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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22. 2022

일단 쓰는 글 4.

나의 대화.

이 매거진 <일단 쓰는 글>은 사전의 구조 작성이나 탈고 같은 글쓰기의 앞뒤 과정 없이 책상에 앉아마자 바로 떠오른 마음이나 생각을 단숨에 써 내려가는 글입니다. 가장 처음의 글에서 밝힌 대로,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면 쓰려고 하다가도 포기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곤 하더라고요.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모아놓으면 언젠가 고쳐 쓸 글감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일단 쓰고 있습니다. 


4. 하나의 삶은 몇 번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을까 궁금하다. 너무 사소해서 금방 잊혀지는 대화에서부터 남은 날 동안에도 잊지 못할 어떤 시간의 대화까지. 나는 지금껏 얼마만큼의 대화를 나누며 살아왔을까? 단순히 상대의 안부를 묻는 짧고 형식적인 대화는 잠시 접어둔다고 해도 나는 그 대화들 모두를 기억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 대화가 놓인 시간이 지금으로부터 멀리 있다거나 가까이 있다는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 대화가 가진 힘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대화는 관계를 만들기도 사라지게도 했을 것이고, 또 어떤 대화는 가지고 있지 못하던 것을 가지게도 하고 가졌던 것을 잃어버리게도 했을 것이다. 처음과 끝에 놓인 대화도 쉽게 잊혀지지는 않는 법이고, 세상에 들어내지 않았던 속내를 들춰내거나 고백하게끔 만드는 대화도 마음 속에 오래 남는다. 자신에게서 외부로 쏟아져 나오는 실수나 잘못, 후회의 역사가 담긴 대화도 마찬가지이며, 반대로 외부에서 자신에게로 흘러 들어오는 동일한 것들의 대화도 꽤 오랫동안 고이고 만다. 꼭 자신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경우의 대화들도 삶 속에 녹아든다. 모임 속 다른 구성원들의 대화 속에서나 어떤 영상의 한 꼭지 어딘가, 또 누군가의 강연이나 무대 위의 꾸며진 대화 속에서도 말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수많은 대화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개척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꽤 많은 대화들이 교차하는 흐름 위에서 몇 가지의 길들을 제시받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짧고 형식적인 대화는 잠시 접어두겠다고 말했지만, 말의 길이나 크기가 중요함의 척도가 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성이 나타나는지도 의문이다. 작은 대화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쳐 선택을 강요하게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역시 대화의 질량이나 형태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심리적인 측면에 의해 대화의 경중이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작은 대화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시간이 지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을 경우, 우리는 그 대화를 잊지 못하는 순간이라고 기억하게 된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력이 될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력이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한참이나 지나고 난 뒤에야 해결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대화는 세상 그 어떤 그림자나 향기보다도 더 긴 꼬리를 남기곤 한다. 그 대화가 향방에 대한 결과를 내리는 쪽에서 내리지 못하는 쪽에서도.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내게 중요하다고 해서 그 대화가 상대에게도 중요하다고 여겨질 까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지나온 길의 많은 대화들을 최대한으로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의 품이 한없이 넓어보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되곤 한다. 꼭 그런 사람이 한 명쯤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것 같은, 혹은 남기게 되는 대화들만 기억하게 되기 마련인데 말이지.


대화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그냥 잠시 궁금해졌다. 나는 정말로 얼마만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을까 하는 것이 말이다. 여전히 대화는 어렵다. 그리고, 진심을 표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상대의 마음까지 헤어리며 해야하는 대화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면 다시 한번. 나를 이루고 있는 대화들과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화 속에는 진짜인 내가 존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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