에 살 때도 마음에 드는 옷이니 고르고 사게 되는 거지만 - 좋아하는 브랜드도 확고한 편이다. - 그렇게 몇 계절 계속 입고 나면 옷이 몸에 길이 드는 기분이 들고 편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악순환(?)이 계속되는 식이랄까. 최근에 셔츠 하나는 목부분이 닿는 깃 부분이 닳고 해어져서 버리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2011년에 캐나다 캘거리 공항 근처에 있는 팩토리 몰에서 사서 지금까지 입은 옷이었다. - 토미 힐피거의 줄무늬 셔츠였는데 이 옷을 버릴 때는 솔직히 좀 슬프기까지 했다. -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이제는 그래도 조금 여유가 생기니 옷을 더 사고, 다양하게 입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습관이 병이라고 그냥 또 지나치게 된다. 어차피 좋아하는 옷만 입을 건데 싶기도 하고. 그냥 있는 옷 입으면 되니까 그 돈 다른 데다 쓰자 싶기도 하고.


사실은 조금 고치고 싶은 면이라서 쓴 글이다. 요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내가 그동안 확고한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자랑하던 것들에서 좀 탈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옷을 입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내게 확고한 무언가가 있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그리고 그걸 찾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는 또 다른 무엇에 대한 욕구가 분명히 생기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완전히 전복시켜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아방가르드하고 초현실적인 옷들을 입어보고 싶다는 건 조금도 아니다. 비슷한 느낌은 가지고 가되, 조금 더 다양한 옷들을 사서 이렇게 저렇게 매칭도 해보고, 같은 계열에서 한 뼘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의미로, 어제는 목폴라 티를 하나 더 샀다. 물론 같은 계열에 비슷한 색의 옷이긴 하지만, 평소 같았으면 집에 있는데 뭘 하고 사지 않았을 게 분명한 옷이다. 올해는 이렇든 저렇든 일단 옷을 조금 더 사 볼 요량이다. 갑자기 20벌 30벌을 더 사겠다는 건 아니고, 기분에 따라서, 또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하고 고민할 수 있을 정도로만. 신발도 한두 켤레 더 사서, 옷에 맞춰서 좀 입어보고 말이지.


역시, 캐나다에서 사서 지금까지 신고 있는 10년 된 사냥용 부츠를 지금 신고 할 말은 아닌 것도 같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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