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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5. 2015

#027. 폭스캐쳐

인물들 간의 심리 묘사가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

Title : Foxcatcher
Director : Bennett Miller
Main Cast : Steve Carell, Channing Tatum, Mark Ruffalo
Running Time : 134 min
Release Date : 2015.02.05. (국내)




01.

갑자기 지난 해였던 2014년의 1분기가 스쳐 지나간다. 바로 직전의 12월 연말 특수가 끝난 뒤 대표적인 비수기로 여겨지는 1월과 2월 극장가 치고는 작년엔 기대를 받는 외화 작품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 중에는 <인사이드 르윈>,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같이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준 작품들도 있었지만, <모뉴먼츠 맨>, <폼페이>, <돈 존>, <노아> 같이 기대를 산산조각 냈던 작품들도 그리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올해 초의 작품들은 뭔가 조금 달랐다. 흥행의 여부와 별개로 작품들에 힘이 있는 모습이다.


02.

갑자기 작년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이 영화 <폭스캐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이 영화를 보던 한 소년의 코골이처럼 상업 영화를 즐겨보던 이들에게는 이 영화가 굉장히 지루한 영화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이 영화는 대단히 묵직한 작품이었다. 야구로 치자면 140km 초반 대의, 직구로써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이지만 종속이 빨라 체감적으로는 쉽게 칠 수 없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묵직함이랄까.


03.

먼저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영화를 연출한 "베넷 밀러"라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실화를 베이스로 삼은 영화들이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베넷 밀러" 만큼은 그 흐름에 편승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2005년 <카포티>를 시작으로 2011년 <머니볼>, 이번 작품 <폭스 캐쳐>까지 그 동안 총 3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하는 동안 모든 작품을 실화를 바탕으로 할 정도로 그의 영화 커리어 전체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무게를 두고 있는 감독이다.


04.

그가 전작들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 사실이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연출한 방법 때문이다. 그는 전작들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사용했던 플래시백 장면을 이 영화에서 과감하게 삭제해 냈다. "베넷 밀러" 감독은 이 플래시백 장면을 통해 실제로 역사 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영화 속에 이식하는 작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는 <폭스 캐쳐>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This movie is based on the true story"의 문구가 전작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 영화 <폭스 캐쳐>에서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플래시백(Flash Back) : 과거의 한 장면을 제시하는 영상을 삽입하여 현재 시점과의 단절을 나타내는 편집 방법. 주로 과거를 회상하거나 역사 속 장면을 첨부하기 위해 사용된다.


05.

이 작품은 실화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베넷 밀러" 감독의 의지대로 굉장히 실화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영화가 "개인의 트라우마와 그 개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굉장히 심도 있게 파고들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매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욱 나아가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면까지도 넌지시 드러내고 있기에 한 번 매료된 이후에는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06.

먼저, "스티븐 카렐"이 맡은 "존 듀폰"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어두우면서 외롭기까지 한 성격을 갖고 있다. 전쟁의 수혜로 인해 가문이 번성하면서 물질적 욕구와 사회적 지위 욕구는 충족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타인의 시선을 쫓다 보니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은 가질 수 없었던, 즉 내적 욕구는 충족시킬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종의 "빛 좋은 개살구"였달까? 특히 그 중에서도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는 이 인물이 느끼는 가장 핵심적인 심리적 압박감인데, 이 트라우마는 후에 어머니가 기르던 말들에게조차 열등감을 느끼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07.

그런 "존 듀폰"은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 역)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돈이라는 물질적 수단으로 구매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영화의 스토리적 구조를 생각한다면 "존 듀폰"의 이러한 욕구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큰 동기가 된다. "존 듀폰"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열등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장면들은 영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마크 슐츠"가 세계선수권에서 따 낸 금메달을 승마 경기에서 받은 트로피들을 대신해 전시하려고 한다던가, 어머니의 앞에서 코치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던가, 또는 어머니의 임종 직후 말들을 모두 풀어줘 버리는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08.

그런 그와 반대로 "마크 슐츠"는 "존 듀폰"과는 욕구적인 측면에 있어 완전히 상극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숱한 경험들로 인해 어떠한 노력 뒤에는 결과물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현실의 문제로 남아버린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의 결핍. 그 물질적 가치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존 듀폰"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 듀폰"의 제안을 받기 전 운동 선수로서의 삶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보수만 보장이 되었어도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09.

또 한 가지. "마크 슐츠"에게는 자신의 형인 "데이빗 슐츠"라는 인물에 대한 일종의 질투를 갖고 있는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분명히 형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맞지만 언젠가는 그를 벗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과 함께, 언제까지 형의 도움만을 받고 있지는 않겠다는 심리가 그의  마음속에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 심리에는 재능의 차이 혹은 형이라는 그늘을 벗어나고 싶다는 동생으로서의  질투심뿐만 아니라 형이 꾸리고 있는 가정에 대한 갈망 역시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2살에 부모를 여의고 평생을  함께해 왔을, 언제나 자신만을 바라봤던 형이라는 존재가 이제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내와 아들들이 생겨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여기에서 촉발되는 질투심은 "존 듀폰"을 만난 이후 "마크 슐츠"가 더 강력하게 형을 밀어내려고 하고, "존 듀폰"과의 관계에 더욱 깊이 빠져드레 되는 계기가 된다.


