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15. 2015

#026. 앵그리스트 맨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요?

Title : The Angriest Man in Brooklyn
Director : Phil Alden Robinson
Main Cast : Robin Williams, Mila Kunis
Running Time : 83 min
Release Date : 2014.10.30. (국내)




01.

"로빈 윌리엄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남겨질 학생들에게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고  이야기했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스크린과 연극 무대 위를 가리지 않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곳이라면 자신의 연기를 아끼지 않았던 배우. 시간이 지나 그가 생전에 겪어야만 했던 우울증과 약물중독 등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고 난 후에야 이 대단한 배우가 무대 아래에서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었는지 조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나마 관객 된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이 작품을 포함해 <블러바드>, <박물관이 살아있다 2> 등의 작품들이 그의 유작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이었다.


02.

그중 한 작품인 이 영화 <앵그리스트 맨>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로빈 윌리엄스"라는 배우의 연기를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사랑하는 이(큰 아들)를 사고로 잃은 뒤 모든 일에 화만 내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 "헨리"(로빈 윌리엄스 역)와 그런 그에게 홧김에 앞으로 살 날이 90분 밖에 남지 않았음을 거짓으로 알려버린 "섀런"(밀라 쿠니스 역)을 통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03.

우리가 매일 해가 뜨는 일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결코 그 일이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해가 뜨는 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시간조차 주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달력 한 장을 넘기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은 현대인들에게 단순히 해가 뜨고 지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탁자 위의 달력 한 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이 도시의 달력도 함께 넘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04.

영화 속 25년 전의 "헨리"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가족들과 웃음을 짓는 일도 많았고 고맙다는 말도 할 줄 알았다. 동생을 위해 준비한 샌드위치로 행복한 점심을 즐길 줄 알았고, 아들과는 카드 놀이로 추억을 쌓을 줄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의 하루는 짜증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짜증 나는 일들은 하루가 무섭게 늘어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제는 상대방이 누구든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로 너무나 일상적인 표현이 되어버린 그의 "화".


05.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인턴 나부랭이 의사로부터 90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는다. 물론 그에게 있어 그 인턴의 선고는 순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이 급박하게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없음을 받아들이고 나니 큰 아들을 잃고 난 뒤 멀리하기만 했던 아내가 생각이 났고, 자신의 곁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아 내쳐버린 아들이 생각났다.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내지 못한 친구들도 생각이 나고. 그 동안 자신이 돌아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 시작한다.


06.

전체적으로 영화는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 않다. "헨리"의 모습들을 따라가며 한 남자의 시한부 인생에 대한 후회와 간절함을 담아내고 있는데, 관객들에게 뭉클함을 주어 감동을 일으키는 쪽보다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 스스로가 지나 온 인생을 반추하게끔 만드는 부분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에브리바디스 파인>(2009)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는데 내용이 비슷하다기 보다는 작품 속에 담겨진 이야기와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07.

작품 속 "헨리"의 짜증과 분노를 보면서 나는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한 때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멋있는 남자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던 "쿨하다"는 표현을 나는 굉장히 싫어한다. 주체할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의 무게를 한 번이라도 견뎌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쿨하다"는 표현을 쉽게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이다. 현실 속 자신은 사고로 큰 아들을 잃었고, 작은 아들은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직업을 택했기 때문에 이 현실을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분명히 불행해야만 하는 사람이기에 25년 전처럼 웃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건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라고나 할까?


08.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후회하고 그제야 되찾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한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게 된 "헨리" 역시 자신의 삶에서 놓쳐버렸던 것들을 되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 노력들마저도 이제는 너무도 늦어버려서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 90분 중 대부분의 시간들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잃어버리고 난 뒤에 깨달은 것들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들이 필요하다. 또 때론 그 시간과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찾지 못할 지도 모르고 말이다.


09.

살면서 많은 순간을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와 뜻하지 않은 일들로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나고 마음이 퍽퍽해지며 나도 모르게 놓고 싶어 질 때가 많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던 "헨리"도. 또 젊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던 의사 "섀런"도. 심지어 택시를 운전하던 운전수도. 모든 사람이 다 똑같다는 것.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는 걸.. 그러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도 행복한 삶을 살아달라는 것. 그게 이 영화가 그리고 무대 밑에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겪어야만 했던 "로빈 윌리엄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Copyright ⓒ 2015.

joyjun7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025. 무뢰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