10.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세 인물 가운데 이 "마크 슐츠"라는 캐릭터에 가장 큰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뒤에서 언급할 자본주의 사회가 바라보는 그의 노력에 대한 시선을 제외하더라도, 그는 평생을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엔 실패하고 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의지하던 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을 생각으로 벗어난 곳이 과거의 그늘보다 더욱 깊고 어두운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과연 몇 가지였을까? 그것도 평생을 매트 위에서 운동 밖에 할 줄 몰랐던 "마크 슐츠"라는 인물에게 말이다. 누군가("존 듀폰")와의 관계에서 동등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해 준 나("마크 슐츠")의 능력이 더 이상 그("존 듀폰")에게 필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 말이다.


11.

그렇다고 "데이빗 슐츠" 역시 결코 쉬운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가 동생의 제안 두 번을 거절할 수 없었던 데는 현실적인 문제와 과거의 경험에서부터 비롯되는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음으로는 그 역시 누구보다 동생의 성공을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동생을 홀로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수도 없이 거취를 옮겨야 했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안정적 욕구에 대한 갈망을 커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12.

사실 그가 함께하자던 동생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면서 "존 듀폰"의 제안을 받아들여 '폭스 캐쳐' 팀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두고 그 역시 돈에 움직이는 인물이었다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만이 온전한 이유였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동생의 모습에서 전에 없이 불안정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늘 함께 준비해 오던 대회 준비에 동생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허전한 마음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때 마침  제안된 "존 듀폰"의 스카우트 제의는 동생에 대한 그런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자신의 가족을 조금 더 편하게 부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13.

이 영화 속에서 "마크 슐츠"가 뺨을 맞는 장면이 딱 두 번 등장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한 번은 오전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 듀폰"에게 맞은 장면이었고, 다른 한 번은 올림픽 대표 선발전 1차전에 패배한 뒤 선수 인생을 포기한 듯한 모습에 형인 "데이빗 슐츠"로부터 맞은 장면이었다. 바로 이 두 장면에서 "존 듀폰"과 "데이빗 슐츠"가 "마크 슐츠"라는 인물에 대해 심리적 기저에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느냐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존 듀폰"은 뺨을 때린 이후 그 사건에 대해 일말의 언급도 없이 태도를 변화시키지만, "데이빗 슐츠"는 그 행동 이후 동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준다. 같은 행동이지만 이 뺨을 떄리는 행동에는 전혀 다른 이유와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14.

"데이빗 슐츠"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폭스 캐쳐' 팀에 코치로 들어오고 나서 "존 듀폰"의 다큐멘터리를 위해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말이다. 아마도 그는 다큐멘터리 책임자의 말에 따라 그 인터뷰를 하면서 '폭스 캐쳐' 팀에 들어와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불편함의 진실과 자신의 동생이 그 동안 보냈을 시간들에 대한 추측들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생이 견뎌낼  수밖에 없었을 감정들과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런 생각들 속에서 "존 듀폰"이라는 인물의 손을 잡은 자신에 대해 동생이 느꼈을 비참함까지도 모두 느끼게 되었을 것만 같다.


15.

오랫동안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했으니 그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마크 슐츠"가 "존 듀폰"의 제안을 받고 난 뒤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우리는 인생에 크게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그 기회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가 주어지는 시험과 같은 일상적인 이벤트의 범주라면 그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매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마크 슐츠"가 받았던 제안처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에 돌발적으로 주어지게 된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찬스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판단을 통해 외면해야 하는 걸까? 쉽게 이야기하면 버스가 끊긴 야심한 시각에 택시도 하나 없는 이 도로를 2시간 이상을 넘게 걸어 집까지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 눈 앞에서 이 야심한 밤에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하는 모르는 이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것들을 신념과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하느냐 말이다.


16.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엔딩에서 등장하는 "데이빗 슐츠"를 살해하는 "존 듀폰"의 모습이다. 이것이 실화라는 점에서 더욱 말이다. 장면의 이해라는 시각에서 가장 쉬운 해석은 단순히 "존 듀폰"이 원했던 자신의 다큐멘터리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어야 할 "데이빗 슐츠"의 인터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존 듀폰"이라는 인물이 가진 타인에 대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 욕구는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시작된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다.)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를 죽여야만 했던 이유는 "마크 슐츠"로부터 시작된 형제에 대한 분노가 함께 그의 폭력성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7.

앞서 4번의 내용에서 끝 마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무리해 볼까? 그가 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 동안 이용해 왔던 플래시백 장면을 삽입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 작품의 처음(오프닝 시퀀스)과 끝(엔딩 시퀀스) 두 장면을 통해 꼭 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넷 밀러"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의 여우 사냥 장면과 엔딩 시퀀스의 격투기 장면을 통해 결국에는 이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의 노력들마저도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 위에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해 낸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은 과정보다는 결과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비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8.

이렇게  얽히고설킨, 복잡한 심리 관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폭스 캐쳐>는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레슬링 팀의 이름일 뿐이지만, 어쩌면 결국 이 세 인물이 현실 속에서 갖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어떤 가련한 이상향을 좇는 모습을 표현한 문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쫓던 여우(Fox)를 끝내 잡을 수(Catcher)가 없었지만 말이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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